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형 때문에 연세대 5번 입학”… 한 번은 인연, 두 번은 신뢰, 세 번은 운명 [유재영의 전국깐부자랑]
깐부. ‘같은 편’, 나아가 ‘어떤 경우라도 모든 것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이’라는 의미의 은어(속어)죠. 제아무리 모두 갖춘 인생이라도 건전하게 교감하는 평생의 벗이 없다면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좋은 인간관계는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깐부들 사이에 피어나는 ‘같이의 가치’를 소개합니다.


● 함께 숨 막히고 함께 버틴 날
1995년 2월 13일.
수많은 연세대 농구 동문 가운데 떼려야 뗄 수 없는 선후배인 둘은 자신들의 농구 인생에서 기억이 가장 선명한 순간으로 같은 날을 꼽는다. 이날이다.
그날 둘은 서울 송파구 올림픽제1체육관에 있었다. 1994~1995 농구대잔치 8강 플레이오프 3차전이었다. 그 직전 시즌 ‘오빠부대’를 몰고 다니며 우승을 거머쥔 연세대는 이 시즌에도 잘나갔다. 정규리그 13전 전승 1위. 라이벌 고려대도 꺾었다. 8강 상대는 실업의 자존심 삼성전자였다. 고려대와의 경기에서 ‘야전사령관’ 이상민이 다쳐 공백이 생겼지만 ‘국보급 센터’ 서장훈이 있었기에 쉽게 고지를 넘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전문가들은 2연패 가능성을 높게 점쳤다. 그런데 분위기가 묘하게 흘렀다. 삼성의 강한 압박에 2차전을 넘겨 줬다. 삼성은 3차전에서도 육탄 수비로 연세대를 괴롭혔다. 서장훈에게는 센터 3명이 돌아가며 거칠게 달라붙었다.
전반전 막판 대형사고가 터졌다. 서장훈이 리바운드 경합 과정에서 상대 선수가 휘두른 팔꿈치에 목을 강하게 맞아 코트 바닥에 쓰러졌다. 한동안 일어나질 못했다. 온몸에 마비가 왔다. 더는 뛸 수 없었다. 팀 대들보가 실려 나가자 벤치 분위기는 얼어붙었다.

당시 연세대 감독은 최희암 현 고려용접봉 부회장, 코치는 박건연 현 KOREA 3X3(KXO·한국3대3농구연맹) 회장이었다. 둘은 하프타임 때 어떻게든 분위기를 되살려야 했다. 최 부회장은 서장훈 대신 센터 구본근을 투입하며 스피드를 더 살리는 맞불 작전을 택했다. 박 회장은 응급처지를 받던 서장훈 상태를 살피면서 동시에 선수들이 과열된 경기 흐름에 휘말리지 않도록 계속 다독였다.
깜짝 활약을 펼친 구본근의 분전에도 연세대는 졌다. 4강 진출 좌절. 그런데 더 급박한 일이 벌어졌다. 에너지를 다 쏟아낸 구본근이 경기 후 구토를 하더니 탈진해 버렸다. 호흡 곤란 증세가 왔다.
“본근아, 정신 똑바려 차려. 정신 차려.”
박 부회장은 소리치며 구본근의 몸 여기저기를 멍이 들 정도로 꼬집고 때렸다. 경기장 밖에선 소녀팬들이 울고불고 난리였다. 간이 산소호흡기에 의존한 채 구본근은 급히 병원으로 이송됐다. 최 부회장은 박 회장에게 상황 정리를 맡기고 인터뷰를 했다.
“승패를 떠나 잘 싸워 준 선수들에게 고맙다. 스코어에선 졌지만 경기에선 이겼다고 본다. 패배에 대해선 입이 열 개라도 할 말 없다.”
마음 같아선 동업자 정신의 문제를 강하게 지적하고 싶었다. 하지만 눌렀다. 선수 부상도 결국 감독 책임이라고 여겼다. 당시만 해도 술을 거의 입에 대지 않던 최 부회장은 그날 술을 마셨다고 한다. 다친 선수들에 대한 걱정과 패배의 충격이 컸다. 병원 밖에서 눈물을 흘렸다는 얘기도 퍼졌다.
당시 혼자 벤치를 지키고 있었다면 그 상황을 어떻게 넘겼을까 싶다. 그래서 2월 13일은 최 부회장과 박 회장이 함께 숨막히고 함께 버티며 서로 통했던 날이다.
“그날 내가 앞에서 방향을 잡고 건연이 네가 뒤에서 팀을 붙잡았어.”
● 지금도 둘 사이엔 농구가 먼저다

