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컴공과 나와도 갈 데가 없다니”…개발자 60%가 경력직

이호준 기자(lee.hojoon@mk.co.kr) 2026. 4. 11.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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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인 이상 기업 개발자 살펴보니
1년만에 경력자 비중 10%P 증가
“신입보다 AI 쓰는 게 낫다” 인식
개발자 임금 격차도 해마다 심화
최근 개발자를 AI로 대체하는 기업이 늘어나면서 관련 업종의 대졸 신규 취업문이 좁아지고 있다. 사진은 개발자가 사무실 내에서 작업하는 모습을 AI로 생성한 이미지. <나노바나나2>
서울의 한 4년제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박진한 씨(27)는 취업에서 여러 번 낙방했다. 박 씨는 “주변에 컴공과를 나온 친구들도 취업을 하기 힘들어 일단 중소기업에서라도 일하자는 분위기가 강하다”며 “언제까지 백수로 지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어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

개발자 채용 중 경력직 비중이 절반을 넘으면서 대졸자나 졸업예정자를 뽑는 신입채용 문은 점차 더 좁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일경제가 국가데이터처 산업기술인력수급실태조사 결과를 마이크로데이터로 분석한 바에 따르면, 2024년 500인 이상 기업이 채용한 개발자 598명 중 61%인 366명이 경력직이었다. 2023년에는 500인 이상 기업들이 채용한 개발자 473명 중 51%인 241명이 경력직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1년 만에 10%포인트 경력직 비중이 높아진 것이다.

최병호 고려대 휴먼 인스파이어드 AI 연구원 연구교수는 이에 대해 AI의 발달로 인해 신규 채용이 오히려 줄어드는 ‘주니어 절벽 현상(Junior Cliff)’이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주니어 절벽 현상은 기존의 신입 직원들을 많이 뽑던 인력 피라미드 구조가 AI 발달로 인해서 신입 직원들의 채용이 이뤄지지 않는 현상으로, AI 도입과 주니어 채용 감소 현상을 분석한 스탠퍼드대 에릭 브리뇰프슨(Erik Brynjolfsson) 교수팀 연구를 기반으로 한다. 학사 출신이 아닌 석박사 인력 채용 수요가 높아진다는 방증이다.

업계에서는 AI 발달에 따라 회사가 신입 개발자를 선호하지 않는 트렌드가 이어질 것으로 본다. 구독료만 내면 사용할 수 있고 사람과 달리 24시간 일하는 AI가 신입 개발자를 대체하는 현상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강승규 국민의힘 의원실이 교육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바탕으로 서울대, 카이스트, 지방거점국립대 등 11곳 대학의 컴공과 졸업생 취업 현황을 분석한 결과, 2019년에는 졸업생 888명 중 503명이 취업(56%)했다. 추적이 가능한 분석대상자 471명 중 대기업 취업자는 123명, 중견중소기업은 265명이었다.

하지만 2024년에는 졸업생 1001명 중 431명만이 취업(43%)해 취업률 자체가 떨어졌다. 분석대상자 398명 중 대기업 취업자는 91명, 중견중소기업자는 228명으로, 5년 새 대기업에 들어간 인원도 크게 줄었다.

서울대 상황도 마찬가지다.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졸업생은 2019년 66명 중 36명이 취업(54%)했는데, 분석대상자 33명 중 11명은 대기업으로, 22명은 중견중소기업으로 취업했다. 2024년에는 졸업생 80명 중 45명이 취업(56%)했고 분석대상자 39명 중 대기업 취업자는 7명에 그쳤다. 중견중소기업행을 택한 학생은 30명이었다. 전체 취업률은 소폭 상승 했지만, 분석 대상자 기준 대기업 취업률은 반토막 수준이다.

바늘구멍을 뚫고 개발자로 취업을 했더라도 신입 개발자들은 또다른 ‘임금 격차’를 마주하게 된다. AI활용 능력에 따라 노련한 기존 개발자와 신규 개발자 간 임금 격차가 커지는 양극화가 뚜렷해진다.

한국인공지능·소프트웨어산업협회가 개발자 4만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개발자 상위 25%와 상위 75%간 하루 임금 차이가 해마다 벌어지고 있다.

지난 2021년 응용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평균 일일 급여는 상위 25%가 35만8100원, 하위 25%가 18만7200원이었지만, AI 활용 범위가 넓어진 지난해에는 상·하위 25%의 일일 급여 격차가 49만2300원과 21만6100원으로 벌어졌다. 상위 25% 개발자 임금이 40% 가까이 증가하는 동안, 하위 25%는 15%만 늘어났다. AI를 잘 쓰는 기존 개발자들은 오히려 몸값이 높아지고, 그렇지 못한 신규 개발자나 수습 개발자들은 임금이 정체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 AI 스타트업에서 연봉 7000만원을 받던 개발자 이 모씨(29)는 지난해 구조조정을 당한 후 다시 구직중이다. 이 씨는 “대표님이 ‘AI가 신입 개발자들보다 일을 더 잘한다고 했다’며 그동안 대학에서 공부했던 것이 허사가 된 듯 해 씁쓸하다”고 말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AI 활용 능력에 따라 임금의 차이가 확연히 벌어지고 있다”며 “비교적 개발 난도가 낮은 기존의 일반적인 웹이나 앱 개발은 개발 비용도 낮아져 임금이 정체된 반면 ,고차원의 AI 소프트웨어 개발 등 업무를 하는 상급 개발자는 고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병훈 포항공대 전자전기공학과 교수는 “이는 개별 기업 차원에서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라며 “미숙련 전공자들이 고숙련 전공자가 될 수 있도록 교육 프로젝트나 공공 개발 프로젝트에 정부 예산을 투입하거나, 기업들이 사회적 기여를 하도록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부가 새로운 인력 창출 트랙을 만들고, 그 반대급부로 기업 활동에 대해서는 인센티브를 주는 데 대한 국민적 합의와 조율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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