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데헌' 이재도 '블핑' 제니도…한국의 멋 살리려 찾았다 [김수영의 크레딧&]

김수영 2026. 4. 11.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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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의 크레딧&]
제양모·강주형 르쥬 대표 겸 디자이너 인터뷰
블랙핑크 제니 이어 '케데헌' 이재 의상 제작
韓 전통 요소, 금속·자개 소재로 수공예 매력 살려
"고유의 색깔 내는 장인 정신 담으려 노력"
"살아 숨 쉬는 옷 만들어야…하나의 장르 되고 싶다"
작곡가 겸 가수 이재, 그룹 블랙핑크 제니가 르쥬의 의상을 입은 모습. /사진=AP, 르쥬 SNS 캡처


서울 신당동의 한 아틀리에. 안으로 들어서자 예스러운 분위기의 고가구와 둥그런 백자가 깔끔하고 새하얀 인테리어와 어우러져 차분하면서도 고풍스러운 느낌을 냈다. 공간 한편에는 또렷한 색감의 아방가르드한 의상이 가지런히 걸려 있었다. 전통과 현대의 공존, 그 안에서 느껴지는 묘한 균형감이 아늑함을 줬다.

사무실에서 걸어 나온 두 남성은 동일한 흰색 롱 아우터를 걸치고 있었다. 단정하게 떨어지는 깃과 단추의 문양 등을 보니 한복을 모티브로 한 의상이었다. 가슴팍에 붙은 검은색 패치에는 'LEJE'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고, 반대편에는 '제양모', '강주형' 이름이 적힌 명찰이 달려 있었다. 브랜드 '르쥬(LEJE)'를 이끄는 대표이자 디자이너인 둘이었다.

강주형, 제양모 디자이너. /사진=르쥬 제공


의상에 관해 묻자 이들은 "유니폼이다. 한복에서 차용한 것"이라면서 "아틀리에가 브랜드를 대표하는 심장과도 같은데 말도 안 되는 가운을 입으면 안 되지 않나"라며 미소 지었다.

르쥬는 최근 가수 제니의 의상을 제작해 화제를 모았다. '서울 시티(Seoul City)' 뮤직비디오에서 착용한 자개로 만든 튜브 톱, 신라 금관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젠(ZEN)' 뮤직비디오 속 금속 의상, 'MMA 2025' 무대에서 선보였던 '청구영언' 구절이 빼곡히 적힌 15m 길이의 베일, 금박장이 손수 만든 '제니'라고 적힌 2000여개의 스팽글 포인트 재킷까지 모두 두 사람에게서 나왔다.


제양모 디자이너는 "제니 씨는 자기 뿌리, 한국적으로 새롭게 보여줄 수 있는 것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한국적인 걸 보여주되 너무 정제된 느낌이 아니길 바랐다"면서 "외국에서 보는 한국의 이미지가 단아함, 달항아리와 같은 단정함, 조용한 아침의 나라이지 않나. 그런 걸 조금 다른 식으로 얘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젠' 뮤직비디오 속 금속 의상은 제니가 신라의 여성 리더인 '원화'가 됐다고 상상하며 디자인했다. 신라 금관 장식에서 영감을 받아 전통 투각문 양식을 활용한 바탕에 1000개 이상의 금속 장식을 전통적인 수작업으로 연결해 완성했다. 하의는 살창고쟁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으며, 신라 금관을 모티브로 한 금속, 곡옥 장식을 더해 완성했다.

제 디자이너는 "제니 씨가 '옷은 하우스, 꾸뛰르까지 입어볼 만큼 입어 봤다. 아무도 보지 못한 옷을 입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젠' 뮤직비디오에서 나온 금관 장식도 전혀 새로운 걸 보여주고 싶어 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장 많이 신경을 쓴 건 제니라는 인물이 이러한 옷을 입어야 하는 이유, 즉 내러티브였다고 한다. 제 디자이너는 "스토리 구성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무작정 한국이라는 것만 리서칭하는 건 말이 안 된다. 그건 끼워서 맞추는 것"이라면서 "'원화'라는 스토리 라인을 만들었고, 제니 씨도 이를 마음에 들어 했다"고 전했다.

사진=르쥬 제공


'청구영언' 구절이 쓰인 베일을 길게 늘어뜨린 무대도 화제가 됐는데, 이와 관련해서는 "제니 씨가 오랜만에 서는 국내 시상식 무대였다. '한국 팬들에 대한 선물'처럼 하고 싶다고 했다. 고민하다가 정한 게 한글이었고, '청구영언'의 의미가 좋았다. 제니 씨는 한국 가수고, '청구영언'은 한글로 나온 최초의 가사집이라는 특수성이 있었다. 대중에게 익숙한 시조도 있었다. 또 글씨 자체가 미학적으로도 아름답다고 생각해 택했다"고 밝혔다.

기획부터 제작까지는 약 한 달 정도가 소요됐다고 한다. 공연 2주 전부터는 매일 피팅하며 디테일을 잡아 나갔다. 제 디자이너는 "제니 씨가 하루에 살이 1kg씩 빠질 정도로 연습하더라. 그럼 옷이 계속 바뀌는 거라서 무대에 오르기 직전까지 계속 피팅했다"라면서 "일주일 동안 잠을 못 잤다. 힘들었지만 그만큼 만족스러운 무대였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넷플릭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주역인 이재의 의상도 맡았다. 이재는 그래미 어워드,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 등 세계적인 무대에 서면서 두 사람의 손길을 받았다.

