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만장자 상속녀와 미국 국민 화가의 백년의 동행…명품 미술관 만들었다 [슬기로운 미술여행- 61]
[슬기로운 미술여행- 61] 뉴욕 휘트니 미술관
뉴욕 허드슨 강변의 휘트니 미술관은 뉴욕에서 가장 뷰가 좋은 곳입니다. 어쩌면 세계 최고일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주변은 뉴욕의 간판화랑이 다닥다닥 모여 있는 아트 디스트릭트이기도 하죠. 20세기 이후의 미국 미술을 만나기에 뉴욕 현대미술관(MoMA) 만큼이나 좋은 뉴욕의 간판 미술관입니다.

![로버트 헨리가 그린 [거트루드 밴더빌트 휘트니] ©김슬기](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11/mk/20260411090613910phqu.png)
철도왕 밴더빌트 가문의 상속녀이자 조각가였던 그녀는 1929년 자신의 소장품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기증하려했지만 유럽의 올드 마스터를 소장하는 원칙을 지키던 미술관에게 거절을 당하고 미술관을 직접 설립하게 됩니다. 현재까지 27,000점 이상의 소장품을 품고서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현대미술 격년제 전시 ‘휘트니 비엔날레’를 통해 미국 미술의 흐름을 정의해왔습니다.
1966년에 건축된 이전 건물인 브로이어 빌딩은 검은색의 브루털리즘(영화 <브루털리스트>의 모델인 마르셀 브로이어의 작품) 건축물로 유명했죠. 휘트니 미술관이 이사를 간 이후에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분관으로 쓰이다, 소더비 경매사에 매각되어 현재는 경매장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휘트니 미술관은 2015년 렌조 피아노가 설계한 현재 건물로 이전한 뒤, 그야말로 새로운 전성기를 맞게 됩니다. 고층 테라스와 카페에서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허드슨 강변의 기가 막힌 뷰와 주변이 갤러리로 가득한 힙한 분위기 때문입니다. 미술관의 통창에서는 건너편의 마천루가 보이고, 토마스 헤더윅의 대표작인 리틀 아일랜드도 눈에 들어옵니다. 강변에서 수상 스포츠와 산책을 즐기는 뉴요커들의 모습도 보이는데, 그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첼시 갤러리 디스트릭트에는 데이비드 즈워너, 가고시안, 페이스, 하우저&워스 등 세계적 갤러리 백여개가 밀집해 있는 곳이죠. 안타깝게도 1월 초는 겨울 휴가철이라 문을 연 곳이 거의 없었습니다. 가고시안에서만 제프 쿤스의 그리스 조각을 모티브로 한 조각전이 열리고 있었고, 티나킴 갤러리에서는 강석호의 작품을 만났습니다. 미술관 도보 10분 거리에는 관광 명소인 첼시 마켓(Chelsea Market)도 있습니다.
![1층 입구에 설치된 라시드 존슨 [새로운 시]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11/mk/20260411090616652tcmj.png)
존슨(1977년 시카고 출생)은 아미리 바라카의 시에서 제목을 따왔고, 이 작품 자체를 하나의 시로 여깁니다. 작가는 시에 대해 “비판적 관심사, 미학, 그리고 낭만주의를 탐구하는 수단이자, 다른 모든 매체를 비추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는데요. 구겐하임 미술관의 전시 제목도 때마침 <깊은 생각을 하는 자를 위한 시>이더군요.
뉴욕의 미술관답게 고층 빌딩의 구조를 하고 있어 8층부터 내려오면서 관람하는 동선을 흔히 선택합니다. 제가 찾은 1월에 8층에서는 알렉산더 칼더의 기념비적인 작품 <서커스>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시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필라델피아에서 신상 미술관, 칼더 가든을 만나고 불과 며칠 만에 이 전시를 만나니 반갑더군요.
