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빚은 공간과 귀로 흐르는 시간, 우리 뇌가 보여주는 ‘이중주’

우리는 흔히 공간을 이미 완성된 무대로, 시간을 그 위를 흐르는 강물로 비유하곤 한다. 하지만 현대 인지과학과 소리과학(음향물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느끼는 세계는 훨씬 더 역동적인 감각의 합성물이라고 한다. 엄밀히 말해 공간은 시각이 포착한 이미지들의 중첩으로 구축되며, 시간은 청각이 감지한 소리의 파동과 흐름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시각과 청각이라는 두 개의 거대한 축이 어떻게 우리의 시공간 형식을 만들어내는지는 소리과학과 뇌과학의 관점에서 탐험할 수 있다.
우선 시각은 ‘공간의 건축가’다. 우리가 눈을 뜨는 순간 마주하는 풍경은 사실 뇌가 부지런히 계산해 낸 통계적 추론의 결과물이다. 눈은 본질적으로 2차원적인 센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 눈의 망막은 평면이다. 3차원 공간을 2차원 평면에 투사하는 카메라이기에, ‘깊이’라는 정보는 손실된 채 들어온다. 뇌는 이 손실된 정보를 메우기 위해 양안시차(두 눈의 각도 차이)와 사물의 크기 변화를 계산해 3차원 공간을 생성한다.
우리가 공간을 이미지의 집합으로 인식하는 이유도 뇌에 있다. 뇌가 찰나의 정지 화면들을 이어 붙여 하나의 입체적인 공간 지도를 구축하기 때문이다.
또한 시각은 공간 내의 모든 사물을 동시에 펼쳐놓는다. 예를 들어 ‘저기 있는’ 나무와 ‘여기 있는’ 벤치는 시각적 이미지 안에서 한 화면에 존재한다. 이러한 동시성은 우리에게 공간을 고정되고 안정적인 실체로 느끼게 만든다.
즉, 화면은 공간을 만들지만 시간을 느끼게 하기는 어렵다. 화면이 움직이는 동영상이 되면 비로소 우리는 시간을 느낀다. 다시 말해 움직임이 시간을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소리의 의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소리는 흐름의 과학이며, 움직임의 표현이어서다. 음악은 시간을 통해 느껴진다. 시간의 감각은 철저히 청각의 논리를 따른다. 소리는 정지해 있을 수 없다. 소리가 정지한다는 것은 진동이 멈춘다는 뜻이며, 그것은 곧 소리의 소멸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시간의 흐름을 타는 행위다.
청각은 시각보다 시간적 해상도가 훨씬 높다. 우리 눈은 초당 60프레임 정도면 연속된 움직임으로 착각하지만, 귀는 ㎳(밀리초) 단위의 미세한 시간 차이를 감별해 낸다. 약 0.0006초라는 찰나의 시간 차이를 감지하는 이 능력은, 청각이 얼마나 시간이라는 변수에 민감하게 설계됐는지를 증명한다.
이와 관련해 우리의 뇌 안에서는 ‘신경 동기화’라는 현상이 일어난다. 이는 외부에서 들려오는 일정한 소리 파동(박자)에 뇌파의 주파수가 동기화되는 현상이며, 시각적인 깜빡임보다 청각적인 비트가 뇌의 시간 인지 회로를 훨씬 더 강력하게 장악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가 시계를 보지 않고도 “대략 1분이 지났다”라고 느끼는 내적 시간 감각은, 사실 우리 몸 안의 생체 리듬과 외부 청각 자극이 만들어내는 정교한 소리 울림 사건들의 연속이다.
이미지로 공간을 보고, 소리로 시간을 읽는 현상은 이 두 감각이 서로의 영역을 보완해 완벽한 시공간을 완성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아인슈타인은 시간과 공간을 별개의 것이 아닌 시공간이라는 하나의 연속체로 보았다. 우리 뇌 역시 마찬가지다. 뇌의 측두엽(청각)이 시간의 실타래를 뽑아내면, 후두엽(시각)이 공간의 틀을 짜고, 이 둘이 두정엽에서 만나 비로소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현실’이라는 4차원 세계가 완성되는 것이다.
소리가 없는 세상이라면 우리의 시간은 마디 없는 줄처럼 밋밋해질 것이다. 이미지가 없는 세상이라면 우리의 공간은 좌표 없는 안갯속 같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단순히 공간 속에 존재하는 관객이 아니며, 매 순간 자신만의 시공간 교향곡을 작곡하는 위대한 지휘자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최복경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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