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밥상에서 되찾는 ‘중장년 여성의 노동력’ 향한 존경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한식을 둘러싼 반응도 달라졌다. SNS 등을 통해 본격적으로 퍼진 소위 ‘K-푸드’의 매력은 불닭볶음면이 이끄는 자극적인 공산품의 맛부터 김밥이나 백반처럼 다양한 식재료를 한 번에 맛볼 수 있는 재미, 그리고 건강에 관한 관심까지 각양각색이다. 한식의 위상이 달라졌음은 넷플릭스 제작의 <흑백요리사> 시즌 2에서도 체감할 수 있다. 시즌 1과 비교하면 참가자 중 한식 요리사의 수가 증가했을 뿐 아니라, 프로그램 내에서의 주목도나 실력을 조명하는 방식이 훨씬 폭 넓고 섬세해졌다. 여전히 한식을 만드는 여성은 ‘밥하는 아줌마’고 외국 요리를 하는 남성은 ‘쉐프’인 세상은 여성에게 제육 볶아오라는 말을 모욕으로 쓰지만, 그래봤자 한국에서 발을 딛고 살거나 잠시라도 머물렀던 이들은 한식과 떨어져 살 수 없다. 때가 되면 입으로 밥이 들어가야 하고, 밥심이라고 부르는 모호하고 추상적인 느낌은 오장육부 속 어딘가 웅크리고 있다가 비 오는 날 뜨끈한 국물이나 제철 음식을 적절히 된장과 고추장에 버무린 찬을 향해 힘차게 꿈틀거린다. 스튜디오 슬램이 제작하는 <윤남노포>는 친근하고도 군침 도는 한식이 매화 맛깔스럽게 등장하는 유튜브 예능이다. <흑백요리사>에서 ‘요리하는 돌아이’로 등장해서 <냉장고를 부탁해>(JTBC)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 프렌치 일식 쉐프인 윤남노가 시장을 돌아다니며 무작위로 ‘한식 손맛을 배우고 싶다, 밥 좀 해달라’라고 요청한다. 행인이 승낙하면, 윤남노가 재료를 사서 집을 방문하고 요리 과정을 지켜보거나 거든 후 함께 한 끼를 먹는다. 6개월 전 1화를 시작했고 현재 27화까지 진행되었으며, 매회 20~30분 정도의 분량이다. 밥 친구로 딱 맞다는 뜻이다. 소소하게 인기를 끌며 애청자를 늘려가는 중인 <윤남노포>의 매력을 한술 떠보자.
구성 자체는 익숙하다. 평범한 시민에게 식사를 요청하고 대접받는 구성은 한때 인기를 끌었던 <한끼줍쇼>(JTBC)를 떠올리게 하고, 그 과정에서 주고받는 대화나 일상의 정겨운 풍경은 초창기 <유퀴즈 온 더 블록>(tvN)의 향수를 자극하며, 활기찬 시장의 제철 식재료와 상인들의 넉살은 <생생정보통>(KBS), <여섯 시 내 고향>(KBS)과 닮았다. 매 회차에는 친숙한 한식들, 제철 음식들이 등장한다(최근 화의 음식은 봄나물 비빔밥이다). 그래서인지 <윤남노포>의 구독자는 진행자 윤남노를 놀리는 농담을 따서 “생생돼지통통”, “여섯 시 돼고향” 등의 다양한 별명을 붙인다. 기존의 프로그램과 차별화되는 <윤남노포>만의 매력은 백반 한 상과 같다. 따뜻하고, 구수하며, 달고 짠 맛과 맵고 쓴 맛이 공존한다. 세련되지 않아도 편안하고 정겹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윤남노포>에서 손맛 장인을 찾아다니는 윤남노는 대부분 중장년 여성을 섭외 대상으로 삼고 “어머니”라고 부르며 다가간다. 청소년이나 아동을 만나도 “어머니 손맛 좋으시냐?”라고 묻는다. 요즘 같은 때(?) 확실히, 촌스럽다. 자동인형처럼 줄줄 외치고 싶을 수도 있다. 여성을 가족의 구성원으로만 환원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며, 요리를 여성의 일로 국한하는 사고방식은 성차별적입니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실제로 현장에서 윤남노가 만나는 중장년 여성들의 활력과 매력이 이런 반사적인 반응을 가볍게 제압한다. 어머니라고 불리는 순간 무장해제 되면서, 순식간에 윤남노에게 통통하다거나 살이 왜 이렇게 쪘냐고 구박한다. 세간의 기준으로는 무례하지만, 명백히 애정을 담아서. “네가 나를 (가족주의와 성별 고정관념에 따르되 친근하게) 어머니라고 부른다면, 나는 너에게 (외모지상주의와 신체 비하의 의미지만 귀엽다는 뜻의) 호칭을 돌려줄게.” 이게 바로…맞다이?

