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치 8주 진단받고 4주만에 돌아왔던 ‘캡틴’ 정지석의 남다른 책임감, ‘역대급‘ 챔프전에서도 대한항공을 버티게 해준 원동력이었다 [남정훈의 오버 더 네트]

남정훈 2026. 4. 11.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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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남정훈 기자]대한항공이 빼앗긴 왕좌를 찾는 데 필요한 시간은 딱 1년이었다. 그리고 왕좌 탈환의 중심에는 주장 완장의 책임감을 누구보다 무겁게 느꼈던 ‘캡틴’ 정지석(31)이 있었다.

대한항공은 10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2025~2026 V리그 남자부 챔피언결정전(5전 3승제) 5차전에서 현대캐피탈을 세트 스코어 3-1(25-18 25-21 19-25 25-23)로 꺾었다. 인천 홈에서 1,2차전을 잡으며 챔피언결정전을 조기에 끝내는 드 했지만, 천안 원정에서 3,4차전을 내리 셧아웃 패배를 당하며 남자부 사상 최초의 리버스 스윕의 희생양이 되는 위기에 몰렸던 대한항공은 이날 승리로 우승에 필요한 3승을 채워냈다. 2020~2021시즌부터 4연속 이어왔던 통합우승을 지난해 현대캐피탈에게 내줬던 대한항공은 올 시즌에 다시 한 번 정규리그 1위와 챔피언결정전을 모두 집어삼키며 2020년대 V리그 남자부의 지배자임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지난 시즌 현대캐피탈에게 정규리그와 챔프전을 모두 내줬던 대한항공은 올 시즌을 앞두고 ‘리더십’에 변화를 줬다. 사령탑을 ‘브라질 명장’ 헤난 달 조토 감독으로 바꿨고, 10년 간 한선수가 이어왔던 주장직을 정지석으로 교체했다.
주장직을 내려놓고 코트 위 조율에 집중한 한선수의 지휘 아래 러셀-정지석-정한용으로 이어지는 삼각편대를 앞세워 대한항공은 시즌 초반 10연승을 달리며 독주했다.

그러나 변수가 생겼다. 팀 공격과 수비의 핵심 역할을 하는 정지석이 부상으로 이탈한 것. 정지석은 지난해 12월25일 KB손해보험전을 앞두고 훈련 중 오른쪽 발목을 다쳤고, 검진 결과는 전치 8주였다. 정지석의 대체자 역할을 하던 임재영마저 다치면서 대한항공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실제로 정지석이 빠진 이후 1승5패로 성적은 곤두박질쳤고, 현대캐피탈과 선두 경쟁을 하는 처지가 됐다.

한선수에게서 주장직을 물려받은 정지석의 책임감은 남달랐다. 1월20일 한국전력전에 전격적으로 코트에 돌아온 것이다. 헤난 감독은 물론 구단 프런트 모두 정지석의 조기 복귀를 말렸지만, 팀이 흔들리는 것을 바라만 볼 수 없었던 정지석은 재활 속도를 급격히 끌어올렸고 완전하지 않은 몸으로 돌아왔다.
정지석이 돌아온 후 안정감을 되찾은 대한항공은 현대캐피탈과의 치열한 경쟁 끝에 정규리그 왕좌를 되찾으며 챔피언결정전에 직행했다.

챔피언결정전에서도 정지석의 존재감은 빛났다. 5경기에서 76점을 올리며 임동혁(77점)에 이어 팀 내 두 번째로 많은 득점을 올렸다. 순도는 가장 높았다. ‘로컬룰 논란’이 일었던 역대급 승부였던 2차전 5세트 듀스에서 18-16으로 경기를 끝내는 득점을 올린 게 정지석이었다. 대한항공이 0-3으로 완패했던 4차전에서도 정지석은 19점을 올리며 완패 속에서도 홀로 팀 공격을 ‘하드캐리’했다.

