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가스공사] 이게 ‘고졸’의 마인드? "언론에서 안 띄워줘도 되고, 안 돋보여도 돼"…양우혁의 농구 일지 ②

정다윤 2026. 4. 11.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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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우혁의 시크릿 노트(?)
[점프볼=정다윤 기자] 대구 한국가스공사 양우혁의 취미를 한 번에 펼쳐놓으면, 밤이 짧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만큼 하고 싶은 것들이 많다. 그래서 선택지도 다양하다. 그중 영어 공부는 짧아도 일상처럼 굳어졌고, 훈련과 경기가 끝난 밤에는 농구일지로 하루를 갈무리한다.

"이 다이어리는 슬램덩크 스티커로 제가 직접 꾸몄어요. 농구 관련 일지를 쓰는 다이어리인데, 경기 전과 후에 기록하는 편이에요. 맞대결을 앞둔 경기 전에도 읽고 더 쓰고 해요."

양우혁은 자신의 일지를 보여줬다. 시간대별 훈련 내용은 물론이고, 그날 지적받은 부분과 스스로 느낀 점까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다음 상대를 맞아 준비해야 할 포인트도 빠지지 않았다. 자신만 보는 기록인 만큼 필체는 제3자가 알아보기 쉽지 않았지만, 그 안에 담긴 태도만큼은 또렷했다.

취재진이 가장 인상 깊게 본 문장은 다음과 같았다.

☆내일 게임도 마음 비우고 하자. 안 화려해도 되고 안 돋보여도 된다. 언론에서 안 띄워줘도 되고 밖에서 인정받지 않아도 된다. 팀원들에게, 코치님들에게, 감독님에게 인정받게 그들이 원하는 걸 하자. 수비 다부지게 하고 스틸 계속 노려보자. 보이는 데 빨리 주고, 안에 빠지는 거 자신 있게 세게 주자. 슛은 자신 있게!

양우혁이라는 이름에는 늘 화려함이라는 수식이 따라붙었다. 눈길을 끄는 플레이와 재능은 오래전부터 그의 일부처럼 여겨졌다. 그런데 이 어린 선수의 시선은 어느새 익숙한 스포트라이트보다 팀이 원하는 쪽을 향하고 있었다. 더 높이 가기 위해서였다. 이 리그 안에서 살아남고, 더 좋은 선수가 되기 위해 먼저 바꾸려 한 건 마음가짐이었다. 

취재진(T)도 이 대목에서는 F 참가자가 됐다. 누가 시켜서 적은 문장이 아니었다. 혼나서 받아 적은 다짐도 아니었다. 스스로 부딪히고 흔들리며 끝내 자기 안에서 꺼낸 결론에 가까웠다.

삼일고 양우혁은 화려한 스타일이었지만, 여기서는 팀이 원하는 부분이 있으니까요. 팀에 더 맞추고 제 걸 찾자는 마음이 너무 크게 느꼈어요. 올라왔다가 쭉 내려가는 시기이기도 했거든요. 결국 팀이 원하는 걸 해야, 제가 팀에 도움이 되니까요.

대개 어린 선수들은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 한다. 더 화려하게 보이고 싶고, 더 강하게 각인되고 싶어 한다. 그 마음이 이상한 일도 아니다. 하지만 양우혁의 노트에는 다른 방향의 문장이 적혀 있었다.

 

돋보임보다 역할, 인정받음보다 신뢰, 박수보다 팀이 원하는 플레이가 먼저였다. 어쩌면 성장이라는 것은 무언가를 더하는 일만이 아니라, 무엇을 잠시 내려놓아야 하는지 아는 데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더 멀리 가기 위해 한 걸음 물러설 줄 아는 마음. 그 노트 안에는 기술보다 더 귀한 성장의 흔적이 적혀 있었다. 당장 빛나지 않겠다는 선택은 더 크게 빛나기 위해 스스로를 벼리는 시간에 가까웠다.

그렇게 지금의 양우혁이 자신의 농구일지를 꺼내 보였다면, 시계를 9년 전으로 돌려보자. 초등학생 양우혁이 처음 농구일지를 쓴 때도 있었다. 물론 그때는 피할 수 없는 숙제였다.
"처음으로 일지를 썼을 때예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전지훈련과 연습경기를 다녀오고 나서 한 명씩 써오라고 하셨거든요. 처음 쓴 기록물이라서 의미가 있어 오래도록 남기고 싶었어요."
추억 상자에서 시선을 옮기자 책상 옆 우디(토이스토리)가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목에는 금색 체인이 칭칭 감겨 있었다. 토이스토리에서 바로 쇼미더머니로 넘어온 ‘투잡러 비주얼’이었다. 양우혁은 이 우디를 본가에서 대구까지 직접 데려왔다. 어릴 적 추억이 담긴 물건인 데다 쉽게 두고 오기엔 제법 정이 많이 든 친구였던 셈이다.

"옛날에 토이스토리를 좋아했거든요. 우디는 부모님이 사주셨어요. 농구를 시작도 안 했던 초등학교 때였어요. 이 캐릭터를 좋아해서 부모님이 사주셨거든요. 힙하게 가고 싶어서 체인을 하나 해줬습니다. 직접 리메이크한 셈이죠."

