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가스공사] 이게 ‘고졸’의 마인드? "언론에서 안 띄워줘도 되고, 안 돋보여도 돼"…양우혁의 농구 일지 ②

그만큼 하고 싶은 것들이 많다. 그래서 선택지도 다양하다. 그중 영어 공부는 짧아도 일상처럼 굳어졌고, 훈련과 경기가 끝난 밤에는 농구일지로 하루를 갈무리한다.

양우혁은 자신의 일지를 보여줬다. 시간대별 훈련 내용은 물론이고, 그날 지적받은 부분과 스스로 느낀 점까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다음 상대를 맞아 준비해야 할 포인트도 빠지지 않았다. 자신만 보는 기록인 만큼 필체는 제3자가 알아보기 쉽지 않았지만, 그 안에 담긴 태도만큼은 또렷했다.
취재진이 가장 인상 깊게 본 문장은 다음과 같았다.
‘☆내일 게임도 마음 비우고 하자. 안 화려해도 되고 안 돋보여도 된다. 언론에서 안 띄워줘도 되고 밖에서 인정받지 않아도 된다. 팀원들에게, 코치님들에게, 감독님에게 인정받게 그들이 원하는 걸 하자. 수비 다부지게 하고 스틸 계속 노려보자. 보이는 데 빨리 주고, 안에 빠지는 거 자신 있게 세게 주자. 슛은 자신 있게!’
양우혁이라는 이름에는 늘 화려함이라는 수식이 따라붙었다. 눈길을 끄는 플레이와 재능은 오래전부터 그의 일부처럼 여겨졌다. 그런데 이 어린 선수의 시선은 어느새 익숙한 스포트라이트보다 팀이 원하는 쪽을 향하고 있었다. 더 높이 가기 위해서였다. 이 리그 안에서 살아남고, 더 좋은 선수가 되기 위해 먼저 바꾸려 한 건 마음가짐이었다.

취재진(T)도 이 대목에서는 F 참가자가 됐다. 누가 시켜서 적은 문장이 아니었다. 혼나서 받아 적은 다짐도 아니었다. 스스로 부딪히고 흔들리며 끝내 자기 안에서 꺼낸 결론에 가까웠다.
“삼일고 양우혁은 화려한 스타일이었지만, 여기서는 팀이 원하는 부분이 있으니까요. 팀에 더 맞추고 제 걸 찾자는 마음이 너무 크게 느꼈어요. 올라왔다가 쭉 내려가는 시기이기도 했거든요. 결국 팀이 원하는 걸 해야, 제가 팀에 도움이 되니까요.”
대개 어린 선수들은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 한다. 더 화려하게 보이고 싶고, 더 강하게 각인되고 싶어 한다. 그 마음이 이상한 일도 아니다. 하지만 양우혁의 노트에는 다른 방향의 문장이 적혀 있었다.
돋보임보다 역할, 인정받음보다 신뢰, 박수보다 팀이 원하는 플레이가 먼저였다. 어쩌면 성장이라는 것은 무언가를 더하는 일만이 아니라, 무엇을 잠시 내려놓아야 하는지 아는 데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더 멀리 가기 위해 한 걸음 물러설 줄 아는 마음. 그 노트 안에는 기술보다 더 귀한 성장의 흔적이 적혀 있었다. 당장 빛나지 않겠다는 선택은 더 크게 빛나기 위해 스스로를 벼리는 시간에 가까웠다.


"옛날에 토이스토리를 좋아했거든요. 우디는 부모님이 사주셨어요. 농구를 시작도 안 했던 초등학교 때였어요. 이 캐릭터를 좋아해서 부모님이 사주셨거든요. 힙하게 가고 싶어서 체인을 하나 해줬습니다. 직접 리메이크한 셈이죠."

양우혁의 물건들을 보고 있으면 공통점이 하나 보인다. 곳곳에 아버지의 손길이 묻어 있다는 점이다.

양우혁이 이번에 꺼내 보인 건 ‘진격의 거인’ 액자였다. 처음엔 그냥 방에 하나쯤 있는 장식품인가 싶었다. 그런데 양우혁이 별말 없이 스위치를 톡 누르자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액자에 불이 들어오면서 그림이 선명하게 살아났고, 방 한쪽이 순간적으로 전시 부스처럼 변했다. “우와!” 하는 반응이 절로 나올 만했다.
평소 ‘진격의 거인’을 좋아한다며, 이 액자는 삼일고 선배이자 현재 상명대에 다니는 한영기에게 생일 선물로 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침대 옆에는 ‘카와무라 유키’가 적힌 농구화 박스가 놓여 있었다. 대충 둔 상자가 아니라, 그것까지 인테리어처럼 보이게 만든 배치였다. 양우혁의 방은, 보고 있으면 감탄이 나온다. 정말 잘 꾸며놓는다. 신발 박스마저 허투루 두지 않는 걸 보니, 괜히 보고 배우게 되는 순간이었다.

"냉장고는 팬이 100일(데뷔)이라고 주셨어요. 자취하니까 방에 하나 놓으라고 주신 것 같아요. 저는 부모님 차에 실어서 오기 편했는데, 팬분은 들고 오기 힘드셨을 것 같아요. 너무 감사하죠."
누군가의 선물과 응원은 결코 당연한 게 아니다. 반복해서 마주하다 보면 이를 당연하게 여기는 선수도 봤지만, 양우혁은 그 익숙함에 마음을 기대지 않았다. 팬들이 건넨 선물 하나에도,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작은 배려에도 오래 시선을 머물렀다. 자신을 향해 온 마음이 얼마나 많은 손길과 시간을 지나왔는지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양우혁의 감사에는 늘 온기가 있었다.
그 온기가 담긴 미니 냉장고 안을 들여다보니 입맛 취향도 꽤 분명했다.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건 녹차와 치즈였다. 키 크기 위해 치즈를 먹느냐고 묻자 그건 아니라며 웃었다. 더 흥미로운 건 양우혁에게 제법 확고한 ‘녹차 철학’이 있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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