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러, 직접 충돌 없이 이익 주고받아… 냉전 세력 균형과 딴판인 ‘전쟁의 시대’[양정대의 전쟁(錢爭)외교 시대]
美의 이란 침공, 러시아 최대 수혜
유가 2배 뛰고 원유 제재도 해제
美도 LNG 수출·방산 수주 급증
우크라 공급 무기 중동 지역 집중
러 입장선 군사적 압박 완화 효과
강대국 간 감당 가능 긴장 유지 속
전쟁이 이익 주고받는 수단 변질
아직 신중한 중국도 필요에 따라
‘제한적 충돌’ 마다 않을 가능성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세계는 흡사 ‘전쟁의 시대’에 들어선 듯하다. 러우 전쟁에 미국과 러시아와 유럽 주요국들이 얽혀 있는 가운데 중동에서는 가자전쟁과 홍해 충돌에 이어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침공이 현실화했다. 주지하듯 이들 전쟁은 예외 없이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과 해상 물류와 금융시장에 연쇄적으로 충격파를 안긴다. 이는 전쟁 자체가 지정학적 변수들이 응축된 결과임을 보여준다.
주목할 건 전쟁을 감행한 강대국들에 의해 전쟁의 ‘기능적인’ 측면이 부각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전쟁을 외교 실패에 따른 참혹한 비극이 아니라 국익을 위해 불가피하거나 필수적인 ‘외교적’ 수단으로 정당화한다. 이들은 공히 상대가 시작한 전쟁에서 이익은 취하되 직접 충돌은 피할 뿐만 아니라 중재자를 자임하기까지 한다. 러우 전쟁과 미국·이란 전쟁에서 드러난 미국과 러시아의 행보는 전쟁이 초강대국 간 이해관계 조정의 수단이 되고 있음을 상징한다.
러시아의 침공·미국의 재정렬
2022년 2월 발발한 러우 전쟁은 냉전 종식 이후 가장 큰 지정학적 충격이었다. 핵보유 초강대국의 유럽 국가 침공은 전쟁을 ‘과거의 일’로 치부하던 유럽의 안보 관념을 단숨에 붕괴시켰다. 게다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 이후엔 러우 전쟁에서 침략과 저항의 대립각은 희미해진 반면 강대국들의 전략이 재배치되는 구조 변화의 무대라는 성격은 짙어졌다.
전쟁 초기 조 바이든 당시 미국 행정부의 선택은 압도적인 간접 개입이었다. 침공 국가의 군사력 소진, 정치적 부담 최소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부활 등 외견상 목표가 분명했다. 2022~2024년 군사 지원 1,000억 달러를 포함한 1,750억 달러(약 260조 원)를 쏟아부었고, 이는 미군 병력을 보내지 않으면서도 전장의 균형을 무너뜨릴 수준으로 평가됐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경제적 특수를 누렸다.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을 줄일 수밖에 없게 된 유럽 주요국들에 액화천연가스(LNG) 수출을 대폭 늘렸고, 나토 회원국들의 재무장 덕에 방산 기업들은 역사적 수준의 장기 수주 계약을 확보했다. (본보 2025년 3월 8일자 13면 ‘러우전쟁 3년, 미국은 몰래 웃었다’) 미국 입장에선 전쟁이 안보 위기가 아니라 산업 수요임을 재확인한 셈이다.

그런데 트럼프 재집권 이후 미국의 접근법은 ‘근본적으로’ 수정됐다. 우크라이나 지원국에서 벗어나 무기 판매국으로 전환한 것이다. 무상 군사 원조 대신 차관·리스·구매 방식이 강조됐고, 외교 무대에선 ‘거래’와 ‘비용 분담’이 핵심 용어가 됐다. 이는 외교 노선의 수정을 훨씬 넘어서서 전쟁의 성격 자체를 바꿨다. 전쟁 비용이 ‘유럽과 국제기구 자금→우크라이나 재정→미국 무기 구매→미국 방산기업 매출→월가 금융시장 환류’의 구조를 갖추면서 미국은 재정 부담 없이 전쟁을 고효율의 수출 산업 기반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의 경제력이 전반적으로 회복되고 있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서방의 제재가 강화됐지만, 국제유가 상승과 비서방 국가로의 우회 수출로 러시아의 재정은 예상보다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부분적인 모병제 전환, 건설업·제조업의 기반 확대 등으로 전쟁 수행에 대한 높은 지지는 물론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에서 유럽 주요국을 압도했다.

결국 러우 전쟁은 시간이 흐르면서 강대국들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익을 확보하는 구조로 변모했다. 특히 트럼프는 재집권 이후 무기를 판매하면서 휴전을 중재하는 극도의 모순을 거리낌 없이 소화하고 있다. 휴전 협상은 이미 우크라이나의 광물자원을 겨냥한 미러 양국의 짬짜미로 흐를 거란 우려가 팽배하다. 러우전쟁은 강대국들이 ‘관리 가능한’ 수준에서 경제·금융·동맹 질서를 재설계하는 과정처럼 보인다.
러시아의 숨통 틔운 이란전쟁
미국·이스라엘의 전격적인 이란 침공으로 촉발된 전쟁의 최대 수혜자가 러시아라는 데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어 보인다. 러우 전쟁 특수가 막바지에 접어들며 허덕이던 러시아는 이번 전쟁으로 재정 압박과 경기침체 위기에서 한숨을 돌렸다. 50달러 초반이던 러시아산 우랄유 가격은 2배가량 뛰었고, 트럼프가 글로벌 유가 급등 해소책으로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제재를 한시적으로 풀면서 중국·인도에 이어 일부 동아시아 국가에도 수출이 가능해졌다.
물론 미국의 경제적 이익은 훨씬 더하다. 미국은 이미 하루 1,300만 배럴 안팎을 생산하는 세계 최대 원유 생산국이자 LNG 수출 1위 국가다. 전쟁으로 에너지 공급망에 충격이 가해질수록 유럽과 아시아는 안정적인 공급원을 찾아 미국산 에너지에 대한 의존도를 높일 수밖에 없다. 러우 전쟁 이후 미국의 LNG 수출량은 두 배가량 증가했고, 이번 미국·이란 전쟁을 전후해 장기공급 계약이 다시 급증했다. 달러 결제 기반의 거래 확대로 금융 영향력도 재확인됐다.