중장년 여성을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은 분명 완벽하지 않은 호칭이고 과체중인 사람에게 살 이야기를 하는 것 또한 옳지 않다. 그렇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그 언행이 주고받는 사람들 사이의 애정과 존중으로 통한다. 선생님이라는 세련되고 중립적인 호칭보다 어머니라는 부름에 더 익숙하고 또 정을 느끼는 여성들이 거침없이 윤남노의 뱃살을 지적한다. 중장년 여성들의 몸 지적에 이골이 났다면 조금 식은땀이 흐르는 장면이지만, 하는 사람도 받아들이는 사람도 잘 먹는다는 감탄이나 귀엽다는 표현 대신 쓰고 있음이 느껴진다. 즉 단어의 의미가 관계 속에서 재맥락화되는 것이다. 이러한 장면이 가능한 데에는 진행자로서 윤남노의 역량도 한몫한다. <흑백요리사> 때까지만 해도 인상이 나쁘다는 말을 주로 들었던 윤남노는 여러 방송에서 귀여움받으며 문자 그대로 ‘얼굴이 폈다’. 그는 통통한 몸과 먹성을 내세우며 사람들의 호감을 사고,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중장년층을 대상으로도 친숙하고 편안하게 대화를 이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방송을 뽑아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고 시민 처지에서도 갑자기 집을 공개하면서 유명한 쉐프 앞에서 요리해야 하니 기획 자체는 여러모로 부담스럽다. 실제로 종일 시장을 돌아다니지만 결국 섭외에 실패하는 날도 있다. 그런 날에도 윤남노를 통해 만나는 시장의 광경들은 재미를 보장한다.
손맛 장인을 대부분 중장년 여성으로 생각하고 다가가기에, <윤남노포>는 현존하는 콘텐츠 중 매우 드물게도 평범한 시민, 심지어 중장년층과 여성이 중심이다. 평범한 일상과 꾸밈없는 반응이 애청자들을 끌어들인다. 인터뷰 대상이거나 요리를 해주는 중장년층 여성들의 매력은 무궁무진하다. 선뜻 다가와 손을 잡고 반기다가도 누군지는 모르고, 거침없이 먹을 것을 건네면서 ‘셀프’라고 부르고, 모바일 게임에 푹 빠져 있기도 하고, 오토바이로 전국을 누비기도 했으며, 무심하게 남노가 먹은 것을 결제하고 가버리거나, 앵무새를 어깨에 얹은 채 산책하다가 아들을 잃은 뒤 오랫동안 상심에 빠졌던 과거를 덤덤하게 털어놓기도 한다. 요리를 뚝딱뚝딱 잘하는 출연자가 있는가 하면, 계속해서 엄마에게 전화해서 물어보거나 아예 엄마가 등장해서 도와줄 만큼 요리에는 아직 조금 서툰 출연자가 있다. 아들 같다며 예뻐하다가도 같이 밥 먹자는 말에 친구들과 약속이 있다며 쌩 가버리고, 촬영 스태프들이 먹을 것까지 챙기면서 호방하게 카메라 내가 들어줄게 외친다. 세상이 만들어놓은 ‘아줌마’라는 틀에 적당히 부합하고 또 이리저리 삐져나오는 여성들이 이렇게 정겹게, 이토록 제멋대로 존재하는 장면을 잔뜩 볼 수 있다니. 가슴이 뜨끈해진다.
유명한 요리 예능에서 높은 순위를 기록했고, 시장에서 식재료를 볼 때마다 풍부한 정보를 자랑하지만 윤남노는 ‘한식을 잘 모른다’라고 겸양하며 요리를 청한다. 김치를 담가본 적 없다는 말에 중장년층 여성들은 쉐프라면서 김치도 안 담가봤냐고 놀란다. 김장하러 가서는 윤남노의 절반도 안 되는 체구의 여성들이 훨씬 더 능숙하고 활기차게 배추를 다루는 장면이 웃음을 유발한다. <윤남노포>는 그 구성의 특성상, 평범하지만 필수적인 일상의 식탁을 지탱해 온 여성들의 노동력과 내공을 은은하게 조명하고 확실하게 존경을 표하게 된다. 한식이 오랫동안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던 이유는 거칠게 세 가지다. 근대화 과정에서 자연스레 내재화된 사대주의와 전통에 대한 멸시, 여성 중심의 문화에 대한 존중 부족, 세계화의 과정에서 살짝 빗나간 수요층 조준. 첫 번째 문제에는 매일 먹는 음식에 대한 무시 외에도 한식이 정밀한 계량이나 체계적인 시스템 대신 ‘손맛’과 같은 추상적인 차원을 중시한다는 인식이 포함된다. 두 번째 문제에는 한식이 매우 노동집약적이고, 손맛이라는 표현처럼 숙련도가 중요한데도 ‘밥하는 일’이 여성들의 일로 국한되어 그 중요도나 전문성이 폄하된 역사가 관여한다. 세 번째 문제는 외국인들은 매운맛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근거로, 냄새나는 음식 대신 비빔밥이나 불고기 같은 무난한 한식만 건강식의 이미지로 홍보했던 착오를 뜻한다. 두 번째 문제는 한식이라는 식문화가 여성 노동을 기반으로 형성되었음을 인정하고, 이에 임하는 사람들의 전문성을 존중하는 동시에 요리가 여성의 자연스러운 의무가 아님을 논하는 작업을 요구한다.
한식의 위상이 달라지는 지금, ‘엄마’와 ‘아내’라는 사적인 이름에 가려졌던 요리의 내공을 휘두르는 여성들이 등장하는 <윤남노포>는 귀하다. 또한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극소수이지만, 남성 출연자나 남성 청소년이 손맛 장인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요리가 특정 성별만의 의무나 기예가 아니라, 먹는 존재로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일상적으로 한다는 평범한 진실이다. 현재의 삶을 존중하는 것과 다른 실천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은 이렇게 공존할 수 있다. 최근 <윤남노포>는 시장을 돌아다니며 찾는 것 외의 방법으로, 직접 손맛 장인을 제보받아 찾아가는 구성도 추가했다. 어떤 형태든 일상 속 식탁과, 그것을 즐겁게 만들고 나누는 풍경의 창으로서 <윤남노포>가 오래오래 지속되기를 바란다.

<이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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