사진=로이터, 이재 SNS 캡처


그래미 어워드에서는 2500여 개의 '복(福)' 문구가 새겨진 스팽글이 달린 스커트를 입었다. 50년 경력의 금박공이 작업한 것으로, 조선 왕조 마지막 공주의 의상에서 영감을 받은 르쥬 컬렉션 의상이었다. 오스카에서는 대한제국 황실 대례복에서 영감을 받아 특별 제작한 옷을 착용했다. 백의민족을 상징하는 순백의 화이트 바탕에 고대 한국의 금관을 연상시키는 금동 장식으로 '케이팝 데몬 헌터스' OST '골든(Golden)'을 형상화했다. 장식 디자인은 무궁화였다.

제 디자이너는 오스카 의상 작업 과정을 떠올리며 "한 달 정도의 시간이 있었다. 처음에는 골드라는 컬러만 정해져 있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 루미가 가지고 있는 제복의 느낌과 골드라는 색이 포인트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재 씨는 한국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적인 걸 꼭 담고 싶다고 했다"고 전했다.

글로벌 무대에서 직접 라이브로 노래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이재도, 두 디자이너도 더욱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제 디자이너는 "고음이 올라갈 때 옷이 너무 조이면 안 됐고, 무대 위아래를 오가는 동선까지 세세하게 고민해야 했다. LA에 동행했는데,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대비해 다른 의상들도 가지고 갔다"고 했다.

어느 작업 하나 간단하고 쉬운 게 없다.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도전 정신, 그리고 숙련된 장인 정신이 동시에 깃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이재의 오스카 의상에 더해진 두석 장식은 가구에 쓰이는 소재다. 강주형 디자이너는 "가구에 쓰는 소재는 마감이나 광택 등에 신경을 기울여야 한다"고 털어놨다. 자개 작업에 대해서도 "자재가 예민한 소재다. 여기에 3D 프린팅까지 활용하려니 정말 어려웠다. 장인 분들도 3D 소재가 익숙하지 않아서 자개가 계속 떨어지고 칠이 벗겨졌다. 시행착오가 많았다"고 전했다.

사진=르쥬 SNS 캡처


르쥬의 작업 과정에서는 손이 거칠고 부르튼 장인들이 자주 등장한다. 브랜드가 추구하는 전통성이 단순히 '오래된 것'이 아닌 '얼과 혼'이 담긴 것임을 의미하는 장면들이다. 두 디자이너가 숙련된 수공예 장인들을 발로 뛰며 찾아다니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만 이들은 "장인 정신이 거창한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 분야에서 오래 일해서 그 분야에서 나만의 색깔을 낼 수 있으면 장인이라고 생각한다. 니트웨어를 하는 분 중에는 주부인 분들도 많다. 그분들 역시 장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분들만이 할 수 있는 게 있다. 저희는 그걸 많이 담아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외고에서 중국어를 전공했던 부산 출신의 제 디자이너, 트럼펫을 전공한 여수 출신의 강 디자이너. 절대 만날 수 없을 것 같았던 두 사람은 대학 진학을 앞두고 '패션'이라는 공통점에 강하게 이끌렸고, 무작정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나 타지에서 서로를 만났다. 각각 파리 스튜디오 베르소와 에스모드 파리를 졸업한 뒤 알라이아, 랑방, 발망 등에서 경험을 쌓고 마침내 르쥬에서 함께 디자이너로서의 뜻을 이루고 있다.

두 사람이 요즘 빠져 있는 건 원단이라고 했다. 제 디자이너는 "지속가능성 소재를 최대한 사용하자는 주의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실크를 접하게 됐다"면서 "문을 닫는 실크 공장이나 공방에 가서 이제는 생산할 수 없는 오래된 원단들을 많이 구매하고 있다. 이걸 어떻게 할 수 있을지 그 다음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서적과 역사 관련 논문을 수시로 들여다 보고, 경매장을 드나들며 견문을 넓히는 건 일상이 됐다.

사진=르쥬 제공


"사람이 입어야 살아 숨 쉬는 옷이 되잖아요. 저희는 의류를 만드는 디자이너고, 옷을 살아 숨 쉬게 하는 게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에서는 르쥬가 아티스트 의상으로 주로 알려졌는데, 커머셜하게 풀어낸 것들도 많습니다. 꼭 한복이나 한글이 아니더라도 은은하게 한국의 이미지가 느껴질 수 있도록 고민하고 있습니다."

"목표요? 하나의 장르가 되고 싶습니다. 옷을 보고 '어떤 나라', '누구 옷'이라고 떠올리듯이 말이죠. 하나의 장르가 돼서 남들이 영감을 받는 브랜드가 되는 게 목표입니다."

K컬처의 화려함 뒤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땀방울이 있습니다. 작은 글씨로 알알이 박힌 크레딧 속 이름들.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스포트라이트 밖의 이야기들. '크레딧&'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을 하는 크레딧 너머의 세상을 연결(&)해 봅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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