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이 만든 병, 음식으로 치료한다”

김태훈 기자 2026. 4. 11.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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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론병 전문가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류인혁 교수
크론병은 아시아에서 발생률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질환이다. 류인혁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크론병이야말로 음식이 병을 만들 수도, 치료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극적으로 보여준다”고 했다. 서울성모병원 제공


크론병은 다른 대부분의 소화기계 질환과는 달리 20~30대 젊은 시기에 발병하는 환자의 비율이 유독 높다. 게다가 이 질환을 처음 진단받는 평균연령이 점차 낮아져 더 어린 소아·청소년 환자 수도 늘어나는 추세다. 류인혁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크론병의 처음과 끝, 원인과 치료의 핵심이 음식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대표적 전문가다. 류 교수에게서 크론병 환자도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관해 상태를 유지하며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핵심적인 식단 관리 방법에 대해 들어봤다.

- 크론병은 어떤 질환인가.

“크론병은 입에서 항문까지, 소화관 어디에나 만성 염증이 발생할 수 있는 난치성 질환이다. 원인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면역체계가 자신의 장을 적으로 인식해 끊임없이 공격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원인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기 때문에 완치라는 개념이 없고 평생 약물 치료와 식이 관리가 필요하다. 복통·설사·혈변 같은 증상이 반복되며 성장기 아이들에게는 성장 부진이라는 치명적인 문제가 동반된다. 소아·청소년기에 진단되는 비율도 높아 전체 크론병의 약 25~40%에 달하는데, 소아 크론병은 성인보다 침범 범위가 넓고 더 심한 경우가 많아 조기 진단과 적극적인 치료가 중요하다.”

- 크론병의 주된 원인으로는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

“크론병의 원인을 이야기할 때 자주 쓰는 비유가 있다. ‘유전자가 총을 장전하고, 환경이 방아쇠를 당긴다’는 것이다. 크론병에 걸리기 쉬운 유전적 소인을 가진 사람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결국 환경 요인이 결정적인데, 크론병 발생률이 높아진 나라들에는 식생활이 서구화되면서 동물성 지방과 정제된 탄수화물이 많고 식이섬유가 적은 식단으로 전환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국내에서도 30년 전과 비교하면 고기 섭취량은 크게 늘었고 잡곡밥이나 나물 반찬은 줄었다.”

복통·설사·혈변 반복…소아에겐 ‘성장 부진’ 동반
식습관 변화로 지난 30년간 극적으로 발생률 증가
일반 음식 완전 중단 후 경장영양식만 6~8주간 공급
첨가물 제거돼 장이 쉬면서 회복 가능해져

- 확실히 최근 국내에서도 크론병 환자를 예전보다 훨씬 흔하게 접할 수 있다.

“30년 전만 해도 크론병은 한국에서 거의 없는 병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소아 소화기 분야 외래진료를 하면서 크론병 환자를 보지 않는 날이 거의 없다. 크론병은 원래 북미와 유럽에서 흔한 질환이었으나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에서 지난 20~30년간 발생률이 빠르게 증가했다. 유전자는 30년 만에 바뀌지 않는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 환경이 바뀐 것이다. 그 환경 변화의 중심에 음식이 있다. 크론병은 음식이 병을 만들 수도, 치료할 수도 있다는 것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질환이다.”

- 음식으로 크론병을 치료하는 것이 실제로 가능한가.

“그렇다. 소아 크론병 치료에서 ‘경장영양요법’은 이미 1차 치료로 자리 잡았다. 이 치료법은 일반 음식을 완전히 중단하고 특수 제조된 경장영양식만으로 6~8주간 영양을 공급하는 방법이다. 경장영양식은 장내 미생물 환경을 변화시키고 손상된 장 점막 장벽을 회복하며 과도한 면역 반응은 억제한다. 일반 음식에 포함된 여러 항원과 첨가물이 제거된 상태에서 장이 쉬면서 회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완전경장 이후엔 일반 음식과 경장영양식을 병행하는 방법이 이상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관해 상태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들도 나오고 있다. 약물 선택지가 제한된 소아 환자에게 성장 부진과 영양 결핍을 막는 실질적인 치료 수단이다.”

- 가장 위험도가 높은 음식 유형을 꼽는다면.

“최근에는 ‘초가공식품’이 핵심 위험인자로 부상하고 있다. 초가공식품에 포함된 유화제, 인공감미료, 식품첨가물 등이 장 점막의 보호 장벽을 손상시키고 장내 미생물 환경을 교란시킨다는 연구가 상당히 축적되어 있다. 또 서구화된 식단은 장내 미생물의 다양성을 감소시키고, 염증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는 유익균을 줄인다. 장 점막이 약해지면 장내 세균이 면역세포를 자극하게 되며, 유전적 소인이 있는 사람에게는 이런 자극이 만성 염증으로 이어진다.”

- 크론병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식단의 중요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월 미국 농무부와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미국 식이지침 2025~2030’은 40여년 만에 가장 큰 변화를 보였는데, 초가공식품을 명시적으로 제한하는 첫 미국 식이지침이 됐다. 이번 지침의 표지에는 단백질, 유제품, 건강한 지방, 채소와 과일, 통곡물이 담겨 있고, 과자, 음료수, 소시지, 햄, 냉동 피자 같은 초가공식품은 빠졌다. 신선한 식재료는 거의 다 좋은 반면, 공장에서 만들어진 가공식품이 문제라는 이 메시지가 40년간의 연구를 거쳐 미국이 내린 결론이다.”

- 소아·청소년 환자를 주로 진료해서인지 어린 시절의 바른 식습관을 특히 강조하는데, 또 다른 이유가 있나.

“크론병뿐만 아니라 비만이든 지방간이든, 결국 하나의 방향을 가리킨다. 아이들이 매일 먹는 음식이 장을 바꾸고, 면역을 바꾸고, 건강을 바꾼다. 어린 시절의 식습관은 장내 미생물 환경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어릴 때부터 가공식품과 패스트푸드에 익숙해진 아이의 장내 미생물은 전통적인 식단으로 자란 아이와 분명히 다르다. 미각이 형성되는 시기에 자극적인 맛에 익숙해지면 신선한 재료 본연의 맛을 느끼기 어려워진다. 미국 식이지침도 생애 초기의 식습관이 평생 건강을 좌우한다는 점을 강조한 거다.”

- 크론병 환자를 포함해 식생활을 바꾸려는 이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당부가 있다면.

“크론병 환자들에게 식단에 대해 설명할 때 ‘간단하게 말하면 신선한 식재료를 사서 집에서 예전 방식으로 해 먹는 음식은 대부분 괜찮다’고 말한다. 이 조언은 크론병 환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거창한 변화가 아니어도 되니 우선 달콤한 음료부터 줄이고, 가공 스낵 대신 과일을 주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크론병이라는 질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음식이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의 면역과 건강을 결정짓는 가장 강력한 환경 요인이라는 점이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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