둘이 만나면 인사는 짧고 안부는 생략된다. 매일 전화하고 자주 보는 사이다. 무조건 농구 얘기가 먼저다.
“요즘 프로농구에서 센터들이 왜 3점슛을 아끼는지 모르겠어. 못 던지게 하는 건가?”(최희암)
‘영원한 연세대 감독’이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은 최 부회장은 박건연 회장 앞에서는 하고 싶은 말을 다 한다.
“센터가 상대 센터를 끌어내려면 3점슛을 더 잘 쏴야 하지 않아?”(최희암)
편하게 최 감독, 박 코치라고 하자.
“요즘 픽앤드롤(공격자 2명이 스크린을 활용해 득점 기회를 만드는 전술) 수비도 그래. 다 스위치(수비 상대를 서로 바꾸는 것)를 하더라고. 예전에는 ‘파이트스루’라고 해서 상대 스크린이 오면 수비가 그대로 뚫고 나가 공 가진 상대를 따라갔는데 말이야. 지금은 (스크린에) 걸리면 바로 스위치해 버리니까 계속 미스매치(신장 차이 등 공격자에 비해 수비자가 잘못 짝 지어진 상황)가 나잖아. 골밑도 뚫리고 코너도 열리고…. 절대 안 되지. 어떻게든 밀착 수비를 해 줘야 돼.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어깨를 비벼서라도 끝까지 따라가 줘야 해.”(최희암)
설명이 깊어진다.
박 코치가 재빨리 방향을 틀었다.
“그래서 형님이 헷지 디펜스(동료 수비를 도와 울타리를 쌓듯 공격 움직임을 저지하는 전술) 연습을 엄청나게 많이 시키셨잖아요.”
숨 돌릴 틈 없이 다시 주문이 날아든다.
“더블팀(수비 두 명이 순간적으로 공격자를 에워 싸는 것)도 약해. 더블팀에 들어갔으면 공이 밖으로 나오면 안 되는데 말이야. 파울이 나더라도 공을 못 나오게 해야 해.”(최희암)
주문도 하기 전에 식탁 위에 농구 용어가 한가득 차려졌다. 박 코치는 정리에 능하다.
“그러니까 형님이 감독을 다시 하셔야죠. 일본에는 80대 감독도 있어요.”
작전타임 같다. 두 사람의 농구는 끝날 기미가 없다.
● 벤치 설움을 아는 선배, 그에게 붙잡힌 후배


인연의 시작은 198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일고에서 농구를 잘했던 박 코치가 연세대에 입학하던 해다.
“원래 고려대를 가려고 했어요. 그래서 원서 쓰기 전날까지 (신일고 출신 고려대 농구선수) 임정명 선배 집에 잡혀 있었거든요. 접수 전날 밤이 돼서야 집에 가라고 보내 준 거예요. 그런데 접수 당일 원서 써서 고려대로 가다가 연세대 선배들한테 ‘납치’를 당한 거지. 저는 죽어도 고려대였거든요.”(박건연)
그렇게 연세대 사람이 됐다. 최 감독은 연세대 74학번. 박 코치보다 7년 선배다. 1977년 현대 농구팀 창단 멤버로 입단한 최 감독은 해병대에서 군복무를 했다. 박 코치가 연세대에 입학한 해에 제대했다.
“형님이 81학번 중에서도 저를 특별히 예뻐해 주셨죠.”
박 코치는 대학 시절 마음고생이 컸다. 실력을 펼칠 기회가 많지 않았다. 최 감독 역시 비슷한 설움을 겪은 사람이었다. 휘문고 농구부 주장이었지만 체육특기자 진학이 어려워 대학입학 예비고사를 치르고 연세대 체육교육과에 들어갔다. 휘문고 교장 등의 도움으로 농구부에 입부했다. 1학년 때는 주전이었지만 쟁쟁한 후배들이 들어오면서 점차 설 자리를 잃었다.
“중도 포기한 친구들과 비교하면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죠. 위기가 많았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 다 해 봤어요. 당장 성과가 안 나도 포기하지 않고 버틴 덕에 배운 것도 많았죠.”
벤치 신세였던 3학년 때는 잠시 연세대 농구팀을 지도한 미국 농구 전문가 도널드 휴스턴에게 전술적 가르침을 받기도 했다. 이때 전수받은 것들이 나중에 지도자 할 때 탄탄한 밑거름이 됐다. 새롭게 농구를 알면서 버티는 의지가 더 생겼다. 그렇기에 비슷한 고민을 하던 후배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농구를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형님이 ‘힘들게 연세대 왔는데 왜 그만두냐? 조금 쉬면서 마음 추스르고 다시 체육관에 나와라’라고 해 주셨어요. 형님 때문에 버텼습니다.”(박건연)
그런 박 코치에게 또 위기가 왔다. 실업팀 입단이 무산된 것.
“졸업식 이틀 전에 연락이 왔어요. 못 받아 줄 것 같다고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죠.”
군대에 갈 수밖에 없었다. 제대 후를 생각하니 아득했다. 그때 박 코치의 손을 최희암이 잡아줬다. 최 감독은 1982년 은퇴하고 현대 직원으로 일하면서 틈틈이 연세대 농구부 지도를 도왔다. 1986년 연세대 감독이 됐다. 이듬해 1월, 최 감독은 휴가 나온 박 코치에게 대뜸 물었다.
“휴가가 며칠이냐?”
“보름이죠.”
“나 혼자 하기 힘드니까 같이하자.”
그렇게 둘은 처음으로 호흡을 맞췄다.
“얼마나 좋았겠어요. 6월 제대한 날에 바로 체육관으로 올라갔죠.”
● 세 번의 동행… 끊기지 않은 ‘인생의 패스’

