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평 원룸 안에서 무자비한 권력자로 군림한 사위 [정락인의 사건 속으로]
(시사저널=정락인 탐사저널 사건전문기자)
대구광역시 북구 칠성동을 가로지르는 신천 잠수교 일대는 산책과 운동을 위해 시민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3월31일 대구는 구름이 조금 낀 선선한 날씨였다. 오전 10시30분쯤, 운동하던 한 시민에게 이상한 물체가 눈에 띄었다. 하천변 수풀 사이에 반쯤 잠겨 있는 짙은 회색 계열의 여행용 가방(캐리어)이었다. 처음에는 누군가 버리고 간 것처럼 생각했지만, 단순히 쓰레기로 보기에는 석연치 않았다. 그는 주머니에 있던 휴대전화를 꺼내 '112' 버튼을 눌렀다.

하천에 떠오른 여행가방 속 여성의 시신
얼마 후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가방을 물 밖으로 끌어올렸다. 젖은 가방은 성인 남성 몇 명이 달라붙어야 할 정도로 묵직했다. 경찰은 숨죽이며 굳게 잠겨 있던 지퍼를 조심스럽게 위쪽으로 끌어당겼다. 그 순간 멈칫했다. 심한 악취가 코를 찌르면서 중년 여성의 시신이 웅크린 채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시신은 이미 부패가 시작돼 외형이 변해 있었다.
사과 상자 크기의 가방은 한눈에 봐도 성인 여성의 시신을 담기에는 작아 보였다. 그래서인지 시신은 매우 비정상적인 형태로 꺾여 억지로 구겨 넣어져 있었다. 옷은 입고 있었으나 신발을 신지 않은 맨발이었다. 지갑이나 신분증 등 죽은 이가 누구인지 알려줄 소지품은 단 하나도 들어있지 않았다.
경찰은 즉시 대구 북부경찰서에 수사본부를 꾸리고 신원 확인에 들어갔다. 시신에서 지문을 채취해 감식한 결과 대구 서구에 주소지를 둔 A씨(54)로 확인됐다. 수사팀은 가방이 발견된 지점 상류를 중심으로 폐쇄회로(CC)TV를 샅샅이 뒤졌다. 시신이 발견된 날부터 역순으로 돌려보던 경찰관의 손놀림이 보름 전인 3월18일 오전에서 멈췄다. 중구의 한 골목에서 은색 캐리어를 끌고 나오는 남성과 그 뒤를 고개 숙인 채 따르는 여성의 모습이 포착된 것이다. 이들을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한 경찰은 동선 추적에 나섰고, 시신 발견 10시간 만인 이날 오후 9시쯤 대구 중구 교동의 한 오피스텔에서 조재복(27)과 그의 아내인 최아무개씨(26)를 긴급 체포했다. 조씨는 피해자의 사위였고, 최씨는 그의 딸이었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범행을 인정했다.
사건은 지난해 가을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씨와 최씨는 경북 경산에 거주하던 그해 9월, 혼인신고를 하고 법적 부부가 된다. 평소 살갑게 대했던 조씨는 이때부터 태도가 180도 돌변한다. 그는 지적장애가 있는 아내에게 손찌검을 하기 시작했다. 사소한 이유로 트집을 잡아 폭력을 일상화했다. 최씨는 남편의 보복이 무서워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고, 어머니한테만 알렸다. A씨도 딸의 안전을 우려해 경찰 등 외부에 적극적인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대신 직접 딸을 보호하기 위해 나섰다. A씨는 대구 서구의 거주지를 나와 딸 부부와 동거를 시작했다. 자신이 곁에 있으면 사위가 함부로 딸을 때리지 못할 것이라고 믿었다. A씨가 집을 나가자 그의 남편이 가출 신고를 했으나 3~4일 후 연락이 닿으면서 신고 건이 종결 처리된다. 평소 남편과 불화가 있던 A씨는 이후 상황을 그에게 공유하지 않았다.
