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기만밖에 없다” 비난했던 트럼프까지 “중재해달라” 요청…파키스탄은 어떻게 핵심 중재국 됐나[1일1트]

도현정 2026. 4. 11.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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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핵실험, 군부 쿠데타, 미사일 개발 등
美에 ‘골칫거리’였던 파키스탄, 이란戰서 핵심 중재국 부상
트럼프 2기 집권 후 암호화폐·광물개발 등 협력 강화
핵심 실세 나서 트럼프 행정부와 관계 회복 전력
트럼프도 “중재해달라” 요청할 정도…“외교적 승리” 호평 일색
[1일1트] ‘트럼프를 알아야 세계를 압니다!’ 헤럴드경제신문 국제부가 1분 만에 훑어보는 트럼프 이슈를 [1일1트] 뉴스레터와 연재물을 통해 매일 배달합니다. 위 기사상단 제목·기자명 아래 <기사원문>을 클릭하시면 더 많은 트럼프 이슈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이집트 샤름 엘 셰이크에서 열린 가자 전쟁 종식을 위한 세계 정상 회의 중,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가 악수를 나누고 있다. 새리프 총리는 이번 미국·이란 전쟁에서 중재에 나서, 양국의 2주 휴전 합의를 끌어냈다. [게티 이미지]

[헤럴드경제=도현정 기자] 국제사회, 특히 미국으로부터 ‘문제국가’로 낙인찍혔던 파키스탄이 이번 미국과 이란간 전쟁에서 핵심 중재자로 부상해 눈길을 끈다. 여기에는 변모를 통해 국제사회에서의 신뢰를 회복하려는 파키스탄의 부단한 노력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파키스탄은 1970년대 말 비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과 1998년 핵실험, 민선 정부를 축출한 1999년 군사 쿠데타, 2000년대까지 계속 된 장거리 탄도 미사일 개발 등으로 미국으로부터 문제국가 취급을 받아왔다. 미국은 2024년에도 장거리 탄도 미사일 프로그램과 관련해 파키스탄을 제재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 뿐 아니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이 같은 인식에 동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1기 시절인 2018년 1월 1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위해 파키스탄에 수년간 수백억 달러를 지원했지만 파키스탄은 테러리스트들에게 안전한 피난처를 제공했다며 “파키스탄은 거짓과 기만밖에 없다(they have given us nothing but lies & deceit)”는 글을 새해 첫 언급으로 올릴 정도였다.

문제국가로 꼽혔던 파키스탄은 180도 달라졌다. 수많은 국가의 요청에도 꿈쩍않던 이란과 미국을 돌려 세워놓으며 핵심 중재국으로 변신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달 21일 “호르무즈 해협을 당장 개방하지 않으면 이란의 발전소를 초토화하겠다”는 발언을 한 이후부터 파키스탄에 지속적으로 휴전을 중재해달라고 강하게 요구했다는 후문이다.

여기에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서자 파키스탄이 미국 측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들인 막대한 노력이 있다. 파키스탄은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그와 그 측근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갔다. 뉴욕타임스(NYT)는 8일 파키스탄이 미국과 이란 사이 핵심 중재자 역할을 맡게 된 것은 지난 몇 달간 트럼프 행정부와 공들여 쌓은 관계, 그리고 이란과 수년간 다져온 깊은 유대감 덕분이라 분석했다. 이번 중재를 파키스탄이 수년래 거둔 가장 눈부신 외교적 승리라는 평가도 내렸다.

파키스탄은 트럼프 행정부로부터 ‘점수를 따기’ 위해, 암호화폐와 광물 채굴 분야에서 미국과 계약을 체결해, 미국에 경제적 기회를 제공했다. 지난해 9월에는 미국 기업에 약 5억달러 규모의 희토류와 구리, 금, 텅스텐 등 핵심 광물의 우선 접근권을 제공하고, 파키스탄 내 정련소 등을 이용하게 하는 내용의 장기 공급망 협력 방안을 체결했다. 지난 1월에는 트럼프 가족법인이 지분을 가진 암호화폐 기업 세계리버티파이낸셜 계열사와 업무협약(MOU)을 체결,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 USD1을 국경 간 결제에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지난해 9월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오른쪽)이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왼쪽)와 육군 참모총장인 사이드 아심 무니르 장군을 맞이하고 있다. [게티 이미지]

이 외에도 파키스탄은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한 ‘평화위원회(Board of Peace)’에도 합류했고, 트럼프 대통령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하기도 했다.

파키스탄의 실세로 꼽히는 육군참모총장이자 원수(5성 장군)인 사이드 아심 무니르는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과 최소 세 차례 회동을 했다고 전해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원수”라 부를 정도다.

이번 휴전안 성사 과정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발표 한 시간 전까지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 무니르 원수와 통화한 후 휴전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니르 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협상 마감 시한을 앞두고 스티브 윗코프 미국 특사부터 JD 밴스 부통령,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하는 등 이란 지도부와 트럼프 행정부 사이를 긴밀하게 오가며 의견을 전달했다는 게 막후의 이야기다.

휴전안 성사 직후 샤리프 총리는 SNS에 강조하고 싶은 말은 전부 대문자로 적는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서체 스타일을 본떠 “효력 즉시 발생(EFFECTIVE IMMEDIATELY)”이란 문구를 올리며 트럼프 대통령과의 유대를 강조했다.

아틀란틱 카운슬의 마이클 쿠겔만 선임연구원은 “파키스탄에 있어 이번 일은 매우 자랑스러운 성과”라며 “그동안 파키스탄은 지역적, 세계적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부정적인 대외 이미지로 고심해 왔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파키스탄은 미국으로부터 점수를 따기 위해 과도한 아첨과 상업적 기회 제공 등 파격적인 외교 전술을 마다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이란과 909㎞ 상당의 국경을 마주하면서 오랫동안 쌓아온 유대도 파키스탄을 이번 전쟁 핵심 중재자로 만들었다. 이슬라마바드의 연구소 베르소 컨설팅의 아지마 치마 소장은 “스위스가 이란 내에서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듯, 파키스탄은 워싱턴 정가에서 이란의 이익을 수십 년간 대변해 왔다”고 설명했다. 치마 소장은 파키스탄이 튀르키예, 이집트 등의 중견국들과 이해관계를 공유하며 이 전쟁의 지리적 경계를 형성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트럼프도 대외적으로는 계속 “발전소 폭격”, “초토화”, “한 문명이 없어질 것” 등의 강경한 수사로 이란을 압박하면서도 무슬림이란 공동체 안에서 오랫동안 유대관계를 이어온 파키스탄의 설득이 더 잘 통할 것이라 생각해 파키스탄에 이란과의 휴전을 중재해달라 요청했다고 전해진다.

파키스탄의 놀라운 변화를 두고 미국 싱크탱크 중동정책위원회의 선임 연구원인 카므란 보카리는 “수십 년간 불안정한 국가였던 파키스탄이 서아시아에서 미국의 주요 동맹국으로 재부상하는 듯하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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