1994년 박 코치가 여자 실업팀 현대산업개발 코치를 할 때였다. 당시 연세대 코치이던 유재학 현 KBL(한국농구연맹) 경기운영본부장이 신생팀 감독으로 부임해 코치 자리가 비었다.
“건연아, 내가 널 데려오려고 그 팀에 찾아갔지.”
“형님이 부르셔서 팀에 사표를 냈죠. 그런데 수리를 안 해 줘서 한동안 두 군데서 월급을 받았죠. 형님이 같이 가서 정리해 주셨잖아요. 다른 여자 팀으로 가지 않는다는 약속을 하고 연세대로 다시 왔죠.”
박 코치는 이후 다시 여자 팀 감독을 맡았다가 한 번 더 연세대 코치로 유턴했다. 2005년에는 연세대 감독까지 맡았다.
“형님 때문에 저는 연세대에 5번이나 ‘입학’한 겁니다. 형 아니었으면 제 인생 길은 여기저기 끊겨 있었을 거예요.”(박건연)
“나 만난 걸 다행인 줄 알아야 돼. 건연이 너는 내가 놓치면 안 되는 사람이었어.”
박 코치는 2023년 최 감독을 KXO 조직위원장으로 모셨다. 그때는 박 코치가 3대3 농구 발전을 위해 힘 써달라며 도움을 요청했다. 최 감독은 기꺼이 응했다.
최 감독은 특수 용접재를 생산하는 국내 굴지의 중견기업을 이끄는 산업 리더다. 중국 다렌 지사장을 비롯해 부사장, 사장을 거쳐 부회장에 올랐다. 박 코치 역시 농구 전문지를 창간해 운영도 하고 다른 분야 사업도 해 봤다. 코트에서 함께한 시간을 넘어 인생 후반전을 살아 가는 방식마저 비슷하다.
“지금도 형님이 옆에 있으면 방향이 흔들리지 않아요.”(박건연)
농구판에서 이런 관계는 흔치 않다.
● 슛이 빗나가도 리바운드를 잡을 줄 안다

박 코치는 최 감독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최희암이라는 길잡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잘 살았다 싶죠.”
제2의 인생도 농구에서처럼 성과를 낸 최 감독이 박 코치는 놀랍다.
“농구와 제조업이 통하는 게 있다는 형님의 접근법이 탁월했던 거죠.”
최 감독은 고려용접봉에 들어왔을 때 농구처럼 노력하고 인내하면 당장은 성과가 안 나더라도 배우는 게 있을 것 같았다고 한다. 일을 반복하다 보면 안정적인 실력이 쌓일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일을 배웠다. 그래서 빨리 적응했다.

