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상권에서 사라진 ‘김밥’이 편의점·식품 업계의 ‘전략 상품’이 된 까닭은?

이미지 기자 2026. 4. 11.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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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들의 한 끼 식사였던 김밥 대우가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일반 음식점에서는 ‘손 많이 가는 음식’으로 자취를 감추고 있는 반면, 편의점과 식품 기업에서는 손님을 끌어오는 ‘귀하신 몸’ 대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인건비 상승, 식자재 수급 불안정 등이 맞물리면서 골목 상권을 벗어난 김밥이 첨단 자동화 설비와 식품 기술을 기반으로 새로운 시대를 연 것이다.

/조선DB

◇한 줄에 4000원 육박한 김밥 값... 인건비 등 상승에 자취 감춰

저렴한 가격을 내세워 서울에 30여 개 지점을 운영 중인 한 김밥 프랜차이즈는 기본 김밥 4000원, 참치김밥 5000원을 받는다. 이곳에서 종종 식사를 하는 직장인 이모(38)씨는 “요즘 김밥 전문점들은 기본 김밥도 4800~5000원, 속 재료가 조금 더 들어간 김밥은 7000~8000원 수준이라 부담스럽다”면서 “예전엔 흔했던 김밥집들이 잘 보이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2023년 2월 3100원이었던 김밥 평균 가격(한국소비자원 참가격, 서울 기준)은 올해 2월 3800원까지 뛰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최근 몇 년 사이 계란·시금치 등 김밥 주재료 수급 불안정으로 가격 변동 폭이 컸던 것도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김밥 가격은 외식 물가 전체보다 더 가파르게 올랐다. 올해 3월 김밥 물가 지수는 142.61로 지난 2021년(103.47) 대비 37.8% 인상됐다. 같은 기간 전체 외식 물가 지수 상승률(25.2%)보다 더 큰 폭이다.

가격 상승에도 불구하고 김밥집은 줄어드는 추세다. 국세청 국세 통계 포털(TASIS)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전국에서 김밥 등을 취급하는 분식점 사업자 수는 4만9026명으로 전년 동월(5만1648명) 대비 약 5.1% 감소했다. 5년 전인 2020년 12월(5만4191명)과 비교하면 약 9.5% 줄어든 수치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매년 인건비가 오르는 상황에서 속재료를 일일이 다듬어 볶고, 데쳐 준비한 뒤 주문 즉시 말아내야 하는 김밥의 수익성이 점점 나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밥 말 시간에 라면 한 그릇 더 파는 게 낫다”며 메뉴판에서 김밥을 지우는 사장님이 늘어나면서 야채 절단기, 김밥 절단기 등으로 김밥 만드는 과정을 자동화해 조리 인력을 절반 수준으로 줄인 테이크아웃 전용 김밥 전문점 등이 즉석 김밥 전문점을 대신하고 있다.

◇편의점·식품 업체는 ‘김밥’ 말아요

분식집 등에서 사라진 김밥은 최근 편의점과 해외 등으로 자리를 옮겼다. 자동화 설비로 대량 생산이 가능하고, 김이나 계란 같은 속재료를 대량 구매해 가격 변동에도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통·식품 업체들은 급격한 외식비 인상으로 저렴한 한 끼를 찾는 ‘편식족(편의점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사람들)’과 K푸드에 열광하는 해외 소비자들을 잡기 위해 기술 개발과 연구를 통해 김밥의 품질을 높이는 작업에 돌입했다.

세븐일레븐 올 뉴(All New) 삼각김밥

대표적인 곳이 편의점이다. 최근 편의점들은 전문 연구원들로 이뤄진 연구팀을 동원해 삼각김밥과 일반 김밥의 품질을 높이고 대표 상품으로 내세우고 있다. 세븐일레븐은 세븐일레븐 인터내셔널, ‘롯데웰푸드’, ‘롯데중앙연구소’와 함께 ‘팀MD’라는 이름으로 지난 1년간 ‘라이스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그 결과, 전자레인지로 데우지 않아도 밥알이 딱딱해지지 않고 촉촉한 삼각김밥을 만들어냈다.

GS25는 지난 3월부터 ‘더큰 삼각김밥’ 15종과 일반 김밥을 전면 리뉴얼했다. 밥의 감칠맛을 강화하기 위해 콩 추출물을 활용한 조미액으로 밥에 간을 하고, 고소한 풍미를 살리기 위해 참깨와 참기름의 양도 늘렸다.

편의점들이 김밥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최근 급증한 외식 가격으로 밥 한 끼 먹기도 부담스러운 사람들이 편의점으로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국밥 한 그릇도 1만원이 넘는 시대에 1000원대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삼각김밥이나 일반 전문점보다 저렴한 편의점 김밥은 편의점 방문 고객을 늘리는 일등 공신으로 꼽힌다. 세븐일레븐은 “런치플레이션(점심값 인상)으로 간편식 수요가 늘면서 올해(1~3월) 삼각김밥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7% 증가하고, 김밥과 도시락도 각각 16%, 14% 오르는 등 간편식 수요가 증가하는 데 대응하기 위해 1년간 연구했다”고 말했다. GS25에서도 김밥 리뉴얼 이후 삼각김밥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4.2%, 일반 김밥은 31.7%씩 늘었다.

CJ제일제당이 진천 공장에 구축한 김밥 자동화 생산시설. /CJ제일제당

CJ제일제당은 지난달 말 충북 진천 공장에 냉동 김밥 자동화 시설을 구축했다. 냉동 김밥 자동화 시설은 식품 업계 최초다. 1년 6개월에 걸쳐 개발한 자동화 설비는 김밥 재료 투입부터 커팅, 포장까지 전 공정을 담당한다. 사람이 직접 싸는 ‘손맛’ 대신 속재료와 중량 등을 균일하게 만들어 상품성을 극대화한 것이 특징이다. 지난 2023년 ‘비비고 냉동김밥’을 출시한 CJ제일제당은 지금까지 미국, 유럽, 영국, 호주, 일본 등 25개국에서 800만개 이상의 김밥을 팔았다. 연평균 매출 성장률만 130%에 달한다. CJ제일제당은 “2023년 비비고 김밥을 처음 선보인 일본에서 지금까지 820만 봉의 김밥이 팔렸고, 2023년 처음 진출한 미국에서도 첫해에 92만개가 팔리며 시장성을 입증했다”며 “해외에서 ‘비비고 김밥’이 한국 김밥의 표준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냉동으로도 균일한 품질의 김밥을 만들 수 있는 설비를 마련한 것”이라고 말했다. 풀무원 역시 중국 대형 유통 채널인 샘스클럽에서 ‘한식 참치 김밥’ 한 품목으로만 연간 100억원의 매출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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