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에선 ‘오빠’가 ‘군림하려는 남자’로도 쓰인다? [.txt]

한겨레 2026. 4. 11. 14:06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신견식의 세계 마음 사전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어 욕을 아는 외국인이 많아져서 외국에 나가 함부로 말하면 안 된다는 우스갯소리도 흔하다. 사진은 침대에 누워 노트북 컴퓨터로 한국어를 공부하는 외국인의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외래어나 차용어에는 명사가 많다. 새롭게 받아들이는 사물이나 개념을 나타내는 말이 대개 명사이기 때문이다. 형용사나 동사를 비롯한 다른 품사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딱 떨어지게 개념화하기가 어려운 말이 많아서도 그렇고, 보통 그 덩어리만 들어오면 되는 명사와 달리 형용사나 동사는 형태론적으로 기존의 체계에 융합하기 더 어렵다. 한국어는 ‘건강하다/활동하다’나 ‘섹시하다/트레이닝하다’처럼 한자어나 외래어의 어근에 ‘하다’가 붙는 형용사나 동사가 많고 어근 자체는 대개 명사처럼 인식된다.

이런 점에서 감탄사는 좀 특이하다. 한 덩어리이니 형태론적인 제약이 덜하고 속성상 놀람이나 느낌, 부름, 응답 따위를 나타내며 즉각 튀어나오는 말이 많다 보니 언어마다 비슷할 것도 같다. 예컨대 놀라거나, 당황하거나, 기쁘거나, 슬프거나, 뭔가 깨닫거나, 상대편의 주의를 끌 때 나오는 ‘아’라든가 웃을 때 나오는 ‘하하’ 따위가 그렇다. 하지만 아플 때 나오는 한국어 ‘아야’나 못마땅할 때 나오는 ‘어허’처럼 딴 언어와 다른 것도 많다. 본능적으로 나오는 말이니 언뜻 차용이 덜할 법한데 의외로 적지 않다. 예컨대 뭔가를 깨달았을 때 쓰는 ‘오호’는 고유어인 반면 슬플 때나 탄식할 때 내는 오호(嗚呼)는 오호통재(嗚呼痛哉)처럼 한자어 감탄사다. 한국어 ‘아야’에 해당하는 독일어 autsch[아우치]가 영어 ouch[아우치]로 차용됐고, ‘우와’에 해당하는 영어 wow[와우]는 이제 많은 언어에서 쓰인다.

‘고맙다’나 ‘미안하다’를 뜻하는 말도 단독으로 쓰이다 보니 언어에 따라 감탄사로 분류되기도 한다. 프랑스어 merci[메르시], 영어 sorry[소리]는 여러 언어에서 두루 쓴다. 한국인도 ‘고맙습니다/감사합니다’나 ‘미안/죄송합니다’보다 가벼운 느낌을 주고 싶을 때 ‘땡큐’, ‘쏘리’를 쓴다. 마음을 너무 깊게 담고 싶지 않다면 외국어나 차용어가 효과적일 수 있다.

한국어는 사용 인구가 거의 8천만명에 육박해 세계 12위 내지 15위인데도 여태 딴 언어에 끼친 영향이 그리 크지 않았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지리적인 고립성, 뭍으로 닿는 주요 언어가 세계 최다 인구인 중국어 하나밖에 없는 점 등 몇몇 요인을 들 수 있겠다. 한국어보다 사용 인구가 적은 유럽 및 동남아시아 여러 언어들도 상호 영향을 주고받았다. 타히티어는 라파누이어 및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의 여러 언어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인구도 매우 적고 서로 유사하긴 하지만 이런 남태평양 언어들의 교류사도 차용어를 통해 드러난다는 것이 무척 흥미롭다.

한국어는 ‘절’(寺)이 일본어 ‘데라’가 됐듯 중세 이전에 전해준 어휘가 조금 있고 현대 일본어 속어 내지 일부 지역 방언에 차용된 낱말이 있긴 해도 거의 고립무원에 가까웠다. 그러다 1990년대 이후 국제화 및 한류를 타고 슬슬 아시아 언어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아직은 한국 문화나 사회에 관계된 어휘에 한정되는 경우가 많다.