사위 조씨는 한동안 장모의 눈치를 보는 듯했지만, 불안한 평화는 올해 2월 대구 중구 교동으로 이사하면서 깨지고 만다. 세 사람은 한 주상복합 원룸형 오피스텔로 이사하면서 도심 생활을 시작한다. 이들 모두 특별한 직업 없이 정부 지원금에 의존해 살았다. 조씨는 한때 배달 아르바이트를 했으나 그마저도 그만둔 상태였다. 세 사람은 하루 종일 방 안에서 붙어있다시피 했다.
이삿짐을 풀면서 조씨의 폭력이 A씨에게 뻗친다. 그는 아내에게 했던 것처럼 장모에게도 사소한 이유로 폭력을 정당화했다. "이삿짐 정리를 빨리 하지 않는다" "집 안에서 시끄럽게 한다" "설거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 명분이 됐다. 조씨는 7평 남짓한 공간에서만큼은 무소불위의 최고권력자로 군림했다.

12시간의 광기와 계산된 잔인한 폭력
A씨는 키 160cm에 몸무게 50kg 남짓한 가녀린 체구였다. 건장한 20대 남성의 무차별적인 폭력을 견뎌내기엔 역부족이었다. 딸 최씨는 어머니에게 "제발 여기서 나가라"며 눈물로 호소했지만, A씨는 발길을 돌리지 못했다. 자신이 떠나면 폭력이 고스란히 딸에게만 쏟아질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딸을 위해 스스로 폭력의 한복판에 남기를 선택했고, 그렇게 좁은 원룸은 누구도 들여다보지 않는 폐쇄 감옥이 되어갔다. 문제는 사위의 폭력에서 딸은 지켰는지 몰라도 정작 A씨 자신은 지킬 수 없었던 것이다. 무자비한 폭력에 노출되면서도 제대로 된 병원 치료 한 번 받지 못했다.
3월17일 밤, 조재복의 폭력은 광기로 변했다. 그는 A씨를 방 안에 가두고 밤 늦은 시간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무려 12시간 동안 폭행을 이어갔다. 둔기를 쓰지 않고 오로지 주먹과 발로만 사람의 몸을 무너뜨렸다. 이때 그의 인간성은 밑바닥을 드러낸다.
조씨는 자신에게 분노조절장애가 있다고 주장했으나, 그의 범행은 지극히 계산적이고 잔인했다. 조씨는 한참 동안 장모를 가격하다가, 숨이 가빠지면 잠시 쉬거나 아내 최씨를 불러내 함께 담배를 피우며 휴대전화를 보는 여유를 보였다. A씨의 신음이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와중에도 평온하게 숨을 골랐다. 그러고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 쓰러져있던 장모를 일으켜 때렸다. A씨는 "아프다, 죽을 것 같다"며 빌었지만 조씨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A씨의 의식이 흐려지자 "상태를 확인하겠다"며 뺨을 때리고 다시 폭행을 가했다. 이 과정에서 A씨는 갈비뼈와 골반, 뒤통수 등 온몸의 뼈가 부러졌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는 '외력에 의한 다발성 손상'이었다. 즉 온몸이 부서질 정도로 맞았다는 뜻이다.
3월18일 오전 10시쯤, A씨는 끝내 숨을 거둔다. 조씨는 당황하기보다 은폐를 먼저 생각했다. 그는 집 안에 있던 세로 50cm, 가로 40cm 정도의 은색 여행용 가방을 꺼내 왔다. 기내용보다 조금 큰 수준의 이 작은 가방에 성인 여성의 시신을 넣기 위해 그는 시신을 마구잡이로 구겨 넣었다. 사후 강직이 시작되기 전, 시신이 부드러운 상태일 때 서두른 것이다.
오전 11시30분쯤, 조씨는 공포에 질린 아내를 협박해 함께 집을 나섰다. 햇살이 내리쬐는 도심 거리를 태연하게 캐리어를 끌고 걸었다. 칠성시장의 북적이는 상인들과 행인들 사이를 지나며 주변을 살피기도 했다. 대낮의 길거리였지만, 캐리어를 끄는 남자의 모습에 의심을 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조씨는 유유히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는 칠성시장 공영주차장 인근 신천에서 멈춰섰다.