우승을 확정지은 5차전에선 11점으로 호세 마쏘(17점), 정한용(14점), 임동혁(12점)보다 득점은 적었지만, 챔프전 전체를 봤을 때 정지석보다 높은 공헌도를 보인 선수는 없었다. 20% 이상 공격점유율을 가져간 양 팀의 네 선수(정지석, 임동혁, 레오, 허수봉) 중 성공률이 50%가 넘었던 건 정지석(50.83%) 하나뿐이었다. 리시브도 팀 내에서 가장 많은 125개를 받아 35.20%의 효율을 올렸다. 리그 최고 공수겸장의 아웃사이드 히터, 이 수식어는 이번 챔프전에서도 유효했다. 이런 활약을 인정받아 정지석은 취재 기자단 투표에서 전체 34표 중 절반인 17표를 획득, 임동혁(8표), 한선수(5표), 마쏘(3표)를 따돌리고 챔프전 최우수선수(MVP) 영예를 안았다. 2020∼2021시즌, 2023∼2024시즌에 이어 개인 통산 세 번째 챔피언결정전 MVP다. 대한항공의 V6 중 세 번은 정지석이 최고의 자리에 오른 셈이다. 
경기 뒤 한선수, 마쏘와 인터뷰실에 들어선 정지석은 “정말 다른 의미로 역대급 챔피언결정전이었다. 너무 힘들었고, 또 재밌었다. 빨리 끝내고 싶었는데, 이겨서 정말 다행이다. 내가 주장이니까 더 해야 한다는 마음은 없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1,2차전을 잡았지만 3,4차전을 내주고 불안했다. 4차전엔 솔직히 코트 위에서 외롭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도 오랜 기간 팀에서 고액 연봉자였는데, 내가 책임져야 한다고, 회피하지 말자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흔들리던 팀을 다 잡기 위해 선수 하나하나와 대화를 나누며 주장다운 면모를 보였던 정지석과 대한항공에겐 인천 홈팬들의 응원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그는 “(한)선수 형과 나를 제외하면 어린 선수가 많으니까 우리 쪽으로 분위기를 가져오는 게 너무 힘들었다. 현대캐피탈 선수들은 ‘분노’라는 키워드를 갖고 경기해서 뭉친 게 보였고, 부러웠다. 우리는 그런 부분에서 좀 부족했다. 결국 악으로 깡으로 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정지석은 13일 열리는 V리그 시상식에서 정규리그 MVP를 놓고 한선수와 ‘집안싸움’이 예상된다. 정지석은 “상이란 게 한 번 맛보면 끊을 수 없다. 그만큼 동기부여가 된다. 저 주십시오”라고 먼저 선창을 하자 옆에서 듣고 있던 한선수는 “나는 36경기 다 뛰었다”라고 맞받아쳤다.
정지석은 아빠다. 2024년 1월에 태어난 아린이는 2023∼2024시즌에도 아빠의 우승을 봤지만, 그땐 100일 남짓했던 갓난아기였다. 이젠 두 돌도 지났으니 아빠의 멋진 모습을 지켜봤을까. 이에 대해 묻자 “아직도 배구에는 그리 큰 흥미가 없나봐요. 2세트 끝나고 아린이랑 아내가 앉아있는 곳을 봤는데, 딴 데 보고 있더라고요”라면서 옆에 있던 한선수를 가리키며 “선수 형네 딸 셋은 목이 터져라 응원하던데...부럽습니다”라고 말했다. 
에필로그
 
공식 인터뷰를 마치고 코트 뒤에서, 그리고 우승 축하연에서 우승에 대한 소회와 향후 배구계 판도, 국가대표 등 배구 관련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만큼 정지석의 머릿 속에는 배구로만 가득 차 있다.
 
이번 챔프전은 정지석과 허수봉의 국내 NO.1 플레이어 경쟁도 치열했다. 둘의 맞대결 결과에 대한 생각을 묻자 정지석은 “(허)수봉이는 진짜 대단한 것 같아요. 챔프전 내내 대단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그래도 제가 리시브나 이런 건 좀 더 나았으니까 비긴 걸로 하는 게 맞겠죠?”라고 웃었다.
 
이제 정지석의 시선은 태극마크로 향한다. 정강이쪽에 부상이 있어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8월말로 예정된 아시아선수권과 9월말에 시작하는 아시안게임 중 최소 한 대회는 꼭 나가고 싶다는 정지석이다. ‘대회를 하나만 나가야 한다면, 우승 팀에게 올림픽 직행 티켓이 주어지는 아시아선수권에 나가는 게 맞지 않냐’고 하자 정지석은 “네, 저도 거기서 어떻게든 비벼서 올림픽 티켓을 꼭 따내고 싶어요. 진짜 이번엔 제대로 한 번 해보고 싶습니다”라고 각오를 다졌다.

인천=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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