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국만 더 크게 흔들릴까…에너지 위기의 진짜 이유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가격 통제의 한계…공급망·소비 구조 개편 시급
(시사저널=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한숨을 돌린 듯 보이지만 이란 전쟁은 전 세계적인 에너지 및 공급망 위기를 촉발했다. 문제는 우리나라가 받은 충격의 크기가 다른 나라와는 수준이 다르다는 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불과 3개월 만에 2.1%에서 1.7%로 끌어내렸다. 환율은 경제위기 때나 보던 1500원 선을 넘나들고 있다.
성장률 전망치와 화폐가치의 낙폭은 주요국 가운데서도 최상위 수준이다. 같은 중동 사태에도 세계 평균 성장률(2.9%)은 유지됐고, 우리와 경제 환경이 비슷한 일본(0.9%)과 중국(4.4%) 역시 성장률 전망치가 그대로인 점과 대비된다. 전쟁 당사자인 미국의 성장률 전망치는 오히려 1.7%에서 2.0%로 높아졌다.
이란 전쟁을 계기로 다시 한번 확인된 것은 에너지 수급 문제에 취약한 우리 경제의 구조다. 원유 수입의 편중성과 단일한 운송 경로는 한국 자원 안보의 가장 큰 약점이다. 우리나라는 수입 원유의 약 70%, LNG의 20% 안팎을 중동에서 조달한다. 이들 물량 대부분은 폭이 33km에 불과한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한다. 블룸버그 기준으로 이 해협을 경유하는 원유 가운데 한국의 비중은 12%로, 중국과 인도에 이어 세 번째다.
급박해진 정부는 1997년 유가 자유화 이후 처음으로 석유 최고가격제를 도입했다. 효과가 없는 건 아니다. 석유 최고가격제는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가격 급등을 억제하고 있다. 그러나 가격 통제는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대증요법일 뿐이다. 최고가격제는 사실상 정유사나 주유소의 손실을 사회 전체가 부담하는 결과를 낳는다. 시장 왜곡이 길어지면 정유사의 수익 감소와 투자 위축으로 이어지고, 이는 결국 공급 축소라는 더 큰 문제로 돌아올 수 있다. 바람직하지 않고 길게 갈 수도 없다.

반복되는 위기, 불변하는 의존 구조
지난 50년 동안 중동발 에너지 위기는 10년 주기로 반복됐다. 그때마다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지만, 위기가 지나가면 중동 의존도는 다시 높아졌다. 원유의 중동 의존도 70%에서 수치보다 중요한 건 그 수치가 50년 동안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원유의 중동 의존이 반세기 동안이나 변하지 않는 구조적 문제가 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결국 중동산 원유를 들여오는 것이 경제적으로 가장 나은 선택이기 때문이다. 중동산 원유는 찌꺼기가 많고 황이 섞인 중질유지만 가격이 저렴하다. 한국은 지난 50년간 막대한 비용을 들여 이 중질유를 정제하는 고도화 설비를 구축해 왔다.
현재 한국의 정제 능력은 세계 5위 수준이다. 원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가 항공유 수출 세계 1위를 차지하는 것도 이 구조 덕분이다. 값싼 중질유를 들여와 고도화 설비로 정제해 고부가 제품으로 수출하는 산업 모델이 자리 잡은 결과다. 정유 4사의 석유제품 수출액은 지난해 약 58조원으로, 전체 수출 품목 가운데 4위였다.
중동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수입선 다변화는 한계가 있다. 미국산 원유는 유황 성분이 적고 깨끗한 경질유지만, 우리 설비에는 최적이 아니다. 미국산 원유를 처리하려면 기존 정제 설비를 경질유 처리용으로 전면 재편해야 한다. 설비 교체에만 수조원이 필요하다. 게다가 미국산 원유나 유럽산 브렌트유는 가격도 비싸다. 당연히 경제성도 불확실하다. 원유 도입 비용과 정제 수율, 제품 가격까지 고려하면 단순하게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정유 업계가 굳이 거액을 투입해 설비를 뜯어고칠 경제적 유인은 없다.
우리 기업에 중동산 원유는 지리적 근접성으로 인해 물류비를 절감할 수 있고, 오랜 협력 관계를 바탕으로 안정적인 물량 확보가 가능한 훌륭한 선택이었다. 정부가 2015년부터 원유 도입선 다변화 지원제를 통해 연간 1700억원 규모의 환급 지원을 제공하고 있지만, 효과가 제한적이었던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원래 2024년 12월 일몰 예정이었던 이 제도는 3년 연장됐다. 그러나 정유 설비까지 함께 바뀌지 않는 한 실질적인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일본처럼 간단하게 미국산 원유로 전환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우리나라가 에너지 과소비 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한국의 경제는 석유화학, 철강, 반도체 등 에너지를 대량으로 소비하는 제조업 중심이다. 전력 소비량은 전 세계 7위, OECD 회원국 중에서는 4위다. 우리와 비슷하게 제조업 중심 국가이면서 우리보다 인구가 60% 이상 많은 독일과 비교해도 전기를 많이 쓴다. 한국의 1인당 연간 에너지 소비량은 OECD 평균보다 44% 높다.
고착화된 에너지 과소비와 왜곡된 가격
산업구조의 효율화를 통한 에너지 절감이 필요하지만, 이 역시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특히 에너지 요금의 비합리적인 결정이 구조적 문제로 지적된다. 에너지 요금이 합리적으로 결정되지 못해 가격 신호가 왜곡되면 절약 유인은 약해지고, 효율적인 투자는 미뤄진다. 억지로 낮춘 에너지 가격은 결국 과소비와 비효율, 그리고 더 큰 재정 부담으로 되돌아온다.
에너지 안보와 에너지 전환을 제대로 추진하려면 요금 체계의 정상화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무작정 요금을 올리는 것 역시 쉬운 선택은 아니다. 산업용 에너지 가격 상승은 곧 생산원가 상승으로 이어져 경쟁력 약화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주택용 전기요금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도 제도 개편을 어렵게 만든다. 가계의 부담을 늘리는 일을 감수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에너지 안보를 '적정한 가격으로 에너지를 중단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상태'로 정의한다. 현재의 글로벌 공급망 불안은 전쟁이 끝나도 정상화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휴전이나 종전이라는 정치적 선언이 걸프국의 생산 시설을 하루아침에 복구해 놓을 수는 없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배럴당 90~100달러 수준의 고유가가 1년 넘게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의 에너지 구조가 바뀌지 않았던 이유는 바꿀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에너지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결국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다. 재생에너지 중심의 전력 체계로 전환함과 동시에 전기화와 탈탄소화를 추진한다는 정부의 에너지 전환 추진계획은 옳은 방향이다. 다만 이는 긴 시간이 필요한 일이고, 그 과정은 고통스러울 가능성이 크다.
에너지 안보는 생각한 것보다 더 큰 비용과 희생을 요구한다. 여기에 탄소중립까지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면 부담은 더 커진다. 중요한 것은 이 비용을 숨기지 않고 사회적으로 공유하는 일이다. 그래야 현실적인 해법에 대한 논의도 가능해진다. 아쉽게도 안전하고 친환경적이면서 값이 싼 에너지는 세상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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