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으로 포장된 미성숙한 팬심, 함께한 업적 훼손 말아야

허윤수 2026. 4. 11. 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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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부천, 과한 팬심으로 눈총
내 팀 향한 응원과 열정, 경기장 안에서 끝내야

[이데일리 스타in 허윤수 기자] 프로축구 인천 유나이티드와 부천FC가 지나친 열정으로 눈총받은 가운데 진짜 구단을 위해서라면 더 성숙한 응원 문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인천 유나이티드 선수들과 팬들의 모습.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인천은 지난 5일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은행 K리그1 2026 6라운드 안방 경기에서 김천 상무를 2-1로 제압했다.

2연승과 함께 시즌 첫 홈 경기 승리를 해낸 인천이지만 결과 외적인 요소가 부각됐다. 김천 수문장 백종범을 향한 인천 서포터스 일부의 지나친 비판 때문이었다.

양측의 갈등은 2024년 5월로 거슬러 간다. 백종범은 원소속팀 FC서울 일원으로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을 찾아 ‘경인 더비’ 2-1 승리를 이끌었다. 백종범은 승리가 확정되자 인천 서포터스 방향으로 세리머니를 펼쳤고 이에 자극받은 일부 팬들이 다량의 물병을 투척했다. 백종범은 세리머니 행위에 대해 경기 중 자신뿐만 아니라 부모님을 향한 욕설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후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인천 구단에 홈 5경기 응원석 폐쇄와 제재금 2000만 원을 부과했다. 백종범도 700만 원의 제재금을 받았다. 물병 투척 사건 여파 속 인천은 창단 첫 강등의 아픔을 맛봤다.

2024년 5월 11일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은행 K리그1 2024 12라운드에서 일부 인천 서포터스가 경기장으로 물병을 투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승격 후 백종범을 다시 만난 인천 팬들은 경기 내내 백종범이 공을 잡을 때마다 야유 세례를 퍼부었다. 물론 경기 중 상대 선수를 향한 야유가 잘못됐다는 건 아니다. 다만 종료 휘슬이 울린 뒤 인천 팬들을 향해 인사하는 백종범을 향해서도 원소속팀 FC서울을 비하하는 단어와 함께 거친 말을 쏟아내는 행위가 아쉬웠다.

인천 팬 입장에서는 물병 투척 사건이 백종범으로 인해 벌어졌다고 판단해 원망스러울 순 있다. 하지만 냉정히 바라보면 물병을 던진 건 인천 팬들이다. 축구계를 떠들썩하게 한 조남돈 연맹 상벌위원장의 디그니티(존엄) 발언에도 인천 측에 더 큰 징계가 내려진 배경이다.

경기 후 “인천 팬들에게는 제가 미움 살 행동을 했기에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 백종범의 인터뷰는 인천 팬들과 더 상반되는 모습을 연출했다. 다수 축구 팬도 “부끄럽다”, “백종범이 성숙했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제주SK와 부천FC의 연고 더비 경기 모습.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전날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제주SK와 부천FC의 연고 더비에서도 아쉬운 장면이 연출됐다. 연고 이전으로 얽힌 양 팀은 이날 1부리그에서 사상 첫 맞대결을 펼쳤고, 제주가 1-0으로 이겼다.

역사적인 경기지만 일부 부천 팬들은 경기 시설물에 붙은 제주SK 모기업 로고에 다량의 절연 테이프를 부착했다. 또 곳곳에 제주 엠블럼에 소변을 보는 스티커를 붙이며 시설물을 훼손했다. 제주 구단 측에 따르면 경기 당일에 수거된 스티커만 40~50장에 이른다. 하지만 어느 곳에 더 붙어 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고도 덧붙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제주 관계자에 따르면 경기 후 몇몇 부천 팬이 제주 구단 용품 매장 문을 마구 두드렸고, 이유를 물으니 “그냥 화나서요”라고 답했다. 해당 관계자는 “팬들 사이에서는 부천 팬들이 위협했다는 말까지 나오기도 했는데 당사자에게 들어보니 그러진 않았고 약간 조롱하듯이 말하며 지나갔다고 했다”고 전했다.

부천FC 선수단과 팬들의 모습.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이미 지난달 15일 울산HD와 안방 경기에서 상대 팀을 향한 일부 관중의 비방과 이물질 투척으로 제재금 300만 원 징계를 받은 부천이기에 씁쓸함은 더 컸다.

인천과 부천 팬들의 응원 열정은 리그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뜨겁다. 이는 선수단에도 큰 힘이 되고 든든한 지원군과도 다름없다.

그동안 걸어온 길도 엄청나다. 시민구단으로 2005년 K리그1과 2015년 코리아컵(구 FA컵)에서 각각 준우승을 해냈다. 지난 시즌에는 K리그2에서 챔피언 자리에 오르며 한 시즌 만에 1부리그 무대로 복귀했다.

지난해 K리그2 우승을 차지한 인천 유나이티드.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부천은 지난 시즌 K리그2 승강 PO를 거쳐 창단 첫 1부리그 승격의 꿈을 이뤘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부천 역시 시민의 힘으로 탄생한 구단이다. 2006년 부천SK가 제주로 연고지를 옮기자 이듬해 서포터스 주도로 창단됐다. 2008년부터 K3리그에 참가했고 지난 시즌 K리그2에서 승강 플레이오프 끝에 승격하며 꿈을 이뤘다.

올 시즌 K리그1 무대에서도 경쟁력을 보여주고 있다. 명장 이영민 감독 지도 아래 개막전에서 디펜딩 챔피언 전북 현대를 잡아냈다. 이어진 2라운드에서는 지난해 2위 대전하나시티즌을 상대로 승리를 눈앞에 뒀으나 비기며 돌풍의 팀으로 자리 잡았다.

인천과 부천의 역사와 성과는 선수단, 코치진, 프런트, 스태프와 팬들이 함께 만들어냈다. 팬들이 없었다면 이룰 수 없는 성과다. 선수들을 한 발 더 뛰게 하는 응원은 좋지만, 종료 휘슬과 함께 멈출 줄도 알아야 한다. 열정으로 포장된 지나친 팬심은 구단과 선수들을 어려움에 빠뜨릴 수 있다.

인천 유나이티드.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부천FC.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K리그1을 대표하는 ‘슈퍼 매치’를 치렀던 FC서울 관계자는 과거 팬들의 열정과 냉정 사이에 이런 말을 남겼다.

“전쟁은 경기장 안에서 축구를 통해서만 하면 된다.”

허윤수 (yunsport@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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