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조 퇴직연금’ 기금화 논의 속도전…은행권 시장 재편 ‘촉각’
금융지주 기금형 퇴직연금 대비 TF 가동
은행·증권·운용 ‘삼각편대’로 플랫폼 구축
이해상충 방지와 공시 체계 등 감독 강화도
“위험자산 투자 제한(70%룰) 완화해야”
![[챗GPT를 이용해 제작함]](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11/ned/20260411185058173xuyu.jpg)
[헤럴드경제=유혜림 기자] 앞으로 근로자의 퇴직금을 사내에 적립하는 기존 퇴직금 제도는 단계적으로 사라지고 외부 금융 기관에 적립하는 ‘퇴직연금’ 방식으로 전환된다. 약 500조원 규모에 달하는 퇴직연금 적립금이 2%대 수익률에 머물자 정부가 제도 개편에 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지주들은 기존 은행 중심의 상품 판매 비즈니스를 넘어 증권·자산운용까지 아우르는 통합 운용 체계를 구축하며 대응 전략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11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국내 퇴직연금 적립금은 확정급여형(DB), 확정기여형(DC), 개인형 퇴직연금(IRP) 합산으로 496조8021억원에 달한다. 현재 퇴직연금은 회사가 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 퇴직연금 사업자와 계약을 맺은 뒤 회사나 근로자가 직접 상품을 선택해 운용하는 ‘계약형’ 구조다. 정부는 계약형 대신 전문가 집단이 굴리는 ‘기금형’ 도입을 국정과제로 삼으면서 추진 중이다. 여러 사업장의 자산을 모아 규모의 경제를 확보해 수익률을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금융권에선 지주를 중심으로 은행·증권·자산운용 등 계열사가 머리를 맞대고 전략을 짜고 있다. 그간 예·적금, 보험, 펀드 등 상품 공급을 넘어 그룹 차원의 자산 운용 역량을 결집하겠다는 것이다. 퇴직연금 선택권이 근로자에게 넘어갈 경우, 금융사는 단순 영업 경쟁에서 벗어나 투자와 은퇴 설계, 교육 등 다양한 영역에서 가입자 대상 서비스를 강화하며 차별화를 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신한금융은 기금형 전환 전략을 올해 주요 전략 과제로 설정했다. 진옥동 신한금융그룹 회장은 최근 주주서한을 통해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를 중심으로 장기적인 자금 운용 체계를 마련하고, 기금형 퇴직연금 확대에 대비한 다양한 전략과 실행 방안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KB금융은 ‘기금형 솔루션 제공자’를 목표로 워킹그룹을 구성하고, 그룹 시너지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응 전략과 실행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농협금융 역시 선제 대응에 나섰다. 외부 전문가 초청 설명회를 통해 자회사 간 공감대를 형성하는 한편, 지주 차원의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해 제도 도입에 대비하고 있다. 특히 정부가 추진 중인 ‘농업인 퇴직연금 제도’와 연계해, 소득이 불규칙하고 자산이 농지에 집중된 농업인을 위한 맞춤형 연금 모델 설계도 검토 중이다.
다만, 실제 제도 도입까지는 운용 책임과 거버넌스 체계를 법적으로 정비해야 하는 숙제도 있다. ‘수탁자 책임’ 강화가 핵심 쟁점으로 꼽힌다. 기금형 구조에서는 자산을 운용하는 주체가 가입자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하는 법적 의무를 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이에 금융사는 단순 상품 판매뿐만 아니라 운용 성과와 의사결정 과정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 책임을 지는 구조로 바뀌면서 소비자 보호 역량도 더 중요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 임제홍 신한은행 퇴직연금솔루션부 부장은 “단순한 상품 소개 중심의 교육이 아니라 기대 수익 경로와 손실 가능 구간, 장기 투자 원리 등을 중심으로 한 설명 방식으로 전환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위험자산 투자 확대에 따른 사후 민원 리스크에 대해선 “1페이지 요약과 질의응답(Q&A) 형태의 표준화된 설명서를 도입하고 디지털 기반의 동의·설명 절차를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고도 제언했다.
은행권 내부에선 이해상충 방지 규제가 강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계열 자산운용사의 상품을 우선 편입하거나 그룹 내 시너지를 활용해 영업을 확대하던 기존 관행이 제약을 받을 수 있고, 조직 간 정보 차단과 내부 통제 장치 구축도 요구될 가능성이 크다. 또 사업자 간 과도한 경쟁을 방지하기 위해 ‘선관주의 의무’를 보다 엄격히 적용하고, 사업자 평가 등 다양한 항목을 포함한 공시 체계가 신설되는 등 감독 체계 역시 강화될 전망이다.
아울러 퇴직연금 적립금의 상당 부분이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머물러 있는 구조도 개선 과제로 지목된다. 특히 퇴직연금 계좌에 주식과 ETF와 같은 위험자산을 70% 이상 편입할 수 있도록 한 ‘70%룰’도 완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에 최종진 한국투자증권 연금혁신본부장은 “투자성향별 투자한도 차등적용과 일정 수준 이상의 투자 교육을 이수한 경우 전문 가입자 자격을 부여하는 식으로 해서 투자문화를 확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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