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넘쳐나는데 수입국 신세 미국…역설이 빚은 3차 오일쇼크 [나기자의 데이터로 세상읽기]
중질유는 부족해 캐나다서 수입해
베네수엘라 장악해 중질유 확보하고
이란과의 전쟁으로 중국 견제 나서
원유, 탈탄소 흐름에도 수요 늘어서
‘원유장악 = 패권’ 공식 여전히 성립
美·이란 전쟁 예상보다 장기화되자
英이코노미스트지 “中이 뒤에서 웃어”

다만 이번 위기는 과거와 결이 다릅니다. 1·2차 오일쇼크 당시에는 중동 의존도가 절대적이었지만, 현재는 미국이 세계 최대 산유국으로 부상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미국은 왜 이란과 충돌하고 있는 것일까요.
2010년만 해도 글로벌 산유국 순위는 러시아(1045만 배럴), 사우디아라비아(813만 배럴), 미국(777만 배럴) 순이었습니다. 그러나 2025년에는 미국이 2118만 배럴로 1위에 올랐고, 러시아(1059만 배럴), 사우디아라비아(942만 배럴)가 뒤를 이었습니다. 미국이 2010년대 셰일혁명을 통해 경질유 생산을 급격히 늘린 결과입니다.

올해 1월 미국의 베네수엘라 관련 조치를 두고 로이터통신은 “미국 걸프 연안에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복잡한 중질유 정유소들이 밀집해 있다”며 “베네수엘라 원유 대부분은 중질·고유황 원유로, 미국 정유사 입장에서는 가장 이상적인 원유 중 하나”라고 보도했습니다. 베네수엘라는 세계 최대 수준의 중질유 매장국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 같은 구조를 고려하면, 베네수엘라가 미국 정유 시스템에 필요한 중질유의 ‘원천’이라면 이번 중동 전쟁은 패권국 미국이 2위 경쟁국인 중국을 견제하려는 성격이 짙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중국 원유 수입의 약 20%가 이란산인 데다, 미국의 제재로 글로벌 시장에서 밀려난 이란과 베네수엘라 원유가 오히려 중국으로 낮은 가격에 유입되면서 중국은 에너지 비용 측면에서 유리한 구조를 확보해왔습니다. 두 국가는 사실상 중국의 안정적인 원유 공급원 역할을 해왔고, 이는 중국 제조업 경쟁력 강화로 이어졌습니다.
이에 따라 미국이 베네수엘라와 이란을 다시 통제 가능한 범위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움직임은 에너지 흐름 자체를 재편하려는 시도로 해석됩니다. 김태유 서울대 명예교수는 “패권국의 본질은 도전국을 억제하는 데 있다”며 “현재 미국의 일련의 움직임은 결국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큰 흐름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불과 2010년대 후반만 해도 세계는 탈탄소·탈석유 정책에 집중했고, 중동 산유국에서도 ‘석유 종말론’이 제기됐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석유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통계 사이트 슈타티스타에 따르면 2010년 글로벌 원유 수요는 하루 평균 8480만 배럴이었습니다. 이후 2019년 1억27만 배럴까지 증가했으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2020년 9119만 배럴로 감소했다가 경제 정상화 이후 지난해 1억515만 배럴로 다시 증가했습니다. 인도와 동남아시아 등 신흥국을 중심으로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수요가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분석에 따르면 최근 수년간 원유 수요 증가분의 절반 이상은 플라스틱 등 석유화학 원료에서 발생했습니다. 항공유 수요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반면 석유 수요를 빠르게 줄일 것으로 기대됐던 전기차 확산은 예상보다 더디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는 향후에도 원유 수요가 구조적으로 쉽게 감소하지 않을 것임을 의미합니다. 미국이 원유 수급과 공급망에 지속적으로 집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번 중동 전쟁이 중국에는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됩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계산과 달리 전쟁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란 지도부는 장기전을 불사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중국은 원유 자체에 대한 의존도가 한국이나 일본보다 낮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산업 기반이 수입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에 크게 의존하는 반면, 중국은 석탄과 원자력,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습니다. 원유 가운데서도 중동 의존도는 약 50%로 한국(70%), 일본(90%)보다 낮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더라도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등에서 육상으로 원유를 수입할 수 있는 대안도 존재합니다.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이 미국·이란 전쟁을 방관하는 것은 이번 전쟁이 미국의 쇠퇴를 가속할 것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삼전닉스 살까 팔까…증권가 목표가 줄줄이 올리는 이유 보니 - 매일경제
- “한국 왔다가 ‘강남 집’ 싸게 샀어요”…양도세 중과 회피 매물로 내 집 마련 외국인들 - 매
- 미국·이란 협상단, 종전 논의할 파키스탄 도착…규모 70명 vs 300명 - 매일경제
- “반도체 수퍼사이클 안 믿는다”...개인 9조원 매도 폭탄 - 매일경제
- 고유가 피해지원금 27일부터 지급…국민 70%에 10만~60만원 - 매일경제
- 이스라엘 “이재명 대통령 발언 용납될 수 없다”…이 대통령 “한번쯤 되돌아보라” - 매일경
- “서울대 컴공과 나와도 갈 데가 없다니”…개발자 60%가 경력직 - 매일경제
- 외신 “이란 새 최고지도자, 다리 한쪽 잃었을 수도…정신은 뚜렷” - 매일경제
- “이래도 싫어할 수 있어?”…황금색 아이오닉으로 중국 홀린다 - 매일경제
- “밸런스, 밸런스를 찾아야” 이정후가 ‘슬로우 스타트’를 극복할 유일한 방법 - MK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