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건국 250주년 특집③_이리 운하(上)] 초강대국 미국 이끈 원천적 물길이자 초창기 ‘교통 혁명’

최하경 KHS한국전통문화진흥원 원장 2026. 4. 11.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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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 뉴욕의 요충지 올버니에서 서부 이리호 연결한 대규모 프로젝트
‘클린턴의 도랑’이란 비아냥 극복하고 기공식 8년 만에 584km 길이 운하 완공
미국 내륙의 자원, 뉴욕항 통해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었던 ‘경제 혈맥’ 평가

(시사저널=최하경 KHS한국전통문화진흥원 원장)

올해는 미국 건국 250주년이 되는 해다. 독립전쟁에서 승리하고 지금의 초강대국이 되기까지 미국은 어떤 길을 걸었을까. 미국의 건국정신이 살아있는 '마운트 버넌'에서부터 서부 개척시대의 성공을 이끈 '뉴욕 이리 운하', 미국 기부문화의 효시 격인 '록펠러센터', 미국인들의 자연 경외사상을 상징하는 '나이아가라 폭포' 등 비밀은 곳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시사저널은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이 놓은 초석 위에 쌓아 올려진 미국의 성공 스토리와 역사의 이면을 10회에 걸쳐 촘촘하게 복기해 본다. [편집자 주]

시라쿠스 이리 운하 박물관에 전시된 운하 설명문. ⓒ최하경

뉴욕 주 전체를 완주해 보기로 마음먹고 여행길에 올랐다. 시라쿠스 근방을 지나다 '이리 운하 박물관(Erie Canal Museum)'이라는 안내판을 보았다. 뉴욕에 웬 운하?' 호기심에 들렀다가 깜짝 놀랐다. 미국을 좀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지금의 초강대국 미국을 만드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이리 운하를 아직까지 모르고 있었다는 게 부끄러울 정도였다.

박물관에는 운하의 역사와 건설 과정, 사회·경제적 영향 등을 소개한 기록이나 자료들이 상세한 안내와 함께 전시돼 있었다. 과거에는 애팔래치아 산맥이 서부(오대호 지역)와 동부 해안(뉴욕)의 물류나 인적 교류를 가로막는 장애물이었다.

뉴욕 치테낭고 지역에 있는 이리 운하 도크 모습. ⓒ

뉴욕에 웬 운하?

당시 뉴욕 주지사였던 디 클린턴(DeWitt Clinton)은 이리호에서 허드슨강 상류를 연결해 서쪽의 물품을 뉴욕항이 있는 동부로 값싸고 신속하게 운송하고, 동부의 공산품들을 서부로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인공 수로 건설을 구상했다. 미국 역사 초창기의 가장 돋보이는 '교통 혁명'으로 성공할 경우 미국 내륙의 광활한 시장과 자원을 독점적으로 확보하고, 뉴욕을 미국의 무역 수도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세인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초창기만 해도 'Clinton's Ditch(클린턴의 도랑)'이라거나 'Clinton's Folly(클린턴의 바보짓)'이란 비아냥만 받았다. 반대파들은 "세상에서 가장 긴 도랑을 파서 주 예산을 낭비한다"고 조롱했다. 하지만 클린턴은 결코 삽을 놓지 않았다. 뚝심 있게 계획을 밀고 나갔다. 결국 1817년 7월4일 미국 독립기념일에 운하 프로젝트 기공식이 열렸다.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에피소드가 있었다. 당시 미국에는 전문 토목 엔지니어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어쩔 수 없이 아마추어 기술자들이 500개가 넘는 수문(Locks)과 수로를 설계하는 방식으로 산맥의 고도 차이를 극복했다. 공사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건설 현장은 주로 북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노동자로 채용됐다. 불행하게도 몬테주마 습지 횡단 작업 중 말라리아 병이 퍼지면서 1000여 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이리 운하에서 노새가 배를 끌고 있는 모습. ⓒ최하경

운하 개통식에 울려 퍼진 3시간의 대포 소리  

이런 난관을 극복하고 뉴욕의 요충지인 올버니에서 시작해 서쪽 이리호까지 연결됐기 때문에 이리 운하는 오늘날 미국을 만든 가장 중요한 '원천적 물길'로 불리고 있다. 이리 운하는 1825년 10월25일, 그러니까 기공 후 8년 만에 완공식을 가졌다. 길이 584km, 폭 12m, 깊이 1.2m로 갑문은 83개에 달한다. 584km 길이의 이 프로젝트는 연방 정부의 지원 없이 순전히 뉴욕 주 정부의 자금으로 진행됐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고 있다.

덕분에 뉴욕 역시 'Empire State(황제의 주)' 반열에 올랐다. 1825년 10월, 마침내 운하가 전 구간 개통되자 클린턴은 비웃음을 역사적인 승리로 바꿀 기막힌 이벤트를 기획했다. 완공식이 열리던 날 운하의 서쪽 끝 버팔로에서 클린턴 주지사가 '세네카 치프(Seneca Chief)'호에 오르자, 미리 배치된 대포들이 차례로 발사됐다. 이 대포 소리는 운하를 따라 올버니를 거쳐 뉴욕시까지 약 800km를 연쇄적으로 울려 퍼졌다. 다시 뉴욕에서 버팔로로 화답하는 축포가 돌아가는 데에도 90분이 걸렸다. 총 3시간 만에 대륙 양단이 소리로 연결되었다.

그것은 한 정치인의 승전보이자 잠자던 아메리카 대륙의 심장을 깨우는 거대한 고동소리였다. 한편으로 전신(telegraph)이 없던 시절 단 90분 만에 승전보를 알린 인류 역사상 가장 긴 통신 체계 중 하나이기도 했다.

치테낭고 운하 박물관의에서 촬영한 필자 모습

이리호와 대서양의 결혼식 이벤트도

준공식의 마지막 여정으로 ​뉴욕항에 도착한 클린턴 주지사는 미리 준비해온 특별한 물통을 꺼냈다. 그 안에는 이리호에서 직접 떠온 민물이 담겨 있었다. 클린턴은 수많은 시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 민물을 뉴욕 앞바다인 대서양에 쏟아부었다.

이 상징적인 행위는 '미국 내륙의 거대한 물줄기가 이제 세계의 대양과 영원히 결합했다'는 일종의 선언식이었다. 이 물줄기는 단순한 운하가 아니라 대륙의 운명을 바꾼 거대한 승리의 함성이었고, 고립돼 있던 미국 내륙의 자원이 뉴욕을 통해 세계로 뻗어나가는 경제적 혈맥이 완성됐음을 알린 역사적 이벤트였던 것이다.(이리 운하(下)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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