“네 것도 아닌 내 인형 좀 그만 훔쳐가!” [장정일의 독서일기]
최서현 지음
산지니 펴냄

1. 작년 3월, 집 앞에 있는 K대학교가 개강했을 때다. 이 학교는 아무런 연고가 없는 나에게 도서관 출입증을 발급해주었다. 이 출입증이 없었다면 나는 마음껏 책을 읽고 글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K대학교에 감사한다). 그날도 책을 빌리러 학교에 갔는데 학생들의 가방에 달려 있는 인형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이전에도 간간이 보았던 것이지만, 그날은 달랐다. 한 학생이 아니라 인형을 가방에 달고 있는 학생이 여럿이었다. 그래서 집에 있는 동거인을 불러내 일부러 캠퍼스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가방 인형이라고도 부르고, 키링 인형이라고도 부르는 것을 달고 있는 학생이 수두룩했다. 이것은 그로테스크한 풍경이다. 아니, 초현실주의적이다. 오늘의 문화와 상식은 이런 것을 초현실주의적이라거나 그로테스크하다고 지적할 수 있는 공통의 감각 또는 공준을 잃어버렸다.
2. 자칭 ‘문화 건달’이라는 J. 스콧 버거슨은 1996년 일본 거류를 마치고 중국으로 건너가는 중간 단계로 한국에 들렀다가, 한국에 흥미를 느껴 10년 넘게 서울에 살았다. 그러면서 책을 몇 권 출간했는데 〈발칙한 한국학〉(이끌리오, 2002)에 이런 대목이 있다. “나는 한국 사람들이 남들과 똑같이 구는 것을 쿨하다고 생각하는 게 참 이상하다. 나는 20대의 다 큰 여자들이 가방과 휴대폰에 토끼 인형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게 참 이상하다.” 이 책이 나왔을 때는 지금과 같지 않았다. 인형을 달고 다니는 사람은 희귀했고, 대개가 여성이었다. 그런데 캠퍼스를 한 바퀴 돌면서 본 것은 그게 아니었다. 너도나도 인형을 달고 있을 뿐 아니라, 상당히 많은 남학생이 동참하고 있었다.
3. 인형 강박증이 생겼다. 외출만 하면 사람들 가방에 매달려 있는 인형만 보였다. 30대도 있었고 40대도 있었고, 군인까지도 인형을 달았다. 중국⸱베트남 학생은 물론이고, 국적을 물어보지 못한 많은 서양 백인 여성이 있었다(스콧 버거슨 씨 어디 계시나요). 1년 사이에 감지된 중요한 변화는 한 사람이 달고 있는 인형의 개수가 더 많아지고, 크기도 점점 커졌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작은 것 하나만 달아도 개성을 얻을 수 있었으나 유행이 되면서 개수와 크기 경쟁이 벌어진 것이다. 지나친 비유이지만 재미 삼아 해보자면, 이런 경쟁은 존 플렌리와 폴 반의 〈이스터 섬의 수수께끼〉(아침이슬, 2005)를 떠올려준다. 이스터 섬의 주민들은 다른 집안보다 더 큰 석상을 만들려는 광적인 과시욕으로 섬 전체의 노동력과 삼림을 고갈시킨 결과 모두가 자멸하고 말았다.
애착증의 눈부신 승화
4. 이 유행을 중지시키는 방법은 딱 하나. 노인들이 달고 다니기 시작하면 그제야 젊은이들이 자기 가방에서 인형을 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작년 가을, 전철의 노약자석에 앉아 있던 노인이 일어났는데, 륙색에 알록달록한 인형이 달려 있었다. 방주에서 날린 비둘기가 올리브 잎새를 물고 온 것을 보고 기뻐한 노아처럼 감격했다. 공자가 〈논어〉 ‘위정’ 편에서 말씀하신 연령주의는 파괴되어야 한다. 무지한 너댓 살짜리 아이들은 이것도 혁명이란 것을 모르기 때문에, 인형을 덜렁거리고 다니는 대학생 언니⸱오빠에게 따진다. “네 것도 아닌 내 인형 좀 그만 훔쳐 가!”
