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중계 안 할래"…'적자 1000억' 지상파의 속사정 [김소연의 엔터비즈]

오는 6월 개막하는 2026 북중미 월드컵을 두 달여 앞두고 한국 방송계가 전례 없는 중계권 갈등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JTBC가 독점 보유한 월드컵 중계권을 지상파 3사에 재판매하려는 협상이 좀만큼 타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6월 개막을 코앞에 두고도 KBS·MBC·SBS는 사실상 '사지 않겠다'는 태도를 굳히고 있고 JTBC는 애가 타는 형국이다. 이 갈등의 이면에는 지상파의 치열한 생존과 위기 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2026 북중미 월드컵 개막이 80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중계권 재판매를 둘러싼 JTBC와 지상파 3사의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졌다. 지난 3월30일 오전 JTBC와 지상파 3사 사장단은 김종철 방송미디어통신위원장 주재로 중계권 협상 관련 간담회를 가졌지만 합의는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중계에 필요한 물리적인 시간 확보를 위해 3월 말까지는 중계권 재협상 판매가 이뤄져야 한다는 게 방송가의 공통된 견해였다. 이날 간담회는 사실상 마지막 협상 자리였던 셈이다. 하지만 여전히 지상파 3사와 JTBC는 중계권료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JTBC는 2019년 6월 IOC와 2026년부터 2032년까지 동·하계 올림픽 중계권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여기에 2026년부터 2030년까지 FIFA 월드컵까지 중계권을 독점 계약했다. JTBC가 중계권 확보에 투입한 금액은 총 5억달러, 약 7000억원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결정적 이유는 금액 차이다. 앞서 지상파 3사는 이 같은 이유로 올해 2월 있었던 제25회 밀라노 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중계권을 구입하지 않았고 이는 JTBC 단독 방송으로 선보여졌다.
이번 북중미 월드컵 중계권료로 JTBC는 1억2500만달러(한화 약 1900억원)를 지불했다. JTBC는 전체 중계권료에서 디지털 재판매액을 뺀 나머지 중계권료를 JTBC가 속한 중앙그룹과 지상파 3사가 절반씩 나눠 부담하자고 제안했다. JTBC 측은 중계권료의 50%, 지상파 각 사는 약 16.7%를 맡게 된다는 설명이다.
JTBC는 이 조건이 자신들에게도 큰 손해라며 지상파를 설득했다. JTBC 측은 "보편적 시청권에 대한 우려 등을 고려해 큰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내놓은 마지막 안"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지상파 3사의 부담액은 4년 전 카타르 월드컵 대회 때 각 사가 부담했던 액수보다도 훨씬 낮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지상파 측이 제시한 금액은 120억~140억원으로 알려졌다. JTBC의 요구액인 250억원과 비교하면 두 배 가까운 차이가 난다.
여기에 북중미 월드컵 예선에서 보여준 국가대표 축구팀의 실망스러운 경기력 역시 지상파들의 구매 의사를 저하시키고 있다. 월드컵 흥행 가능성이 회의적인 상황에서 적자가 뻔한 중계권을 구매할 이유가 있느냐는 것이다. 한 지상파 관계자는 "중계권을 사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캐스터 섭외 등 인력 배치와 현지 중계진 파견 등 관련 비용에 들어갈 예산이 상당하다"며 "손해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구매를 강행하면 그건 배임이다"고 꼬집었다.
업계에서는 IBC(국제방송센터)와 경기장 중계석 확보를 위해 필요한 시간이 이미 지났다는 점을 고려해 사실상 이번 월드컵도 동계올림픽처럼 JTBC 단독 중계로 치러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지상파 측은 재판매 금액 조정 등 실무 협상 가능성은 열어둬 극적 반전의 여지는 남아 있다.
중계권 협상 과정에서 JTBC와 지상파 3사의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는 점도 극적 반전의 난관으로 꼽힌다. 지상파 3사 측은 마지막 중계권 협상을 위한 간담회를 마친 후 "진전이 없었다"고 밝히며 "이번 중계권 사태를 촉발한 JTBC에 지상파 3사 사장단은 책임 있는 입장 표명을 요구한다"고 했다. 사장단 수준에서 공개적으로 상대방에게 책임 있는 입장 표명을 요구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방송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의 본질이 단순한 가격 협상을 넘어선다고 본다. JTBC가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지상파 중심의 스포츠 중계 질서를 일방적으로 무너뜨렸다는 것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도 "JTBC는 2019년 지상파 3사가 수십 년간 유지해 온 '코리아 풀' 공동협상 체계를 일방적으로 무너뜨렸다"며 "졸속 협상으로 방송 생태계를 혼탁하게 만든 것은 물론 해외 중계권료의 비정상적 폭등을 초래하는 악순환의 단초를 제공했다"고 비판했다.
KBS 소수 노조인 같이(가치)노동조합은 '수신료로 JTBC의 도박빚을 갚을 순 없다'는 제목의 성명서에서 "중계권 재판매 협상은 한마디로 비싸게 계약한 중계권을 같이 떠안자는 취지"라고 주장했다.
내부 직원들까지 나서서 협상 자체에 반대 의사를 표명한 것은 지상파의 경영 위기가 얼마나 절박한지를 방증한다.