한국어가 중국어와 몽골어에서 차용어로 쓰이는 사례를 다룬 연구서와 논문도 있다. 현재 한국에 5만~6만명이 있는 몽골인은 중국이나 러시아의 몽골계 토착 소수민족 말고는 국외 노동자 등의 이주민으로서는 가장 많다. 그동안 한국에서 일하거나 머무르다 간 사람까지 치면 인구가 300만명도 채 안 되는 몽골에서 비율이 꽤 높은 셈이다. 몽골어에 차용된 한국어는 음식이나 사회 문화 현상 또는 비속어 등이다. ‘김치’나 ‘소주’가 한국인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이는데, ‘오빠’는 한국 남자, 군림하려 드는 남자, 젊은 남자 등도 뜻하고 ‘아가씨’는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여자도 일컫는다. ‘새끼’나 ‘씨발’ 같은 욕이 나쁜 놈을 뜻하기도 하고 흥미롭게도 한국인을 일컬을 때도 있다. 비속어는 유행을 잘 타는 편이라 몇해 전 연구 당시의 상황과 지금이 똑같지는 않겠으나 영향은 이어지는 것 같다. 노동자로 많이 들어오는 몽골인들이 한국 욕설을 자주 접해서 그럴 수도 있고 한국 영화를 비롯한 대중문화의 영향일 수도 있겠다.

정말 한국인이 유독 욕설을 많이 내뱉는지는 뚜렷한 기준을 마련해 다른 언어권과 비교해봐야 제대로 알겠지만 욕설 자체가 특정 민족/국민/지역인을 가리키는 사례는 없지 않다. 칠레에서는 스페인 사람을 비속어에서 유래한 coño[꼬뇨]라고도 일컫는다. 같은 언어권이지만 특히 스페인 사람이 말끝마다 그 욕을 더 많이 붙이기에 그런 별명이 생겼다. 한류 열풍 덕에 중국어권에서는 한국어 욕설 차용어 西巴[씨바]를 알거나 말하는 젊은이도 적지 않다. 케이(K)드라마의 선풍적 인기 덕에 이제 한국어의 대표적인 욕을 아는 외국인이 많아서 외국에 나가 함부로 말하면 안 된다는 우스갯소리도 흔하다.

영어의 대표적 욕설인 fuck 및 그 파생어들과 shit 따위는 할리우드 영화 덕에 전세계 사람이 웬만큼 알아듣는다. 영어 구사자가 많은 게르만어권 나라들인 독일어, 네덜란드어, 스칸디나비아어 사용국은 자국어 욕설도 물론 있지만 영어 욕설도 자주 섞어 쓰는 편이다. 한국어와 영어의 대표적 욕설은 원뜻이 성행위인데 독일어와 일본어는 주된 욕설의 뜻이 똥인 것처럼, 언어권마다 다르다 보니 차용어를 쓰는 경우도 있을 법하다. 외국어 욕설이 자국어 욕설보다 임팩트가 덜해서 쓰기도 한다.

넷플릭스 한국 드라마의 인도네시아어나 필리핀어 자막 또는 더빙은 ‘오빠’ 같은 호칭이나 ‘화이팅/파이팅’ 같은 콩글리시 감탄사를 그대로 쓰기도 한다. 한국 드라마를 잘 보는 동남아시아 사람들에게 그만큼 친숙한 단어라는 걸 알 수 있다. 한국 드라마의 인기가 높은 브라질에도 ‘오빠’(opa)가 있다. 공교롭지만 ‘이런, 대박, 우와’를 뜻하는 감탄사다. 이미 ‘oppa’와 ‘fighting’은 옥스퍼드 영어사전(OED)에 등재되었는데, 언젠가 shibal도 실린다면 브라질 한류 팬들은 opa!를 외치지 않을까.

신견식 번역가

신견식 번역가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