그에게 주어진 합격 목걸이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이 목걸이는 언더아머 캠프에서 30명 중 6명 안에 선발돼 IMG 아카데미에 다녀온 기념물이다. 5대5 경기 평가를 거쳐 뽑혔고 양희종 코치와 프로 선수들이 심사에 참여했다. 목걸이는 허예은(KB스타즈)이 건넸다. "고등학교 1학년 때인데, 이게 가장 저에게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양우혁의 물건들을 보고 있으면 공통점이 하나 보인다. 곳곳에 아버지의 손길이 묻어 있다는 점이다.
"이것도 아버지가 구매하신 공이에요. 조던인데 정확하게는 모르겠어요. 근데 딱 봐도 뭔가 있어 보이지 않나요(웃음)? 지문도 있고 그런데, 아마 되게 비쌀 거예요. 쉽게 못 구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이제는 대구에 더 오래 있잖아요. 그래서 대구까지 데려오게 됐습니다."

양우혁이 이번에 꺼내 보인 건 ‘진격의 거인’ 액자였다. 처음엔 그냥 방에 하나쯤 있는 장식품인가 싶었다. 그런데 양우혁이 별말 없이 스위치를 톡 누르자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액자에 불이 들어오면서 그림이 선명하게 살아났고, 방 한쪽이 순간적으로 전시 부스처럼 변했다. “우와!” 하는 반응이 절로 나올 만했다.

평소 ‘진격의 거인’을 좋아한다며, 이 액자는 삼일고 선배이자 현재 상명대에 다니는 한영기에게 생일 선물로 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진격의 거인은 명작이죠. 아무래도 유명해서 ‘무난하게 재밌겠다’ 싶어 봤어요. 처음 애니 입문작이 이거였거든요. 단순하게 거인이 사람이랑 싸우는 건 줄 알았거든요. 근데 보다 보면 와... 스토리가 엄청납니다. 선과 악이 묘해지는 시점부터요. 처음에는 저도 그런 징그러운? 혐오스러우면서 재밌는 건 줄 알았거든요. 그렇게 생각했다가 비밀들이 밝혀지면서 굉장히 재밌었습니다. 꼭 보세요."

침대 옆에는 ‘카와무라 유키’가 적힌 농구화 박스가 놓여 있었다. 대충 둔 상자가 아니라, 그것까지 인테리어처럼 보이게 만든 배치였다. 양우혁의 방은, 보고 있으면 감탄이 나온다. 정말 잘 꾸며놓는다. 신발 박스마저 허투루 두지 않는 걸 보니, 괜히 보고 배우게 되는 순간이었다.
"본가에 엄청 많아서 꾸며놓기도 하고 버리기도 했어요. 이건 의미가 있어서 해놨어요. 신발은 다른 게 더 편해서 이거는 그냥 진열해 놨습니다(웃음). 조금 더 길들여야 하는 것도 있고 원래 신던 것도 있어서요. 그래도 이건 계속 진열해둘 것 같아요. 다른 것도 세 개 정도 더 있거든요."
또 눈에 띈 건 미니 냉장고였다. 자취방에 하나 두라고 팬이 데뷔 100일 선물로 건넨 것이었다. 양우혁은 냉장고를 설명하면서도 팬의 고생을 걱정했다.

"냉장고는 팬이 100일(데뷔)이라고 주셨어요. 자취하니까 방에 하나 놓으라고 주신 것 같아요. 저는 부모님 차에 실어서 오기 편했는데, 팬분은 들고 오기 힘드셨을 것 같아요. 너무 감사하죠."

누군가의 선물과 응원은 결코 당연한 게 아니다. 반복해서 마주하다 보면 이를 당연하게 여기는 선수도 봤지만, 양우혁은 그 익숙함에 마음을 기대지 않았다. 팬들이 건넨 선물 하나에도,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작은 배려에도 오래 시선을 머물렀다. 자신을 향해 온 마음이 얼마나 많은 손길과 시간을 지나왔는지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양우혁의 감사에는 늘 온기가 있었다.

그 온기가 담긴 미니 냉장고 안을 들여다보니 입맛 취향도 꽤 분명했다.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건 녹차와 치즈였다. 키 크기 위해 치즈를 먹느냐고 묻자 그건 아니라며 웃었다. 더 흥미로운 건 양우혁에게 제법 확고한 ‘녹차 철학’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건 치즈예요. 간식용입니다. 플레인 치즈를 좋아해서 그냥 먹고요. 녹차는 너무 좋아해요. 특히 이 녹차를 좋아해요. 이게 더 진하고 녹차 맛이 강하거든요. 보성 녹차나 다른 녹차들은 조금 약하고, 이게 진짜입니다(웃음). 찐 녹차. 엄마가 쿠팡에서 대량으로 사주셨어요."
▲김민규가 추천한 양우혁의 포즈(?) 하라는 대로 다 하는 양우혁.
#사진_정다윤, 이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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