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에 침묵, 이스라엘에 각세우는 한국 외교… 자유·민주 진영 유일한 행보
이란 내 反정부 시위 탄압에는 사실상 침묵
이스라엘에 대한 美입장 오도 우려도 있어
與인사들, 돌연 ‘보편적 인권’ 강조하고 나서
“외교 실익 없는 李대통령 소통 방식 고쳐야”

2023년 1월 아랍에미레이트(UAE)를 국빈 방문한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 현지에 파병된 아크부대를 찾아 연설을 하던 중 이란을 ‘UAE의 적(敵)’이라 표현해 외교부가 뒤집힌 적이 있다. UAE가 중동에서도 손에 꼽히는 우방이지만 역사·종교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중동 내 역학 구도에 섣불리 입장을 취하지 않은 우리 외교의 오랜 문법을 깨버렸기 때문이다. 사우디와 더불어 중동의 맹주이자 석유, 천연가스 매장량이 풍부한 자원 부국(富國)이면서 과거 우리 기업들의 진출이 활발했던 이란과 먼저 나서서 각을 세울 이유도 없었다. 이란이 “간섭하기 좋아한다”고 응수하면서 이 문제는 양국 간 외교 문제로 비화했고,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로 있던 이재명 대통령은 이를 ‘외교 참사’라 규정하며 “뜬금없이 이란을 겨냥해 적대적인 발언을 내놨다” “형제국 UAE를 난처하게 만들고 이란을 자극하는 매우 잘못된 실언(失言)”고 비판했다.
3년이 지난 지금 이번에는 미국의 맹방이자 중동의 우호국 중 하나인 이스라엘을 상대로 비슷한 해프닝이 반복되고 있다. 양자 관계에서 “실망한다” “규탄한다(condemn)”라는 건 적대국 사이에서나 볼 수 있는 수사(修辭)들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10일 자신의 X(옛 트위터)에서 돌연 2024년 9월 영상을 소환해 이스라엘에 인권의 잣대를 들이대 “우리가 문제 삼는 위안부 강제, 유태인 학살이나 전시 살해와 다를 바가 없다”고 하더니 11일엔 다시 이스라엘 외교부를 향해 “반인권적 반국제법 행동으로 고통받고 힘들어하는 전 세계인들의 지적을 한 번쯤은 되돌아볼 만도 한데 실망”이라고 했다. 급기야 외교부까지 동원돼 “이스라엘 외교부가 대통령께서 신념을 표명한 글의 의도를 잘못 이해하고 이를 반박한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regret) 생각한다”고 했고, 비(非)외교 부처인 기획예산처도 나서서 “정도를 벗어난 반인륜 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박홍근 장관)라고 했다. 경제, 기술은 물론 안보·정보 분야에서도 긴밀한 협력 관계를 맺고 있는 양국이 돌연 거친 언사를 주고받으며 보기 드문 외교전을 벌이게 된 것이다.

지난해 말부터 이란 신정(神政) 정권이 반(反)정부 시위를 탄압해 최대 3만명에 이르는 시민이 숨졌고 약 5만명이 수감됐다는 관측(마흐무드 아미리-모그하담 이란인권 대표가 본지에 밝힌 추산)이 나온 가운데, 우리 정부 논평은 “지역 정세 불안에 깊은 우려를 갖고 동향을 주시하고 있다”(박일 외교부 대변인, 1월 16일)는 게 전부였다. 이란 내 상황에는 사실상 침묵하면서 우방국 이스라엘에 인권과 국제법의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이 대통령의 언행은 자유·민주 진영 지도자 중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다. 영국, 독일, 프랑스, 유럽연합(EU) 등도 이스라엘에 인권 문제를 종종 제기하지만 현재의 이란 상황 속에서는 “모든 당사자가 자제하는 긴장 완화가 필요하다” “이스라엘 안보는 중요하지만 지역 전쟁으로 번지면 안 된다” “보복의 악순환을 끝내야 한다”는 톤을 유지하고 있다. 직접 비판이 주는 실익이 없을뿐더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對)이란 작전을 주도하며 중동에 미군 자산을 집중 투사하는 상황에 대한 정무적인 고려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반면 북한·러시아·중국 등과 더불어 국제 사회 권위주의 블록인 이른바 ‘크링크(CRINK)’ 중 하나인 이란 내 권위주의 정권의 행태는 여러 차례 비판했다. 한국만큼이나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에너지 수입에 의존도가 큰 일본은 이란과 정상·장관 레벨에서 외교 채널을 가동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스라엘에 각을 세우지는 않는다.
이 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비판을 반박하기 위해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소통조정관을 소환한 장면도 미 조야(朝野)에서는 일종의 아전인수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커비가 이 대통령이 제기한 의혹과 관련해 과거 ‘충격적이고 혐오스럽고 용납할 수 없다’는 취지로 언론에 논평한 것은 맞지만, 국방부·국무부 공보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그가 대변인으로 있던 바이든 정부 백악관의 국가안보회의(NSC)는 2023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의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급습해 1200명을 살해하고 250명을 납치한 것을 분명히 지적했기 때문이다. 당시 커비는 폭스뉴스에 나와 민간인 희생자를 최소화하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이스라엘은 10·7에 야만적인 공격을 받은 주권국” “그들은 이런 공격을 자행할 테러 집단을 추적할 모든 권리·의무를 지녔다” “(이스라엘과 같은 입장이라면) 우리도 그렇게 행동했을 것이며,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라며 팔레스타인을 상대로 한 전쟁의 정당성을 옹호했다. 선거를 앞두고 확전을 자제하려던 조 바이든 대통령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은 것은 맞지만, 미국이 이스라엘이 전쟁을 시작하며 내세운 ‘대의’ 자체를 공개 부정한 적은 없었다.

이 대통령의 발언이 있고 난 뒤 여권 인사들이 “인권 국가로서 국제적 발언은 필요하다”(추미애 민주당 경기지사 후보)고 발언하고 나선 것도 생경한 부분이 있다. 한국은 한반도 문제의 당사국임에도 불구하고 북한 인권 문제를 사실상 방기하고 있고,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내 소수 민족 탄압 등에 대해 유엔이 목소리를 낼 때 반대·기권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 본인이 과거 러시아가 국제법을 위반한 일방 침공으로 시작한 우크라이나 전쟁, 항행(航行)의 자유 수호 문제가 걸려 있는 양안(兩岸) 갈등에 대해 ‘한국과 상관 없는 일’이란 취지로 얘기했다 비판을 받고 입장을 시정한 바 있어 외교가에서는 이번 발언의 배경을 놓고 여러 추측이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남북 관계에 미칠 영향 등을 의식해 2019~2021년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에 불참해 대북 인권단체들로부터 적지 않은 비판을 받았는데, 이 시기 청와대·외교부에서 근무한 최종건 전 1차관(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은 돌연 “대한민국 대통령이 국제사회에서 발생한 국가 폭력에 대해 한마디하는 게 그렇게 큰 문제냐” “대통령의 발언을 외교부는 더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한다”고 했다.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지낸 김건 국민의힘 의원은 “대통령의 언어는 외교적 고려와 함께 품격을 갖춰야 한다”며 “순간적인 사이다 발언, 감정 분출이 국익을 훼손해선 안 된다”고 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외교적으로 한국이 크게 얻을 게 없는 상황이 돼 버렸다”며 “대통령의 온라인 소통 방식을 고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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