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월세 더 낼게요" 애걸해도 퇴짜만 15번... 반려인 10명 중 4명 '주거불안'

강지수 2026. 4. 1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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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리서치-서울대 수의대 공동
'반려동물 양육 가구 실태 조사'
임차 반려인 46% "다음 집 불안"
5명 중 1명 "이웃과 갈등 있었다"
'각오' 위한 보호자 교육에 긍정적
총리 산하 반려동물 정책위 첫 삽
국제 강아지의 날인 지난달 23일 경기 여주시 '반려마루 여주'에서 보호동물들이 직원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국제 강아지의 날은 2006년 미국 반려동물학자 콜린 페이지가 모든 강아지를 차별 없이 보호하고 유기견 입양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제안한 기념일이다. 뉴스1

한 살배기 고양이 덕배의 보호자 강소월(42)씨 부부는 최근 이사 갈 월셋집을 구하며 3주 만에 15번 퇴짜 맞았다. 반려동물 양육이 금지된 집은 물론 반려동물 월세를 더 내야 한다는 집도 있었다. 덕배 위로 다섯 살짜리 고양이 두 마리가 더 있다는 설명에 부동산 주인은 "심하다. 그렇게까지 동물을 왜 키우냐"며 핀잔을 줬다. '원룸도 아니고 스무 평 넘는 집인데. 우린 아이도 없고 월세도 100만 원 이상 내겠다는데...' 강씨는 "어느 정도 환경이 갖춰지지 않으면 애들이 아플까 봐 불안하다"며 온 힘을 쏟았다. 가까스로 새 보금자리를 구한 뒤 그는 한동안 몸살을 앓았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가 전체의 15%(313만 가구)를 돌파한 시대. 더 이상 "너희 집 강아지 키워?"라며 놀라는 이는 없다. 하지만 반려인들의 속사정은 다르다. 새 가족맞이에 필수적인 '집'을 구하는 것부터 난관이란 설문 결과가 나왔다. 강씨처럼 '살 집을 구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불안에 떠는 양육자가 10명 중 4명에 달했다. 이웃 간 갈등, 양육 비용 등 끝없는 고충도 오롯이 양육가구의 몫이다. 정책적 도움이 절실하지만 뼈대가 될 기초 통계조차 부실한 실정이다.

한국일보는 한국리서치와 서울대 수의대 천명선 교수 연구팀이 지난해 3월 전국 반려동물(개·고양이) 양육 가구 주 보호자 2,0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반려동물 양육 실태조사를 입수했다. 이번 설문은 개인이 아닌 가구당 1명의 주 양육자를 대상으로 그들의 인식을 물어 현실을 면밀히 파악했다. 양육자의 심리적 고통, 주거·의료비 부담, 이웃 갈등 등 여러 어려움을 동시에 조사한 건 처음이다. 조사와 별개로 반려동물 양육자 8명을 인터뷰해 현실적 고충과 함께 어떤 정책이 필요할지 들어봤다.


전월셋집 사는 반려인, 이사 철마다 '쩔쩔'

2018년 1월 19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제2회 국제 캣산업 박람회'의 한 부스에서 캣타워를 판매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사에 응한 양육자 중 자가가 아닌 전·월셋집에 산다고 답한 비율은 32.0%다. 임차 가구 반려인의 46.3%는 '계약 만료 후 반려동물과 살 집을 구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느꼈다. 집주인 허락을 받았더라도 양육 환경을 갖췄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가령 고양이를 키울 땐 캣타워(고양이가 오르내리는 놀이용 구조물)와 화장실을 둘 만한 공간, 중문 달린 창문이 있어야 바깥 구경을 하면서도 문틈으로 탈출하는 걸 막을 수 있다. 계약이 끝난 뒤 반려동물로 인한 배상을 요구할 수 있다는 불안감(32.9%)도 컸다. 노견을 키우는 30대 신모씨 부부는 "똥오줌을 못 가려서 전셋집에 냄새라도 밸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반려동물 금지조항을 계약 특약으로 내건 집주인들을 여럿 만난 임차인은 '몰래 키우기'를 택하기도 한다. 임차가구 양육자 5명 중 1명(20.8%)은 "반려동물을 키우다가 들킬까 불안하다"고 했다. 원룸에 홀로 사는 직장인 조모(27)씨는 월세 계약서를 쓸 때마다 '반려동물을 키우면 계약을 파기한다'는 내용 옆에 서명해야 했다. 3년 전 가족이 된 고양이의 존재를 알리지 않고 키웠다. 행여 들킬까 마음을 졸이다 결국 올해 초 본가로 고양이를 보냈다. 이번 조사를 설계한 천 교수는 "2030세대 등은 원래 주거의 불안정성이 있는데 동물이 이를 증폭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웃 눈치, 반려동물 케어에 지친 보호자들