5. 수컷 공작은 화려하고 거대한 꽁지깃을 가졌다. 포식의 위험과 에너지 소모라는 막대한 비용을 치르면서 수컷이 이러한 장식적 형질을 유지하는 이유는 다른 동료 수컷보다 더 쉽게 암컷의 눈에 띄기 위해서다. 공작 수컷은 ①생존할 것인가 ②번식할 것인가 가운데 ②에 다 걸기를 한 것이다. 이때 암컷은 생존에 유리하기는커녕 생존에 불리한 더 거대한 깃을 가진 수컷을 짝으로 선택한다. 불리한 조건에서도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가 그 개체의 우월함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수컷 공작의 꽁지깃으로 다윈의 성선택(sexual selection)을 설명하는 진화론 학자들이 보기에, 젊은 남성이 달고 다니는 가방 인형은 아무런 비용도 들지 않고 누구나 모방하기 쉬운 값싼 신호(장식)다. 그것은 벤틀리가 아닌 데다가, ①과 ② 어느 것에도 소용되지 않는다.
6. 한국어로 번역된 시오노 나나미의 책은 스무 종이나 된다. 그 책을 다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지은이의 저서를 한 줄로 요약해보라면, 남성성에 대한 탐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권력’이라고, ‘국가’라고, ‘역사’라고 말할 사람도 있을 텐데, 다 같은 말이다. 시오노에게 가방 인형을 달고 다니는 남자에 대해 묻는다면, 제국주의자이자 반(反)페미니스트인 그녀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여자들은 자신을 지켜줄 남자를 찾는다. 그런데 인형더러 ‘날 지켜줘’라고 어리광하는 남자라니? 그런 남자는 싹수가 없으니 차버리라고.”

7. 글을 쓰면서, “위장병 잡았어!”라는 겔포스 광고처럼, “이 주제는 파지했어!”라고 확신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파지(把持)는 말 그대로 “꽉 움켜쥔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번 글의 주제는 1년 동안 고심했는데도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완성된 글이 아니라 메모 상태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 각 문단 앞에 번호를 붙였다. 앞서 나온 역설을 간파했는지 모르겠지만, 이 주제는 지식(=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본능으로 말하는 어린아이의 말에 귀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8. 이 글을 쓰기 직전에, 가방 인형을 달고 다니는 젊은이들에게 보이는 나의 행태가 혐오라는 것을 깨달았다. 혐오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런 것이 누구에게는 성소수자이고, 이주노동자이고, 사회주의이고, 본인이 믿는 것과는 다른 종교다. 다행히도 가방 인형은 유행에 불과하니까 언젠가는 내 혐오도 잦아들 것이다. 그런데 내가 진짜 혐오하는 것은 통제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찾을 수 없는 것들이다. 나는 가방 인형에서 본 것과 똑같은 무의미를 윤석열의 계엄에서 봤다. 두 사태는 얼마나 같은가.
9. 마지막으로 가방 인형의 유행과 인형 마니아의 인형 사랑은 완전히 층위가 다르다는 것을 덧붙이고 싶다. 10년 넘게 인형을 수집하고 인형과 행복을 나누어온 〈살짜쿵 인형〉(산지니, 2023)의 지은이 최서현은 존 볼비의 애착이론에 딱 맞는 애착증(愛着症) 사례로 보이지만. 볼비가 미처 계산하지 못한 애착증의 눈부신 승화(昇華·sublimation)를 보여준다. 또한 이 책은 미발달된 성인들의 유아기적이고 상업주의에 침윤된 문화로 눈총을 받아온 키덜트(Kidult) 문화에 대한 전복적인 해석의 단서를 제공한다. 애타게 행복을 찾는 독자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장정일 (소설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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