1926년 칼더는 철사를 손으로 꼬아 위태로운 외줄타기의 줄을 만들고 천, 코르크, 단추 같은 일상 재료로 사람을 만들어 작은 서커스를 구현했습니다. 손수 조립한 인형과 동물은 공중을 날고 칼을 삼키며, 두 시간 가까이 이어지는 작은 서커스 공연을 펼쳤죠. 마르셀 뒤샹, 호안 미로, 피에트 몬드리안, 이사무 노구치 같은 거장들이 무대를 관람했죠. 추상 미술이 움직이는 미술로 다시 태어난 순간이었습니다.
특별전 <고공 줄타기: 칼더의 서커스 100주년(High Wire: Calder’s Circus at 100)>은 칼더의 이 작업을 중심으로 그의 예술을 조명하고 있었습니다. 전시장은 어두운 조명 아래 작은 인형들로 가득했고 거대하고 알록달록한 색의 조각으로만 봐온 작가의 새로운 면모가 신선하고 낯설게 보였습니다. 6층에서는 전시도 열리고 있었습니다. 1960년대 미국 예술을 팝아트나 미니멀리즘 같은 기존 틀이 아닌, ‘초현실주의’라는 렌즈를 통해 재조명하고 있었는데요. 두 대륙에 걸쳐 너무 많은 초현실주의 전시를 본 저는 지쳐서 흥미를 잃어버린 뒤였습니다.
![알렉산더 칼더의 [서커스] ©김슬기](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11/mk/20260411090617961ihkj.png)
![장-미셸 바스키아의 [할리우드 아프리칸스]와 앤디 워홀이 나란히 걸렸다.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11/mk/20260411090619212gagm.png)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 [무제(미국)]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11/mk/20260411090620544mzbt.png)
7층 상설 전시 <“무제”(미국)>에서는 그야말로 미국을 대표하는 거장들의 계보를 한눈에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전시는 강변을 향해 난 창문을 밝히는 동명의 작품을 통해 미술관과 그 너머의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를 만들어낸 작가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그는 연인과 함께 머무는 집을 밝히던 전구라는 일상적인 소재로 사랑, 상실, 애도를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곤잘레스-토레스는 이 작품을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미국은 언제나 도달할 수 없는 꿈, 꿈꾸는 곳이었습니다. 제가 지금 알고 있는 미국은 여전히 빛이 있는 곳, 기회가 있는 곳, 위험이 있는 곳, 정의가 있는 곳, 인종차별이 있는 곳, 불의가 있는 곳, 굶주림과 과잉이 있는 곳, 쾌락과 성장이 있는 곳입니다. 민주주의는 끊임없는 노력과 공동의 헌신이 필요한 일입니다.”
이 전시는 예술가들이 상상하고 제시한 ‘미국’에 대한 독특한 시각을 펼쳐 보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는 에드워드 호퍼가 기다리고 있었죠. 두말할 필요 없이 휘트니 미술관을 대표하는 간판 작가입니다. 유화 220점을 포함해 무려 3151점이라는 세계 최대의 호퍼 컬렉션을 소장한 곳이거든요. 작가와 미술관은 특별한 인연이 있었습니다.
거트루드 밴더빌트 휘트니가 운영한 ‘휘트니 스튜디오 클럽’에서 호퍼는 1920년 1월, 생애 첫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이 전시에는 유화 16점이 걸렸으나, 단 한 점도 팔리지 않았죠. 스튜디오 클럽이 1928년 문을 닫기까지 호퍼는 8번의 전시에 참여했는데요. 1930년, 휘트니가 호퍼의 <이른 일요일 아침(Early Sunday Morning)>을 2000달러에 직접 구매하면서 관계는 결정적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호퍼의 생전 1950년과 1964년 두 차례 로이드 굿리치가 기획한 두차례 회고전은 그를 미국의 대표 작가로 만드는 데 결정적 공헌을 합니다. 그리고 1968년 호퍼의 아내 조세핀 니비슨 호퍼는 세상을 떠나면서 남편의 모든 작품을 휘트니 미술관에 기부했죠. 덕분에 서울에서도 화제의 전시를 열었던 미국 국민 작가의 대표작을 한눈에 만날 수 있었습니다.