지상파 3사의 재정 상황은 최근 몇 년간 빠르게 악화되어 왔다. 방송 광고 시장 규모가 매년 줄어드는 상황에서 KBS는 996억원의 적자, MBC는 276억원의 적자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SBS는 주요 지상파 방송사 중 유일하게 132억원의 흑자를 냈으나 3년 전인 2022년 매출이 처음으로 1조원을 넘어섰던 것과 비교하면 6767억원에 그쳐 크게 줄었다. 2022년에 비해 광고·콘텐츠 수익이 동반 하락하며 사실상 이익을 내지 못하는 구조로 전락했다는 뜻이다.
광고 시장의 장기 침체가 이 위기의 핵심 원인이다. 지상파의 광고 매출은 9273억원으로 2014년 광고 매출 1조8976억원과 비교하면 51.1% 감소했다. 지상파의 광고 시장 점유율은 2014년 57.4%에서 37.1%로 대폭 줄었다. 불과 10년 사이에 광고 수입이 반 토막 난 것이다.
KBS 노조는 "JTBC가 KBS에 제시한 중계권 재판매 대가는 수백억원대인 것으로 전해진다. 당장 지난해 1000억원에 가까운 적자를 낸 회사가 쓸 수 있는 돈이 아니다"며 "올해 관련 예산이 편성돼 있다고 해도 그 액수는 제시액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 방송사당 250억원의 중계권료를 부담하라는 JTBC의 요구는 지상파 입장에서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중계를 하더라도 광고 수익이 비용을 충당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2024 파리 올림픽의 경우 대한민국 선수들의 상당한 메달 레이스로 시청률이 40%까지 상승했음에도 지상파 3사 모두 적자를 면치 못했다는 점이 이를 잘 보여준다. 스포츠 중계가 시청률을 끌어올려도 광고 수익으로 연결되지 않는 구조적 문제가 고착화된 것이다. 중계를 한다 해도 광고를 제대로 못 붙이면 손해만 커지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공포가 방송가에 팽배해진 상황이다.

이미 올해 2월 JTBC가 단독 중계한 밀라노 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에서 이 우려가 현실로 입증됐다. 올림픽 개막식 시청률은 1.8%(닐슨코리아, 유료플랫폼 기준)에 그쳤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당시 개막식 시청률이 11.3%,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의 지상파 3사 합계 시청률이 18%였던 것을 생각하면 이전 올림픽 개막식 시청률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선례가 월드컵에서 반복될 경우 JTBC는 1900억원을 들여 산 중계권에서 막대한 손실을 볼 수 있다.
이번 북중미 월드컵 협상이 사실상 결렬 수순을 밟으면서 시선은 이미 그 이후 대회들로 쏠리고 있다. JTBC는 2026 북중미 월드컵뿐만 아니라 2028 로스앤젤레스 하계올림픽, 2030 알프스 동계올림픽, 2032 브리즈번 하계올림픽 등의 국내 독점 중계권을 보유하고 있다. 이 대회들 모두에서 동일한 갈등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이재명 대통령은 동계올림픽 선수단 격려 오찬에서 "우리 국민 누구나 쉽게 국제대회를 시청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동계올림픽의 보편적 시청권 훼손 논란이 정치권으로까지 번지며 법 개정 논의가 시작된 것이다.
김 위원장은 "특정 방송사의 올림픽 단독 중계는 국민 시청권을 제한하는 행위로 볼 수 있다"며 "방송사 간 중계권 협상에 관한 법 개정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방송법은 시청 가구 90% 이상을 확보한 방송사가 올림픽과 월드컵을 중계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 기준을 '무료 지상파 채널'로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단기적 해법으로는 '코리아 컨소시엄' 구성이 거론된다. 지상파 3사와 JTBC는 2026년 월드컵 이후 개최되는 올림픽 및 월드컵 중계권과 관련해 여타 방송사까지 포함한 '코리아 컨소시엄' 구성을 논의하기로 했다. 지상파만으로는 재원을 감당하기 어려우니 JTBC를 포함한 여러 방송사가 공동으로 협상에 나서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실질적인 해결책이 되려면 각 방송사의 분담금 산정, 중계 분배 방식 등을 둘러싼 또 다른 협상이라는 난관을 넘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단순한 방송사 간 이해관계 충돌을 넘어 한국 미디어 생태계 전체의 구조적 위기를 드러낸다고 진단한다. 일각에서는 올림픽과 월드컵 등 국제 스포츠 행사를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사회 통합 장치'이자 '문화적 공공재'로 규정하며 공영방송인 KBS를 필수 중계 채널로 지정하고 정부의 재판매 협상 개입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곽규태 순천향대 글로벌문화산업학과 교수는 지난달 20일 방미통위 주최 '2026년 북중미 월드컵 중계권 관련 공개 시민간담회'에서 "갈등의 원인은 월드컵 중계권이 매우 비싸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조영신 동국대 교수 역시 이에 동조하며 "2019년 우리 매체 환경과 2026년의 환경은 다르다. 광고 수익이 반 토막이 났다"며 "누가 중계권을 샀어도 2026년도에 적용하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협상 및 재판매 기준의 구체화를 통해 합리적 대가 산정의 표준을 제시해야 한다"고 이전과 달라진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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