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를 골라낸다는 숙제-대전 늑대 사진과 정치인의 쇼츠[청계천 옆 사진관]
● AI 합성사진으로 밝혀진 늑대 탈출 사진
지난 8일 대전의 한 동물원에서 아기 늑대 한 마리가 철조망 아래 흙을 파 구멍을 만든 후 탈출했습니다. 인근 초등학교는 휴교를 하는 등 일대 비상이 걸렸습니다.
이날 대전소방본부는 보도참고자료 형식으로 탈출 직후 촬영된 것처럼 보이는 사진 한 장을 언론사에 배포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제보자가 자기가 본 것을 설명하기 위해 AI로 만든 이미지였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본 상태라 소방본부 입장에서는 조금 난감했을 것 같습니다. 늑대의 탈출 사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진짜 사진이라고 믿었던 사람들도 개운치 않은 마음일 것입니다.

● 선거 앞둔 예비 후보자들의 인터넷 선거 운동
뭔가를 보여준다는 것은 이제 커뮤니케이션의 중요한 방식입니다. 그래서 선거를 앞두고 지하철역에는 예비후보들이 나타나 출근하는 시민들에게 명함을 건네고 악수를 합니다. 노련한 정치인은 악수 하나에도 계산이 있었습니다. 눈을 너무 오래 보면 상대가 불편하니 넥타이 매듭 정도를 보라고 했고, 악력은 적당히 넣으라고 했습니다. 너무 세면 위협이고 너무 약하면 자신감 없어 보인다고 했습니다. 그다음은 시장에 가서 순대를 먹고, 허리 숙여 절을 했습니다.
이제는 쇼츠입니다. 요즘엔 인터넷망과 SNS가 발달되어 있으니 후보자들이 직접 자신들을 촬영하고 편집해 유권자들에게 전달하는 게 쉽습니다. 언론사의 귀찮은 질문이나 기준에 맞출 필요도 없고 대중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합니다.
6.3 지방선거를 앞둔 지금 제 유튜브 알고리즘이 각 지역에서 나온 예비 후보자들의 쇼츠 콘텐츠를 띄웁니다. 트로트 가락에 맞춰 춤을 추는 후보자들도 많고, 지역 경제를 살려야 한다면서 땅바닥에 인공호흡 하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합니다. 50대, 60대 아저씨들이 그러고 있습니다. 길거리에서 같은 나이대의 일반인이 저러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어색해하거나 걱정할 겁니다. 그런데 후보라는 이름이 붙으면 암묵적 동의가 생깁니다.
● 왜 후보의 춤은 허용되는가
정치인의 퍼포먼스에 대한 사회의 묵인은 오래된 관행입니다. 집회에서 마이크를 잡고 울고 웃는 것, 기자 앞에서 과장된 분노와 눈물을 쏟아내는 것도 일반인이 직장에서 하면 민망한 일입니다. 정치인이 하면 ‘설득을 위한 몸짓’이라는 인식이 이미 사회적으로 공유되어 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갑니다.

● 형식은 바꿨는데, 몸이 따라가지 않는다
문제는 여기서 생깁니다. 쇼츠라는 형식은 새롭지만, 그 형식을 소화하는 몸은 새롭지 않다는 점입니다.
수십 년간 회의실과 당 사무소에서 권위 있는 자리를 지켜온 몸은 그 자세와 시선과 말투가 이미 그 환경에 맞게 굳어있습니다. 유연하고 경쾌한 15초짜리 세계는 그 몸에게 낯섭니다. 그래서 많은 쇼츠 후보들이 어색합니다. 웃음의 타이밍이 0.5초 늦고, 손동작이 음악보다 반 박자 느립니다. 억지로 몸을 비틀어 넣은 느낌입니다. 형식을 빌려 입는 것과 몸에 배는 것은 다릅니다.
쇼츠가 갖고 있는 구조적 한계도 있습니다. 알고리즘은 자극이 약해지는 순간 시청자를 다른 화면으로 보냅니다. 더 웃기거나, 더 과감하거나, 더 황당해야 다음 영상도 클릭됩니다. 오늘의 춤은 내일 더 격한 퍼포먼스에 덮입니다.
● 이미지로 정치를 다 할 수는 없다
이 문제는 사실 오래된 것입니다. 사진이 등장한 이후 유럽의 왕들도 미디어를 이용해 자신의 이미지를 관리했습니다. 사진사에게 멋진 사진을 찍게 하고 액자와 앨범을 만들어 일반 가정에 전달했습니다. 이미지를 통해 통치자의 정당성이 주장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냉정한 결론을 내려왔습니다. 이미지의 유통이 실제 권력을 보장하지는 않았습니다. 시각정치의 장에서 패배한 것처럼 보이는 후보가 본 투표에서 승리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도 정확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미지만으로 훌륭한 정치를 할 수 있다고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쇼츠를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소통하지 않는 정치인은 더 나쁜 선택지이기 때문입니다. 어색하더라도 유권자를 향해 몸을 낮추는 시도 자체를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어쩌면 쇼츠는 수능 시험 같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수험생들이 입시가 끝나면 더 이상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그 공부 말입니다. 선거라는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익힌 기술이, 당선 이후의 정치와 얼마나 연결되는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15초로 편집된 얼굴 뒤에 무엇이 있는지를 묻는 것, 그것이 유권자의 몫으로 남아 있습니다.
최근 신차 발표회에 가면 여성 모델들이 차를 소개하는 경우가 과거에 비해 확 줄었습니다. 이미지는 시대에 따라 변합니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그럴수록 오히려 본질에 집중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쇼츠도 그랬으면 합니다. 백년사진이었습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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