![에드워드 호퍼 [이른 일요일 아침], 1930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11/mk/20260411090621842znuh.png)
1929년 10월 주식시장 붕괴 직후인 1930년에 그려진 이 작품은 대공황 초입의 미국을 배경으로 삼았습니다. 비평가 블레이크 고프닉은 이 그림에서 “뼈에 사무치는 보수주의, 그리고 당대 가장 야심적인 유럽 미술에 대한 명백한, 거의 논쟁적인 저항”을 읽어냈죠. 미국인들은 지금은 사라진 미국의 거리 모습을 보며 향수를 느낍니다. 저는 대도시의 외로움을 그리는 작가로 21세기의 사랑을 받는 호퍼가 처음 마주한 뉴욕의 쓸쓸한 풍경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 그림에는 적갈색 벽돌로 쌓은 2층과 녹색의 상점으로 구성된 완벽한 조형미에 불가능한 상상력이 더해졌습니다. 재미있는 건 세븐스 애비뉴는 남북 방향 도로이므로 이런 동서 방향 그림자는 물리적으로 발생할 수 없거든요. 호퍼가 사실적 정확성보다 감정적 진실을 우선시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죠.
호퍼의 작품 중에서 가장 큰 사랑을 받는 <나이트호크스>는 시카고 미술관에 있지만, 휘트니는 이 작품의 19점의 습작 드로잉 전부를 소장하고 있습니다. 6차례의 회고전으로 뉴욕행 기차를 탈때마다 뉴요커들은 열광적으로 이 작품을 환영했죠. 두 작품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관람객을 영원한 바깥의 관찰자로 위치시킨다는 점이죠. 휘트니 미술관은 이 두 작품을 함께 전시한 바 있으며, “유사한 건축적 형태, 색채, 고독의 주제를 공유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재스퍼 존스 [세 개의 깃발], 1958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11/mk/20260411090623135qrbg.png)
보기 드문 작품이 있었는데요. 숨기고 싶었던 모습을 가리던 가발과 화장, 선글라스, 연출된 표정, 사고를 입은 앙상한 몸까지도 그대로 드러낸 앤디 워홀의 초상화입니다. ‘영혼 수집가’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앨리스 닐은 워홀의 ‘가면’을 벗겨내고 워홀의 내면에 숨겨진 연약함을 포착해냈습니다. 자화상을 숱하게 그린 워홀이었지만, 이 희귀한 초상화만큼 앤디 워홀을 매력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을 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앨리스 닐 [앤디 워홀] ©김슬기](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11/mk/20260411090624433zjkr.png)
추운 겨울이 지나고, 지금 휘트니 미술관에서는 4월 현재 제82회 휘트니 비엔날레도 한창 진행 중이더군요. 하반기 하이라이트 전시는 10월 14일 개막하는 로이 리히텐슈타인 대규모 회고전으로, 2013년 이후 처음이자 최대 규모의 회고전이라고 합니다. 뉴욕의 가을도 제법 뜨거워질 것 같습니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단독] “전세집 가보니 여대생 10여명 우르르”…불법하숙 운영하다 야반도주 - 매일경제
- “이래도 싫어할 수 있어?”…황금색 아이오닉으로 중국 홀린다 - 매일경제
- 미·이란 오늘 종전 협상…트럼프 “합의 이뤄지지 않으면 무기 사용” - 매일경제
- 여야, ‘소득하위 70% 10만∼60만원 차등 지원’ 추경안 유지 합의 - 매일경제
- “생애 첫 집이 지옥이었다”...대학생·신입생 52억 털어간 전세사기 일당 - 매일경제
- 여야 '빚없는 추경' 지켰다 … 고유가 지원금 3600만명에 지급 - 매일경제
- 사냥 능력 없는 탈출한 늑대 ‘늑구’…행방 묘연에 폐사 가능성 우려 - 매일경제
- 대통령 만난 민주노총···“AI로 발생한 기업 초과이익 환수해야” 주장 - 매일경제
- [단독] 한국GM 4조 배당 단행…8년 만에 ‘회생’ - 매일경제
- 홍명보 얼굴마담 인터뷰, 전술 노출이 진짜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