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한국은행 총재 후보는 ‘노벨상급 석학’이라는데…

■ "신현송은 탁월한 사상가 중 하나" 찬사 보내는 세계적 석학
경제학자 신현송 소개는 애덤 투즈를 인용하는 게 적당하다. 미 컬럼비아대 경제사 교수인 투즈는 세계적 국제관계 잡지 <포린폴리시>가 선정한 글로벌 사상가인데, 그가 신현송에 무한 신뢰를 보낸다. 일례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의 세계를 다룬 세계적 베스트셀러 [붕괴 Crashed]에는 이런 표현이 등장한다.
“국제결제은행 BIS의 수석 경제학자이자 ‘거시 금융론 Macro finance’라는 새로운 분야에서 가장 탁월한 사상가 중 한 사람인 한국 출신의 신현송이 이야기한 것처럼,”
-붕괴(Crashed), 애덤 투즈, 31쪽

국제·외교 문제 분야 최고의 논픽션에 수여되는 라이오넬 젤버상을 수상(2019)한 이 책에서 신현송을 이렇게 추켜세우는 이유는 간단하다. 신현송의 이론에 크게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과 유럽의 금융 시스템을 일순간 마비시킨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발단과 전개, 그리고 확산 과정을 분석할 때 그랬다.
우리는 금융위기가 '탐욕적인 은행'이 '규제 테두리를 우회하며, 시스템을 어지럽히는 바람에 일어났다는 걸 알고 있다. 기존 규제 시스템은 은행 시스템을 중심으로 건전성을 규제했는데, 사단은 그 바깥에서 벌어졌다. 뭉뚱그려 '그림자 금융'이라고 부르는 부문이다.
이 영역은 전통적 국가 단위 금융 분석에선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예금잔고나 대출잔액과는 무관한 레포(환매조건부채권), MMF, 스와프, 사모 시장 등이 주무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현대의 금융 시스템'은 전통적 체계와는 달라졌다. 바젤1, 2, 3 같은 전통적 건전성 규제를 아무리 강화해도 금융위기를 막는다고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신현송은 바로 이 새로운 글로벌 금융 환경을 제대로 해석해 낸 학자다. 전통적 국가나 은행 단위의 분석에서는 온전히 파악되지 않는다. 예금 잔고나 은행 대출만 보면 실체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규제의 바깥에 있고, 제대로 규율되지도 않는다.
신현송은 이 글로벌 금융 시스템을 수많은 네트워크의 사슬로 파악했다. 또 이 사슬의 취약성이 얼마나 거대한 글로벌 시스템 위기로 이어질 수 있는지도 말했다. 그러니 도미노처럼 세계로 번진 2008년 금융위기를 설명하려고 '신현송 가라사대'라고 인용한 거다.

■ 버냉키 말고 신현송에게 노벨상을 줘야 한다?
한국의 경제학자가 글로벌 주류 경제학의 핵심 분야에서 이렇게 주목받는 일은 흔치 않다. 살펴보니 이력도 화려하다.
영국에서 공부했고, 미국의 명문대학 프린스턴에서 종신 교수직을 보장받았는데, 그 자리를 떠나 국제결제은행 BIS로 갔다. BIS 전에는 미국 연준 FED 시스템의 핵심인 뉴욕 연방은행에서도 일했고, 국제통화기금 IMF에도 적을 둔 적이 있다.
그런데 애덤 투즈는 그 정도 칭찬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나 보다. 이후로도 종종 신현송을 언급하는데, 특히 2022년의 찬사가 기념비적이다.
2022년은 노벨 경제학상이 벤 버냉키에게 돌아간 해다. 버냉키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미국 연준 FED 의장이었다. '월스트리트에서 시작된 위기가 더 크게 번지지 않고 조기에 수습될 수 있게 적당한 정책을 집행'했다. 또 그 이론적 기반은 버냉키가 25살 때 쓴 박사학위 논문이었다. (궁금하다면 아래 기사를 참고하자.)
[연관 기사] 버냉키가 막은 위기, 그리고 초래한 ‘불공정한 세상’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5576227&ref=A
별 이의가 없을법한 수상인데, 애덤 투즈 생각은 달랐다. 본인의 블로그에 이 수상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신현송을 등장시킨다.
“(중략) 만약 스웨덴 중앙은행 노벨상 위원회가 진정으로 현대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역동성과 그것이 실물경제와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를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게 해준 경제학자에게 상을 주고 싶었다면, 그 상은 윌리엄 화이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BIS 팀과 오늘날 그들과 연계된 학자들, 그중 가장 두드러지게는 신현송에게 돌아가야 했다.”