그는 장모의 시신이 든 가방을 천변에 유기한 뒤 물속으로 가라앉자 발길을 돌렸다. 그는 이때부터 아내를 더욱 강력하게 통제했다. "신고하면 너도 죽는다" "경찰에서 연락이 와도 받지 마라"며 2주 동안 최씨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고 감시했다. 외출할 때도 항상 동행하며 아내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조씨는 완전범죄를 노렸지만 '자연 현상'이라는 변수를 계산에 넣지 못했다. 만약 3월30일 대구에 많은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시신은 영원히 하천 바닥에 잠겨 있었을지도 모른다. 불어난 물과 거센 물살이 돌 틈에 끼여 있던 캐리어를 하류로 밀어냈고, 약 100m를 떠내려온 덕분에 잠수교 근처에서 시민의 눈에 띄게 된 것이다.
경찰에 붙잡힌 조씨는 황당한 주장을 내놓았다. '시신을 왜 하천에 버렸느냐'는 질문에 "장모님을 좋은 곳으로 보내드리고 싶어서 그랬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또한 "아내와 장모가 원하는 물건은 다 사줬고, 나는 여전히 아내를 사랑한다"며 자신의 폭력을 애정으로 포장하려 했다. 하지만 수사 결과는 달랐다. 조씨는 이미 과거에도 폭행 전과로 교도소 생활을 한 적이 있었다. 평소 장모뿐만 아니라 아내 최씨 역시 지속적으로 감금하고 상해를 입혀왔음이 밝혀졌다. 경찰은 사위 조씨에게 존속살해와 사체유기 외에도 상해와 감금 혐의를 추가로 적용했다.

무방비로 뚫린 안전망과 침묵의 사각지대
딸 최씨에게는 사체유기 혐의를 적용해 구속했다. 어머니의 죽음을 방치하고 유기를 도왔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웠지만, 그 이면에는 장기간 이어진 폭력에 의한 '학습된 무력감'과 공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어머니는 딸을 지키기 위해 그 방에 들어갔지만, 결국 딸은 남편의 협박에 못 이겨 어머니를 가방에 담는 과정에 동참해야 했던 것이다.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의 안전망에 여전히 큰 구멍이 뚫려 있다는 것을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A씨가 딸을 보호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동안, 국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이들 가족은 모두 지적장애인으로 등록되어 있었고, 정부의 지원금을 받는 관리 대상이었지만, 그들의 내밀한 가정폭력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복지 체계는 존재하지 않았다.
경찰과 공권력의 개입에도 한계가 있었다. 조씨에 대한 과거 가정폭력 신고 이력이 없었다는 이유로 이들은 '상습 폭력 관리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었다. 우리나라는 신고가 없으면 집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경찰이 강제로 확인할 수 없는 구조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가정폭력 피해자가 보복이 두려워 입을 닫으면, 그 집은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치외법권 지대가 되어버린다.
복지 사각지대 역시 문제다. 담당 사회복지사가 경제적 지원 외에 가정 내 폭력성까지 정기적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권한과 인력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이웃들 역시 비명을 들었어도 "남의 집 일"이라며 문을 닫으면 그만이다. 물론 피해자와 가해자는 원룸 등을 전전하며 생활했다. 고정된 거주지에서 이웃과 교류가 있었다면 비명이나 다툼으로 인한 소음을 들은 이웃의 신고가 가능했겠지만, 고립된 환경에서의 폭력은 시스템이 감지하기 어려웠다는 한계도 있다. 현대사회의 주거 형태가 밀폐되고 개인화될수록, 가정 내 폭력은 더욱 은밀하고 잔혹하게 진화한다. 이번 사례는 비슷한 사건이 또 일어날 수도 있다는 점을 미리 경고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가족 일이니까'라며 넘기는 방관이 피해자를 고립시키고, 결국 죽음으로 몰아넣는 방조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며 "단순히 사후 처벌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위기 징후가 포착될 때 피해자를 구제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웃의 불행에 귀 닫지 않는 '느슨한 관심'과 지자체의 능동적인 복지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가족이라서 참아야 하고, 가족이라서 신고할 수 없었던 그 '침묵의 사각지대'를 우리 사회가 어떻게 메울 것인가를 깊이 고민하고, 그 해답을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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