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노트' 끌어낸 이 책…'다른' 기업 보도는 가능할까

노지민 기자 2026. 4. 11.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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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먼슬리] '동전주'에서 '100만 닉스' 올라선 언더독 스토리…'슈퍼모멘텀' 공동저자 이인숙·임수정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

▲지난달 25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인스타그램에 게시한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왼쪽)와의 사진

지난달 25일, 최태원 SK 그룹 회장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손목 깁스' 사진이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최 회장은 자신의 깁스에 사인과 응원 메시지를 적어 준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등의 모습을 함께 전했다.

이는 전쟁 등 대외적 위기로 '100만 닉스'가 무너진 가운데 글로벌 빅테크와의 'AI 반도체 협력 네트워크'에서 SK하이닉스의 위상을 부각한 행보로 풀이된다. AI 확산은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메모리(HBM·High Bandwidth Memory)에 대한 글로벌 빅테크의 수요 급증을 부르고 있다. 한국 기업사에서 사라질 뻔 했던 하이닉스가 'SK하이닉스'가 되며 이룬 성과다.

최태원 회장은 SK하이닉스의 성공기를 다룬 책 '슈퍼모멘텀'에서 이렇게 밝힌 바 있다.

“2002년 하이닉스가 마이크론에 매각됐다면 어땠을지 생각해 봅니다. 한국 반도체 시장은 지금쯤 벼랑에서 떨어진 상태가 됐을지도 모르죠. 지금 AI 시장의 맨 위에는 일반 사람들이나 회사가 쓸 수 있는 AI 애플리케이션이 있고 그걸 만들 수 있는 대규모언어모델(LLM)에 빅테크들이 엄청나게 투자하고 있습니다…(하이닉스가 없었다면) 각국 정부와 빅테크들이 데이터 센터를 비롯한 AI 인프라 투자를 이야기 할 때 한국은 배제됐을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언론사·청와대 출신 저자 6명이 펴낸 SK하이닉스 '언더독 스토리'

언론사 기자, 청와대 등을 거친 저자들(이인숙·김보미·김원장·유민영·임수정·한운희)은 SK하이닉스의 '언더독 스토리'를 한 권의 책으로 펴냈다. 주가가 135원까지 떨어져 상장폐기 위기에 내몰렸던 동전주 기업이 시총 800조 원을 넘보는 AI 시대 글로벌 선도 기업으로 도약하기까지 겪은 위기와 혁신, 리더십과 조직 문화에 대한 이야기다.

지난달 19일 서울 마포구에서 미디어오늘 주최로 진행된 '미디어먼슬리'에선 6명의 저자 중 기업 전략 컨설팅 그룹 '플랫폼9와4분의3'의 이인숙, 임수정 이사가 '슈퍼모멘텀'의 숨은 이야기를 전했다. 이인숙 이사는 경향신문 기자 출신으로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실(커뮤니케이션 기획 담당)을 거쳤고, 임수정 이사는 17년간 국회 보좌진으로 일한 뒤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실과 디지털소통센터 등에서 일했다.

▲지난달 19일 미디어오늘 주최로 서울 마포구에서 진행된 미디어먼슬리에서 강연하고 있는 임수정·이인숙 '슈퍼모멘텀' 공동저자. 사진=미디어오늘

임수정 이사는 “AI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회사들은 수만 개의 선택지가 있고, 이걸 만드는 수백 개의 선택지를 구동하기 위한 칩은 수십 개 선택지가 있다. 이 칩을 만들기 위해 메모리를 공급하는 곳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마이크론”이라며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는 것을 보며 SK하이닉스의 언더독 스토리를 살펴보려고 했다”라고 했다.

'슈퍼모멘텀'에는 곽노정 SK하이닉스 CEO를 비롯한 'C레벨'(최고책임자급) 임원과 전현직 엔지니어들 인터뷰가 담겼다. SK하이닉스의 저력은 명함에 있는 'We Do Technology'라는 문장으로 요약됐다. 이인숙 이사는 “여러 하이닉스 임원이 '엔지니어 CEO'가 바꾼 문화를 단순하게 표현한 말이 있다. '엔지니어 CEO 밑에서는 거짓말을 못한다'라는 것”이라며 “'C레벨' 5~6명이 회의를 하면 자료를 만들지 않는다고 한다. 모든 현안을 다 알고 있어서 바로 대화하면서 결정한다고 하더라”라고 덧붙였다.

기업 관계자들의 입을 빌린 책에는 '홍보성 글'이 아니냐는 의문이 따라붙는다. 관련해 임 이사는 “2024년 말 이 책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최태원 회장이 결심을 해줘서 첫 번째 인터뷰를 하게 됐다. 그러고 나니 나머지 임직원, HBM을 개발한 분들을 30명 넘게 인터뷰하게 됐다”라며 “한국 기업이 AI 혁명 안에서 어떤 포지션과 기회가 있을지, 관찰자 입장에서 담백하고 객관적으로 쓰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기업의 역사도 대한민국의 한 단면”

이 이사는 “(인터뷰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안심이 됐던 말은 '우리 용비어천가 써줄 필요 없다'라는 SK관계자의 말이었다”며 “'우호적 관찰자' 같은 위치에 서게 된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한국에는 기업에 대한 스토리가 부재한 것 같다. 기업의 역사도 대한민국의 한 단면”이라며 “그런 것을 발굴하고 복원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책에는 향후 하이닉스가 맞닥뜨릴 리스크에 대한 조언이 권석준 성균관대 반도체융합공학과 교수의 '코멘터리'로 담겼다. 권 교수는 “일본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이 모바일 전환 과정에서 실기했던 역사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며 “일본 업체들은 PC와 서버에 맞는 메모리는 굉장히 잘 만들었지만 모바일에 적합한 메모리로 전환하지 못했다. HBM을 만들었으니 잘한 것이라고만 생각하면 일본 기업처럼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SK하이닉스-엔비디아-TSMC '삼각동맹' 협력 구도가 '기술 패러다임 시프트'에 의해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최 회장은 SK하이닉스의 미래에 대한 자신의 답을 '최태원 노트'에 담았다. “시장이 하이닉스를 아직 '커머디티', 제조사로 인식해 더 높은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았다. AI 반도체 회사 혹은 AI 인프라 회사로 전환하지 않으면 마켓 캡의 벽을 깨기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하다…엔비디아와 비교하면 하이닉스는 지금보다 10배는 더 커져야 한다. 몇 년 후면 목표를 1000조 원, 2000조 원으로 더 높여서 잡을 것이다.”

기자들이 전문적 태도와 역량으로 만드는 기업사 콘텐츠에 대한 기대도

'미디어먼슬리' 현장에선 한국 언론이 기업을 재현하는 방식이 거친 비판이나 노골적인 홍보 양극단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도 나왔다. 관련해 임 이사는 “새롭게 소재들을 발굴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 예컨대 주로 경영권 분쟁 사안으로 다뤄지는 고려아연의 경우 첨단산업의 핵심 광물을 다루는 기업이라는 점에서 국제적인 역학관계를 중심에 둔 관점으로 접근해보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는 조언이다.

이 이사는 “기자들이 오랜 시간 취재하고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상대를 바라보는 것들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며 “전문적 태도와 역량을 가지고 퀄리티 있게 만드는 기업사 콘텐츠가 많아지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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