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법원의 ‘특별한’ 판사들

모성준 고법판사(사법연수원 교수) 2026. 4. 11. 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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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홍콩은 아시아의 자유민주주의를 상징하는 등대로 불렸고, 홍콩 법원은 아시아에서 가장 신뢰받는 법원 중 하나였다. 영국법의 전통을 이어받아 사법부 독립을 유지하고 있던 홍콩 법원에서는 영연방 출신의 베테랑 판사들이 탁월한 판결과 공정한 분쟁 해결로 명성을 떨쳤다. 이에 수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아시아 금융 메카인 홍콩에 둥지를 틀었고, 홍콩은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아시아의 대중문화를 이끌며 번영을 누렸다.

1997년 영국이 중국에 홍콩을 반환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당초 중국은 중영공동선언을 통해 향후 50년간 홍콩의 체제를 유지하는 일국양제(一國兩制) 원칙을 천명하고, '외교와 국방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고도의 자치를 보장한다(港人治港)'고 약속했다. 하지만 양제(兩制, Two Systems)를 유지하겠다는 덩샤오핑의 약속과 달리, 중국 정부는 일국(一國, One Country)을 완성하는 데 집중했다. 2003년 홍콩 정부는 반국가 활동을 처벌하는 국가보안법 제정을 시도했으나, 50만 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자 결국 백기를 들었다. 하지만 2014년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가 친중 성향 선거위원회의 선정 절차를 통과한 인물 중에서 행정장관을 뽑겠다는 선거제도를 들고 나왔을 때는 사정이 달랐다. 분노한 시민들이 79일간 도심을 점거하는 '우산혁명'을 일으켰음에도, 중국 정부는 끝내 그 뜻을 관철하고 홍콩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 또한 2019년 중국 정부가 홍콩 정부를 상대로 범죄자를 중국 본토로 압송할 수 있도록 한 범죄인 인도법을 제정토록 압박할 때에도 수백만 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섰지만, 중국 정부는 서구의 사주를 받은 테러행위로 규정하며 탄압에 나섰다. 영국이 99년의 조차 기간이 종료된 후 홍콩을 반환하며 중국과의 약속을 지켰던 반면, 중국은 50년간 홍콩의 자치를 보장하겠다던 합의를 22년 만에 저버린 셈이었다.

나아가 2020년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는 홍콩 입법회를 거치지 않고 직접 홍콩 국가보안법을 제정했다. 이후 국가 분열이나 외국 세력과의 결탁 혐의로 언론인과 정치인들이 대거 구금되었고, 빈과일보 등 다수 언론이 폐간되었다. 교육 현장에서 애국주의 교육이 강화되었고, 선거제도는 '애국자'만 출마할 수 있는 구조로 재편되었다. 가장 극적인 변화는 법원에서 일어났다. 홍콩 행정장관이 매년 국가보안법 사건을 심리할 판사, 즉 '지정법관'을 직접 선정하도록 한 것이다. 당시 제프리 마(Geoffrey Ma) 종심법원장은 사법부 독립 훼손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으나, 홍콩 법원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데 앞장설 특별한 판사들이 필요했던 중국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간 홍콩 법원의 신뢰를 상징했던 영연방 출신 판사들은 법치주의와 사법독립의 훼손을 비판하면서 잇따라 사퇴했다. 이후 그들의 빈자리는 중국에 대한 충성서약을 마친 지정법관들이 조용히 채워나갔다.

급기야 2025년 12월 홍콩 법원의 지정법관들은 언론인 지미 라이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서 유죄를 선고하기에 이르렀다. 어린 시절 중국을 탈출해 홍콩으로 이주했을 때 '자유의 공기를 마시고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찼었다'고 말한 바 있던 그는, 의류 브랜드 지오다노를 창업하여 성공을 거둔 뒤 1995년 빈과일보를 창간했다. 이후 홍콩의 대표 언론으로 자리매김한 빈과일보는 중국 정부의 시위 진압을 비판하고 미국 정치인과 접촉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상 제재를 받다 2021년 강제 폐간되었다.

그리고 지난 2월 바로 그 지정법관들은 고령의 지미 라이에게 사실상 종신형이나 다름없는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이로써 홍콩 법원은 중국의 지방법원 중 하나로 전락했고, 과거 홍콩의 등대 불빛 또한 사라졌음이 분명해졌다. 과거 찬란했던 홍콩을 기억하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홍콩의 몰락은 법원의 몰락 없이는 완성될 수 없었고, 법원의 몰락은 권력에 충성을 맹세한 특별한 판사들 없이는 결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모성준 고법판사(사법연수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