군수산업에서의 효과는 더 직접적이었다. 미국·이란 전쟁이 격화하는 새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이스라엘 등 중동 국가들의 방공·미사일 요격 체계 주문이 빠르게 늘었고, 미국 방산 기업들의 수주 잔량은 사상 최고 수준으로 올라섰다. 지난해에 2조4,000억 달러(약 3,555조 원)로 역대 최대였던 전 세계 군사비 지출 규모는 올해 최소한 20% 이상 급증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왔다.
이 대목에서 미국·이란 전쟁은 러시아에 또 다른 활로를 제공했다. 미국 전략자산의 중동 집중이 우크라이나에 판매되던 무기 체계의 공백으로 이어지면서다. 미국의 이란 침공은 러시아가 전장에서 받는 군사적 압박을 완화하는 효과를 낳았다. 미국의 중동 개입 강화가 러시아에 간접적으로 전략 공간의 확장 가능성을 제공한 셈이다. 이번 전쟁을 기화로 트럼프가 나토 탈퇴 가능성을 공언하는 것만 해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겐 선물이다.
근래의 잇따른 전쟁은 강대국들이 서로가 감당 가능한 수준의 긴장을 유지·관리하는 가운데 전략적 이익을 주고받는 수단으로 변질됐다. 러시아가 일으킨 전쟁에서 미국은 동맹 재정렬과 방산·에너지 이익을 얻었고, 미국발 전쟁에선 러시아의 에너지 수익이 급증했다. 각자의 전쟁이 상대에게도 일정한 이익을 제공하는 구조다. 중국은 아직까지 한 발 떨어져 있지만, 대만·남중국해 문제 등이 부각되면 역시나 미국과의 직접 충돌은 피하되 지역 긴장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전쟁은 이제 외교의 실패가 아니라 초강대국 간 경쟁 관리의 한 방식이 됐다.
서로의 전쟁을 용인하는 이유
러우 전쟁과 미국·이란 전쟁은 서로 다른 지역에서 발생했지만 여러 고리로 연결돼 있다. 강대국들은 공히 상대가 일으키는 전쟁을 적극적으로 막으려는 시도 자체를 하지 않고, 전쟁이 발발한 후에는 관여의 수위를 관리한다. 겉으로는 대립하는 모양새도 취하지만 직접적인 물리적 충돌을 피하는 건 물론이고 상대의 핵심적인 이익선을 결코 넘지 않는다.

이런 패턴은 냉전 시기의 ‘세력 균형’과 닮아 보이지만, 이념이 아니라 (경제적) 이익이 전면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이념블록 간 대립에서 전쟁은 외교의 실패이자 사선의 영역이었지만, 이익블록이 맞서는 지금은 필요에 따라 허용 가능한 외교적 수단으로 여겨진다. 더욱이 강대국 내 정치적 이해관계가 외부를 겨냥한 전쟁으로 현실화하기도 한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글로벌 군비 증가세를 분석하며 “전쟁이 늘어서 군비가 늘어난 게 아니라 군비 확대가 가능한 환경 속에서 전쟁이 지속되는 구조”라고 비판했다.
에너지시장의 흐름은 강대국들이 각자 전쟁을 일으키고 상대방 주도 전쟁에 대한 개입을 최소화하는 이유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러우 전쟁은 미국 LNG산업을 급성장시켰고, 미국·이란 전쟁은 러시아의 곳간을 채웠다. 트럼프가 베네수엘라 및 이란 침공의 속내가 원유 확보임을 숨기지 않고,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통행세 징수를 거들겠다고 나선 건 전쟁에 따른 에너지시장 충격을 유효한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고 있음을 보여준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트럼프의 이란 침공은 강대국이 언제든 국익을 명분으로 전쟁을 유효한 수단으로 삼을 수 있음을 보여줬다. 트럼프로선 우크라이나를 압박해 현 상태로 러우 전쟁을 끝내는 게 최선이고, 중동지역 내 미군기지 정보를 이란에 제공했을 가능성이 높은 러시아는 내심 미국·이란 전쟁의 장기화를 바랄 것이다. 아직까지 신중한 중국도 지속적인 해군력 확대, 반접근·지역거부(A2/AD) 전략, 반도체·에너지 공급망 독립 추진 등을 감안하면 경우에 따라 ‘제한적’ 충돌을 마다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제 세계는 미국과 중국과 러시아가 직접 충돌은 피하되 영향력 경쟁은 멈추지 않고, 필요에 따라 전쟁마저 유효한 외교적 수단으로 활용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양정대 선임기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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