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고환율에 중동전쟁까지···원가 급등에 식품업계 속앓이[산업이지]

정유미 기자 2026. 4. 11.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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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칼날도, 당분간 가격 인상 쉽지 않아
공정거래위원회가 ‘밀가루’ 담합을 적발했던 지난 2월 서울의 한 대형마트. 연합뉴스

식품업체들이 울상입니다. 고물가 장기화에 극심한 소비심리 위축도 모자라 고환율·고유가·고금리까지 고민이 한 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중동전쟁 여파로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를 넘나들고, 국제 유가가 갤런당 100달러를 찍는 것도 이젠 낯설지 않습니다.

식품업체들은 당장 원자재 가격급등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봉쇄된 호르무즈해협이 활짝 열린다고 해도 앞으로 원자재값과 물류비가 얼마나 오를지 가늠하기조차 힘들다고 합니다. 갈수록 경영 환경이 녹록지 않아 제품 가격 인상은 불가피하다고 하소연합니다.

식품업체들은 이재명 정부 출범 초기에는 몸을 바짝 낮췄습니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는 사실 가격 인상 시기를 놓고 슬금슬금 저울질하기 시작했습니다. 인상 시점의 마지노선을 오는 6월 3일 전국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일로 잡은 것은 암묵적 약속이었습니다. 선거철에는 민심이 중요하니 그때까지만 버틴다면 가격인상 비판도 어느 정도 잦아들 것이라고 판단했던 거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을 상대로 강경 발언을 내놓은 지난 2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연합뉴스

하지만 식품 업계의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정부는 지난 2월 농림수산식품부 차관을 팀장으로 내세워, 재정경제부와 공정거래위원회 등 7개 관계 부처가 참여하는 ‘민생물가 특별관리 TF 유통구조 점검팀’을 출범시켰지요. 업계 전반에 퍼진 가격 상승 요인과 기업 불공정 행위 등을 찾아내 물가를 안정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눈여겨볼 점은 농식품부 주도로 식품업계 관계자들이 간담회를 열고 나면 바로 먹거리 가격이 줄줄이 인하됐다는 데 있습니다. 최근 식품업체들이 라면, 식용유, 밀가루, 빵 등 가격을 내린 것이 대표적이죠. “솔직히 서슬 퍼런 공정거래위원회의 칼날이 무섭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농식품부 주도로 TF 간담회가 열리는 사이 공정위는 설탕·밀가루·전분당 업체들의 가격 담합 행위를 적발했습니다. 제당·제분 업체들의 담합 관련 매출 규모가 최대 15조원(설탕 3조2000억원·밀가루 5조8000억원·전분당 6조2000억원)에 육박한다고 발표한 것이지요.

소비자들은 분노했고 정부의 물가안정 기조는 힘을 얻었습니다. 업체들은 당장 설탕은 4~6%, 밀가루는 5~6%, 전분당은 3~5% 수준으로 출고가를 내렸지요. 곧이어 식용유 6개 업체는 평균 3~6%를, 라면 4개 업체는 평균 4.6~14.6% 제품 출고가를 인하했고, 제과 3개 업체는 평균 2.9~5.6%, 빙과 2개 업체는 평균 8.2~13.4%, 양산빵 2개 업체는 평균 5.4~6.0%까지 제품 가격을 낮췄습니다. “6·3 선거일까지만 가격 인상 시기를 늦추자”던 얘기가 쏙 들어간 것은 이 무렵입니다.

겉으로는 물가 안정에 동참하고 있지만 식품업체의 속내는 복잡합니다. 여러 가지 가격 인상 요인에 직면해 있어서지요. 가공식품 등의 가격은 국제 원자재 시세, 환율 변동, 물류비, 인건비 등 여러 가지 영향을 받는데 비용 상승은 결국 제품 가격 인상 압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중동전쟁 여파로 지난 7일 서울 평균 휘발윳값이 2000원을 넘어섰다. 연합뉴스

얼마 전 식품업체들은 또다시 가격 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렸습니다. 중동 전쟁 때문입니다. 설마 했던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를 넘나들며 널뛰기를 하고 있습니다.

환율이 오르면 식품업계의 원가 부담은 막대해집니다. 국내 식품제조업체의 국산 원료(밀, 대두, 옥수수, 원당 등) 사용 비중은 32%로 원재료 수입 의존도가 70%에 육박하기 때문이지요. 비싼 값에 원료를 사오는 데다,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국제 유가와 물류비는 급상승했습니다.

실제 중동전쟁에 따른 국제 유가 상승 여파로 전 세계 식량 가격은 두 달 연속 오름세를 보였습니다. 곡물부터 육류, 유지류, 유제품, 설탕까지 5개 주요 품목의 가격이 일제히 뛰면서 밥상물가 상승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지요.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는 지난달 세계식량가격지수가 전월(125.5p) 대비 2.4% 상승한 128.5포인트(p)를 기록했다고 밝혔습니다. 지난해 9월(128.9p) 이후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입니다.

그렇지만 식품업체들의 가격 인상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정부가 여전히 식품사들의 담합, 슈링크플레이션(가격은 그대로 두고 용량을 줄이는 것) 등 행태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삼겹살까지 담합 행위를 조사하는데, 정부 눈 밖에 났다가는 큰일 난다”면서 “가격을 내리지 않고 유지하는 것만도 다행”이라고 했습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누가 가격 인상 총대를 멜 지 눈치를 보던 시절도 지났다”면서 “함부로 인상 카드를 꺼냈다가는 집중포화를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설사 식품업체들이 가격을 인상한다고 하더라도 예전처럼 관행적으로 올리지는 못하지 않을까요. 지금까지는 가격을 인상할 때마다 “원자재값, 인건비, 물류비 등이 올라서”라고 두루뭉술하게 말했지요. 하지만 앞으로는 쌀, 생선, 치킨 등 제품 원물의 구체적인 가격 인상 요인과 근거를 들어야만 정부와 국민을 설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유미 기자 youm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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