원문 : Chartbook #160
If you follow the Mehrling-Kindleberger line, if the Sveriges Riksbank Prize committee had actually wanted to reward economist who have enabled us to understand the dynamics of the modern global financial system and its interconnections with the real economy, the prize should have gone to the team at the BIS going back to the William White era and the academic economists associated with them today, most notably Hyun Song Shin.
2022년 10월 14일 애덤 투즈 블로그 출처:
https://adamtooze.substack.com/p/chartbook-160-kindleberger-mehrling
■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지도'
누구의 연구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지도를 그려주는가. 그게 투즈의 문제 제기다.
즉, 버냉키의 연구가 학문적으로 훌륭하다 해도, '지금 우리의 문제', 즉 현대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작동 방식을 실질적으로 해명한 건 신현송과 그의 동료들이라는 뜻이다. 버냉키와 딥비그, 다이아몬드 3인의 수상자가 보았더라면 불쾌했을 언사이지만, 한국의 기자가 보기에는 이른바 '국뽕'이라고 부르는 애국적 감정이 차오를 수밖에 없는 언급이다.
실제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사태가 걷잡을 수 없게 된 건 대서양 양쪽의 미국과 유럽을 연결하는 '레포 시장'의 마비가 결정적이었다. (투즈는 마치 일순간 중력이 사라진 듯 거래가 마비됐다고 표현한다.) 전통적 은행 부문으로 설명 못 하는 수많은 그림자 부분 가운데 하나이며, 국제적으로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 은행 건전성 규제를 해봐야 이 부문 거래가 문제가 되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니 투즈의 언급은 (과할지는 몰라도) 분명 의미가 있다.
그런 신현송이 한국은행 총재가 된다. 잘할까? 물론 한은 총재로서의 역할 수행은 그간 신현송이 보여온 이론적 분석과는 다른 도전이다. 이론가는 '정답', 혹은 '정확한 그림'을 찾지만, 중앙은행 총재는 '정치적 압박(정부와의 조율)'을 경험하면서 '시장과 소통'해야 하는 고도의 정무적 감각이 필요하다. 한국적 부동산 금융 구조와 고금리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엄밀히 말하면 학자의 자리와는 멀리 떨어진 별개의 영역이다.
그래서 직전 직장인 BIS 시절을 좀 보아야 한다. 마지막 직책은 통화경제국장이다. 이 자리의 의미는 후임자로 지명된 경제학자를 보면 이해하기 쉽다.
■ 헬렌 레이, Dilemma, not Trilemma

프랑스 출신에 비교적 젊은 50대 여성 경제학자다. 헬렌 레이는 '스타 경제학자'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학자다. 그는 2천년대 이후 경제학 저작 가운데 인용 횟수가 많은 것으로 손꼽히는 "딜레마야, 트릴레마가 아니라 Dilemma, not Trilemma(2013)"를 내놓았다. 당시 43세(1970년생)였는데, 이 발표 하나로 단숨에 '스타 경제학자'의 반열에 올랐다. 국제 금융계의 고전적 원칙을 뒤흔들었기 때문이다.
고전적 금융경제학에서 ①자유로운 자본 이동과 ②고정환율, 그리고 ③독립적 통화정책은 동시에 달성할 수 없다. 이른바 '불가능한 삼위일체 Impossible Trinity'다. 금융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한 전제 가운데 하나이지만, 지금 이 기사에서 이론적 의미를 이해할 필요는 없다. 대한민국 같은 국가에 던지는 의미만 이해하면 된다.
대한민국 같은 나라 중앙은행의 독립적 금리정책이 먹히려면 '자본 이동'에 제한을 가하든지, '고정환율'을 포기하든지 해야 한다. 그런데 통념상 자본 이동에 제한을 가하면 국제 금융에서 고립될 것이니 이건 선택지가 안되고, 후자, 즉 고정환율 포기 만이 선택지다. 따라서 국제 금융시장에 참가하면서 독립적인 금융정책을 유지하려면 변동환율을 도입하는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게 지난 시절 대부분의 나라가 고정환율을 버리고 변동환율의 세상으로 들어온 이유다. 거의 '법칙'처럼 통용되던 이 이론에 도전한 것이 헬렌 레이다. 그의 이론을 좀 쉽게 설명하면 '국가들이여, 자본의 무분별한 이동을 제한하라' 정도가 된다.