강소월씨가 키우는 고양이 덕배. 강씨 제공

응답자 절반(48.2%)은 아파트에 살아 이웃과의 마찰도 걱정해야 했다. 5명 중 1명(18.2%)은 "반려동물 때문에 이웃과 싸웠다"고 답했다. 주요 원인은 △실내 짖음(46.7%) △실외 짖음(32.1%) △달려들기·물기 등 위협(28.6%) △배설 문제(25.3%) 순으로 나타났다. 신씨 부부는 "현관문에 '밤에 개 짖는 소리가 나서 시끄럽다'고 적힌 쪽지가 붙어 놀란 적이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를 해결할 뾰족한 수가 없다는 점이다. 갈등을 겪은 양육자들은 △이웃에게 사과하거나(63.4%·복수응답) △반려동물 훈련·생활습관 개선(26.7%) △금전 보상(21.4%) 등으로 갈등 상황을 대처했다. 하지만 나머지 3분의 1은 방치하거나, 이사하거나, 반려동물을 다른 곳으로 보냈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양육 자체에도 신경 쓸 지점이 한둘이 아니다. 가장 큰 어려움은 '집을 비우기 어렵다'(52.7%)는 점이었다. 털·배설물 등 위생관리(13.7%), 질병·질환 등 건강 이상 대처(8.8%)가 뒤를 이었다. 고양이인 호랭과 창문을 키우는 김지양(40)씨는 "지난해 여름 1주일간 입원해 집을 비워서 친구에게 고양이를 돌봐달라고 부탁했는데 호랭이 밥을 먹지 않아서 급히 퇴원한 적이 있다"며 "고양이는 아파도 되지만 집사는 아프면 안 된다는 걸 그때 절실히 깨달았다"라고 했다.


"사전 교육으로 '보호자 될 각오' 시험해야"

국제 강아지의 날인 지난달 23일 경기도 화성시 '반려마루 화성'에서 봉사자가 입양을 기다리는 강아지 미용을 해주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모든 어려움, 미리 제대로 알았으면 어땠을까. 반려인 대부분(82.2%)은 '보호자 의무 교육'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교육 대상으로는 △반려동물 기본 생체 질병 관리 정보(32.8%) △문제 행동 대처 방안(17.4%) △관련 법·제도(16.6%) 등을 꼽았다.

제주에서 고양이 상투와 새벽이를 키우는 이모(50)씨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반려동물을 데려와 건강에 안 좋은 생활습관이나 행동을 뒤늦게 알아차렸다"며 "그제야 인터넷과 서적을 찾아보고 공부했다"고 아쉬워했다.

각오 없이 키웠다가 반려동물을 버리는 최악의 수를 막기 위해 규제를 조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매년 유기되는 반려동물 수는 약 11만 마리로 추정된다. 이번 조사에 응한 주 보호자 5명 중 1명은 그 이유를 '보호자 의무에 대한 규제 부족' 때문이라고 봤다. 동물등록제 의무화와 자격심사가 대안으로 떠오른다. 강씨는 "동물 등록을 제도화하며 관련 세금을 걷어서 반려동물 관련 제도를 운용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만 천 교수는 자격심사에 대해 "인간과 동물 관계를 규격화해버릴 것"이라며 "'가난한 사람들은 개를 절대 키울 수 없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신 대부분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 중인 보호자 교육 프로그램 활성화를 당부했다.

제주에 사는 이모(오른쪽)씨네 세 가족이 반려 고양이 상투(왼쪽)와 새벽이를 안고 있다. 이씨 제공

정책 마련 첫발 뗀 정부... "데이터 수집부터"

김민석(왼쪽 세 번째) 국무총리가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반려동물 정책위원회 1차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각종 생활밀착형 정책 필요성도 제기됐다. 주거 문제로 고초를 겪은 강씨는 '동물 전용 공공주택'과 '임대인 인센티브(반려가구에 임차를 준 집주인에게 금전적 혜택이 가는 제도)'를 제안했다.

이재명 정부에서도 반려동물 정책 논의를 시작했다. 앞서 이 대통령이 담당 부처를 정하라고 지시한 뒤 관련 정책을 다룰 국무총리 산하 반려동물 정책위원회가 가동됐다. 김민석 총리는 지난달 30일 첫 회의에서 "일단 반려동물과 함께하고 그들을 돌보고 키우는 가족, 사람들을 중심으로 생기는 문제들을 바라보는 게 좋겠다"고 밝혔다.

천 교수는 반려가구 데이터 수집을 위한 국가 단위 연구 프로젝트로 정책 마련의 첫발을 떼자고 제언했다. 수의사이자 네 고양이의 보호자인 그는 '너무 잘 키우려는 강박'을 내려놓자고도 했다. "상담을 요청하는 반려인들에게 '괜찮다, 정상이다, 개는 원래 짖는다'는 얘기를 해줘요. 이상적인 기준을 세우지 말라는 거죠.반려동물의 취약성에 대해 포용적인 태도를 갖는 것도 좋은 사회의 특성이 아닐까요?"

그래픽=송정근 기자
반려동물 양육 실태조사
반려동물 양육 실태조사 관련 더 세부적인 사항이 궁금한 독자는 이혜민 한국리서치 본부장(02-3014-1052, hmlee@hrc.co.kr)에게 연락하면 안내 받을 수 있다.

강지수 기자 soo@hankookilbo.com
최은서 기자 silv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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