연세대 감독 시절 선수를 키운 노하우를 살려 직원 관리에도 스스로 눈을 떴다. 최 감독은 분업 농구의 대명사다. 선수마다 확실한 역할을 주고 그 포지션을 책임지도록 했다. 훈련 때는 다른 포지션에서도 뛰어 보게 했다. 자기 역할만 아는 것을 넘어 다른 포지션 사정까지 이해하는 선수가 더 좋은 팀플레이를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실제 그렇게 됐다. 선수들은 자기 장점을 120% 끌어냈다. 팀에서 뛰어야 할 이유를 알게 됐다. 기본, 노력, 반복, 경청의 힘으로 최 감독은 임기 내내 문경은 이상민 우지원 서장훈 김훈 조상현 조동현 등을 철저하게 포지션별 비교우위에 올려 놓았다.
이를 고려용접봉에서도 잘 이용했다. 사장 때는 권역별 영업 조직을 산업별 담당을 두는 조직으로 개편해 업무 효율을 개선했다.
“경영도 농구와 참 비슷하단 말이에요. 역할 분배가 중요하죠. 업무 분야마다 누가 적임자인지 잘 판단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박 코치는 평생 모신 ‘나의 감독’으로서 최 감독이 존경스럽다.
“형님을 보면서 진정한 프로가 뭔지를 알게 된 것 같아요.”
“한 우물을 미련하게 끝까지 파는 과정에서 얻은 거라고 할까요. 팀을 이끌 때 박 코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예전부터 감독과 코치의 시선은 달라야 한다고 했던 저예요. 내가 위를 보고 있을 때 박 코치가 밑을 잘 봐 줬죠. 그러니 선수들을 설득했고 서로 뭉치게 할 수 있었던 게 아니겠습니까. 박 코치 때문에 한 우물 팔 수 있었죠.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호기심은 여전히 식지 않는 최 감독이다. 어떤 이슈든 연구와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애매하거나 잊어버린 정보가 있으면 즉시 휴대전화로 검색해서 확인한다. 박 코치는 60대 중반이지만 이런 최 감독 앞에선 긴장을 늦출 수 없다. 객관적 근거나 수치가 뒷받침 안 되는 얘기는 아예 하지 않는 게 낫다. 괜히 두루뭉술 넘어가려고 했다간 분위기가 묘해진다.
“잠깐만. 건연이 네가 방금 한 얘기 팩트체크 좀 해야겠어. 정확한 거야?”
“10만 원 내기 할까요, 형님?”

박 감독도 ‘한 지식’ 하는 사람이다. 세상 현안에 밝다. 그런데도 최 감독 지식과 논리를 따라가려고 많이 공부한다. 같이하면 좋을 일도 보인다. 최 감독은 신사업 개발과 용접 재료 추가 국산화에 신경 쓰고 있다. 그러면서도 농구 발전과 엘리트 체육 선수들의 학업 및 진학 여건 개선 등에도 나서고 싶다.
“나나 박 코치나 운동하면서 혜택을 많이 받은 세대잖아요. 지금 세대도 혜택을 누려야 하는데, 현재 운동선수 지원 시스템으로는 쉽지 않아요. 어떻게 목소리를 내야 할지 고민입니다.”

박 코치는 완전히 ‘붙들린’ 몸이다. 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날 사이다.
“첫 번째 연세대 코치 직을 그만두고 미국으로 이민 가려고 했을 때 형님이 못 가게 하셨잖아요. 그래서 지금까지 같이 저녁식사를 하네요. 감사합니다.”
“건연이 너, 미국 갔으면 총 맞을 수도 있었어. 내가 생명의 은인이야. 너한테 감사한 게 많다. 나 대신 술도 자주 마셔 주고. 고생했다.”
세월이 흘렀지만 앞에서 길을 보는 사람과 그 길이 흔들리지 않게 뒤에서 받쳐 주는 사람의 역할은 바뀐 게 없다.
“건연야, 농구에서 슛이라는 게 100% 들어가는 법 있더냐. 3점슛 성공률 40%만 되도 끝내주는 선수잖아. 들어갈 수도 있고 안 들어갈 수도 있는 게 슛인데 그보다 우리는 리바운드 잡는 걸 더 중요하게 생각했잖아. 계속 너하고 ‘인생 리바운드’ 좀 노려 보려고.”
“형님은 하겠다면 하시는 분이잖아요. 뭐든지 도울 수 밖에 없죠.”
박 코치는 ‘최희암 리바운드’를 위해 늘 ‘박스아웃’ 할 준비가 돼 있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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