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님, 저는 생존입니까?

김건우 변호사(대한법률구조공단) 2026. 4. 1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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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요리사2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탈락자들의 반응이었다.

탈락자들이 "왜 떨어졌는지"를 대체로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흑백요리사2의 탈락자들이 억울해하지 않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흑백요리사2는 판결문을 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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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요리사2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탈락자들의 반응이었다. 대부분 담담했고, 크게 억울해하지 않았다. 아쉬움은 있었지만 판정에 대한 반발은 없다시피했다. 경쟁과 탈락이 필연인 프로그램에서는 꽤 이례적인 분위기였다.

왜 그랬을까. 공정성 논쟁이 없어서일까? 사실 이 프로그램이 특별히 더 공정했기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심사에는 주관이 개입되고, 시간은 촉박하며, 운도 작용한다. 다만 이 프로그램에는 하나 분명한 특징이 있었다. 탈락자들이 "왜 떨어졌는지"를 대체로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심사의 기준은 미리 제시됐고, 상세한 설명을 포함한 판정 과정은 공개됐다. 결과를 바꿀 수는 없었지만, 그 결과가 나온 이유를 아무것도 모른 채 추측할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참가자들은 판정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수긍은 할 수 있었다.

이 장면을 보며 법률가로서 자연스럽게 떠오른 법률이 있다. 바로 소액사건심판법이다. 소액사건에서는 판결 이유의 기재를 생략할 수 있다(소액사건심판법 제11조의2 제3항). 많은 수의 소액사건을 신속히 해결하고자 둔 규정으로, 소액사건이 1심에서 끝나기만 한다면 그야말로 입법목적에 부합하는 제도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든다. 이유를 기재하지 않아도 되지만, 짧게라도 기재해준다면 오히려 항소는 줄어들지 않을까. 패소 그 자체보다 사람을 더 힘들게 하는 건 왜 패소했는지 알 수 없다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흑백요리사2 포스터. 넷플릭스

흑백요리사2의 탈락자들이 억울해하지 않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심사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심사의 기준과 판단 이유는 납득할 수 있을 정도의 설명이 이루어졌다. 설명은 결과를 바꾸지는 못하지만, 결과를 받아들이는 태도는 바꾼다.

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법은 항상 모두를 만족시키는 결론을 내릴 수 없다. 그래서 절차를 만들고, 기준을 세우고, 이유를 설명하려 한다. 판결 이유는 비소액 사건의 판결문을 구성하는 필수요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분쟁을 마무리하기 위한 설득의 언어다.

소액사건심판법이 판결 이유의 기재를 생략할 수 있다는 규정을 둔 것은, 법이 효율을 선택한 결과다. 다만 효율과 납득이 항상 같은 방향을 보지는 않는다. 설명을 생략하면 절차는 빨라질 수 있지만, 마음속 분쟁은 끝나지 않을 수 있고, 불복으로 이어져 결국 당초 선택했던 효율까지 도모하지 못하게 된다.

흑백요리사2는 판결문을 쓰지 않는다. 대신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충분히 보여준다. 제한된 시간과 동일한 조건, 판단의 기준과 방향이 공개된 상태에서 결과가 내려진다. 그 장면을 보고 있으면, 법정에서 판결을 기다리는 당사자들이 마음속으로 반복해왔을 질문 하나가 겹쳐 떠오른다.

"판사님, 저는 생존입니까?"

어쩌면 소액사건심판법도 비슷한 질문을 받고 있는지 모른다. 이유를 쓰지 않아도 되는 순간에도, 우리는 정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지. 분쟁을 줄이는 것은 제도를 단순화하는 일이 아니라, 납득을 설계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아직 나아갈 길이 남아 있는 소액사건심판법에게는, 생존 대신 '보류'를 드리고 싶다.

김건우 변호사(대한법률구조공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