'트릴레마(삼중고)'는 틀렸어. 현실을 봐. 소국 개방경제들이 글로벌 환경에서 자본 이동 자유화하고 변동환율제 했다고 정책 독립성 유지할 거 같아? 아니. 오히려 위기에 노출됐어. 연준 Fed가 전 세계의 중앙은행이 된 상황을 제어할 수단은 전혀 없어지는 거야.
게다가, 정글인 국제 금융시장이 신흥국으로 달려들잖아. 온갖 초국적 자본이 규제의 바깥에서 마음대로 레버리지(타인의 자본을 지렛대처럼 이용하여 자기 자본의 이익률을 높이는 것)를 일으켜 신흥국들을 넘나들어. 좋을 때는 밀물처럼 들어가고, 위기 때는 썰물처럼 빠져. 무시무시한 환경이지. 그런데 변동환율과 자본 이동 자유화가 어떻게 독립적인 국가들의 지침이 되니. 그걸 금과옥조 삼으면 국제 투기 자본의 먹잇감이 되고 말아.
따라서 '트릴레마'는 책 속에서나 통할 고리타분한 소리이고 현대 국제 금융 환경에서는 무책임한 소리야. 변동환율은 아무것도 지켜주지 않아. 그러니 트릴레마의 한 축인 환율은 지워야 해. 그럼 두 가지가 남지.
그래서 트릴레마가 아니라, 딜레마가 핵심이야. 자유로운 자본 이동 vs 독립적 통화정책. 이 둘의 싸움이란 얘기야. 내 생각은 따라서 이렇게 요약돼.
국가들이여, 통화 독립성을 유지하고 싶어? 그럼 국제 자본 이동을 좀 막아봐.
■자본 이동을 막다니, 이게 무슨 경제학 이론이야!
경제학은 오랜 시간 자유의 전도사였다. 자유로운 이동만 말했다. 자본 규제 역시 대체로 부정적이다. 그런데 헬렌 레이는 정면으로 도전했다. 그리고 스타가 됐다.
피인용 횟수 기준으로 살아있는 경제학자 가운데 손에 꼽을 정도다. (언젠가 노벨상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실증적으로 글로벌 경제체제의 현실을 설명해 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안 규범이 됐다. 2020년 코로나 위기 때로 돌아가 보자.
당시 제일 먼저 국가부도로 향했던 게 스리랑카다. 스리랑카가 무너질 때 많은 전문가가 '이건 시작이고 더 많은 나라가 무너질 거'라고 예측했다. 금융이 마비되고, 세계 네트워크가 일시에 굳어버리고, 신흥국에선 돈이 썰물처럼 빠지는 상황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 그랬다. 코로나 위기 때 무너진 국가는 의외로 많지 않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비교해 보면 잘들 버텼다. 상당 부분은 헬렌 레이의 이론에 빚지고 있다. 딜레마 상황에선 자본 통제하라, 이 목소리가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심지어 자유경제의 성채 IMF조차 당시 권고문에서 필요한 자본통제 조치를 실시하라고 했다. 시장에 다 맡기지 말고, 정부가 나서라. 이런 흐름이 위기의 과도한 확산을 막았다.
그 헬렌 레이가 BIS에서 신현송의 빈자리를 메운다. 물리적으로만 메우는 게 아니다. 둘의 이론은 구체적 정책 권고의 측면에서 연결되어 있다. 헬렌 레이는 미국 연준의 통화정책이 글로벌 금융 사이클 전체를 좌우하며, 그 앞에서 소국들의 통화 독립성이 사실상 무력화된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줬다. 그 결론이 바로 '자본 이동을 통제하라'는 정책 방향으로 이어진다. 즉, 같은 문제의식으로 비슷한 맥락의 정책을 제안하는 사람이 바통을 이어받는 거다.
신현송은 이명박 정부 청와대에서 일한 경험도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신현송은 거시건전성 3종 세트를 주도한다. ‘선물환 포지션 규제, 외환 건전성 부담금, 외국인 채권투자 과세’다.
역시 이론적으로 길게 설명할 것은 없다. 하나같이 ‘자유로운 자본 이동’을 통제하는 방향의 정책이란 점만 기억하면 된다. 실제 금융 현실에 맞는 이론을 연구했고, 그걸 실제 정책 영역에서 정책으로 집행해 본 사람이란 의미다.
애덤 투즈의 표현을 신뢰한다면 우리는 지금 현대 글로벌 금융 지형을 가장 잘 이해하는 석학이자 행정가를 우리나라 중앙은행의 수장으로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 셈이다. 청문회는 15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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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민 기자 (seo01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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