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은 어떻게 여성의 전유물이 되었나

김범수 2026. 4. 11.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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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히라요시 히로코 '교양으로서의 패션'
지난달 9일 프랑스 파리 여성 패션 주간에 선보인 샤넬의 기성복. 파리=AFP연합뉴스

시대를 풍미했던 패션 디자이너 코코 샤넬은 "패션은 드레스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도, 거리에도 있으며, 아이디어이자 우리가 사는 방식 그리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 그 자체"라고 했다. 패션에 대한 샤넬의 무한한 경의와 달리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이를 차이를 표현하는 기호로 분석하면서 시스템이 만든 기호 체계에 순응하는 한 가지 방식일 뿐이라고 했다. 어떤 이에게 패션은 개성으로 표현되는 우리 삶 전체를 의미하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계급이나 집단의 표식에 다름 아니다.

'교양으로서의 패션'은 패션문화론을 전공한 히라요시 히로코 일본 고베대 교수가 도쿄대에서 진행했던 패션론 교양 강의를 묶어 낸 책이다. 패션의 역사로 시작해 근대와 현대의 다양한 패션 조류를 설명하고 패션에서 성 정체성이 강조되는 이유를 설명한다. 일본이 서양옷을 받아들이는 과정에 대한 해설도 곁들였다.

흔히 복식으로 뭉뚱그려지는 시대별 옷차림과 달리 일시적인 유행이라는 의미를 담은 패션의 역사가 만들어진 것은 18, 19세기 시민혁명 및 상품경제의 발달과 관련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 전까지 꾸며서 입는 옷이란 주로 부유한 상류 계급의 예의범절을 나타내는 수단이었다. 지금 의미와는 정반대로 관습에 가까운, 변해서는 안 되는 문화로 여겨졌다.

하지만 상업이 발달하고 무엇보다 산업혁명으로 값싼 옷이 대량으로 유통되면서 상류층의 전유물이던 옷 문화가 다른 계층으로까지 확산될 환경이 만들어졌다. 자유와 평등을 앞세운 프랑스 혁명 이후 시민에게 특정한 복장을 강요할 수 없다는 법까지 생기면서 패션을 위한 제도적 토대까지 마련됐다. 나아가 옷을 입는 습관이나 기호가 점점 짧아지고 정신없이 바뀌면서 옷은 전통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수단으로 변했다. 재단을 위한 서적, 패션지 같은 매체는 이를 확산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근대 이후 패션이 여성의 전유물로 인식되는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근대는 가족 단위 사회이고 여성은 가정을 지키고 집안의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는 역할이 컸다. 그 전까지 귀족이 했던 옷치장이 근대의 여성에게로 계승된 셈이다. 하지만 19세기의 패션은 아름다움이나 개성의 표현이라기보다 여성을 속박하는 측면이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허리를 가늘어 보이게 하는 속옷 코르셋과 드레스를 풍성하게 만들기 위한 크리놀린이었다. 기능성과 합리성을 강조한 20세기 패션은 이런 구속을 해방시키는 과정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코르셋을 추방한 마들렌 비오네, 칼로 자매, 샤넬이 대표적이다.

저자는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디자이너로 샤넬을 꼽는다. 샤넬은 속옷이나 노동복에 사용된 저지를 가지고 남성복 슈트를 재해석해 활동성을 강조한 투피스 여성복을 선보여 인기를 끌었다. 패션지 보그는 샤넬을 여성의 신체 해방, 권리 획득과 연관 지으며 미국 패션의 기원으로 평가할 정도였다.

하지만 잘나가던 시절 파업에 충격받아 직원을 모두 해고하고 아예 사업을 접어버린 샤넬처럼 패션업계는 오랫동안 열악한 노동 환경에 무지했다. 산업혁명으로 가사노동에서 해방된 여성이 농촌에서 도시로 와 되풀이하던 봉제 노동은 패션의 물적 토대나 마찬가지다. 20세기 초반 미국 최대의 산업재해로 꼽히는 뉴욕 맨해튼 트라이앵글 셔츠웨이스트 공장 화재의 희생자는 이민 온 유대인, 이탈리아인 여성 봉제 노동자였다. 100년 뒤 방글라데시에서는 봉제 공장 붕괴로 1,100명 이상 숨졌다.

이 사건으로 패션의 화려함에 가려진 패스트패션의 열악한 노동 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생겨났지만 사정이 얼마나 나아졌는지는 의문이다. "세계 의류 수요를 충족하도록 임금이 낮은 지역의 사람이 착취적인 노동에 시달리는 것"이라며 패스트패션 기업에만 책임을 물을 것이 아니라 이를 구입함으로써 이런 기업이 존재한다는 저자의 일침을 곱씹게 된다.

교양으로서의 패션·히라요시 히로코 지음·이현욱 옮김·서해문집 발행·319쪽·1만8,800원

김범수 선임기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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