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서 최악 상황 벌어지면 스태그플레이션 배제 못해”

김신영 기자 2026. 4. 11.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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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퇴임 앞둔 이창용 한은총재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0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공동취재단

4년 임기를 오는 20일 마무리하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이창용 패션’의 상징인 화려한 넥타이를 매고 자신이 주재하는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에 10일 참석했다. 한글 자음·모음이 적힌 금색 넥타이었다. 이 총재는 금통위 후 기자간담회에서 대체로 밝은 분위기로 답변을 하면서도 2월 말 발발한 중동 전쟁으로 원화 환율이 다시 반등한 데 대한 아쉬움을 여러 차례 드러냈다.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와 관련해선 “지금으로선 가능성이 작다”면서도 “미래에 에너지 기반 시설이 파괴되고 영향이 장기화하는 등 최악의 시나리오로 간다면 스태그플레이션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부인하긴 어렵다”고 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0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한글 자음과 모음이 새겨진 금색 넥타이를 매고 발언하는 모습. /뉴시스, 사진공동취재단

연초 달러당 1420원대까지 내려갔던 원화 환율은 중동 전쟁으로 한때 1500원 선을 넘어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으로 올라갔다. 휴전 소식에 다소 진정됐지만 10일 달러당 1482.5원으로 주간 거래를 마치는 등 여전히 높다. 이 총재는 “그간 금리 정책에 대한 후회는 없지만 환율이 높은 상태로 후임자에게 자리를 넘겨주게 된 점은 아쉽다”며 “환율 예측이 매우 어려운 상황으로, 중동 사태가 안정될 경우 환율이 빠르게 올랐던 것과 비슷하게 빨리 내려올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그는 “지난 2월 말 환율이 다소 내려와 외환 시장 대응에 수고하는 국제국 직원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들어오는데 바로 그때 이란 전쟁이 터졌다”면서 “트럼프가 도와주지 않아서…”라며 웃기도 했다.

이 총재는 중동 전쟁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보다 더 큰 충격을 한국 경제에 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는 “2022년엔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가 높은 유럽 지역이 충격을 많이 받은 반면 이번엔 중동산 원유 수입 비율이 큰 한국·일본·대만 등 아시아 국가들이 영향을 더 크게 받는 중”이라며 “한국의 환율·물가가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고 했다.

2022년 4월 취임한 이 총재는 글로벌 인플레이션, 미·중 무역 갈등, 한국의 계엄과 고환율 등 경제 불안 상황에 적극 대응해 왔다고 평가된다. 다만 저출산·고령화, 입시 제도, 기후 변화, 연명 치료 등 사회의 다양한 어젠다에 대해 한은이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목소리를 내도록 한 이른바 ‘구조 개혁 시리즈’에 대해선 한은 역할을 역동적으로 확대했다는 평가와 통화 정책에 더 집중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엇갈린다.

퇴임 소회를 묻는 질문에 이 총재는 “그동안 교수와 공직자로서 오랜 기간 생활을 해왔는데 임기를 마치고 무슨 일을 할지 기대가 많이 된다”고 했다. 그는 사석에서 지금까지 해보지 않은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싶다는 뜻도 내비쳤다고 알려졌다. 지난 4년에 대한 평가에 대해선 “퇴임 전 별도 간담회를 통해 다시 밝히겠다”면서도 “고환율과 관련해 ‘서학개미(한국인 해외 투자자)’ 탓을 했다는 비난을 많이 받았는데 당시 상황을 설명했을 뿐 서학개미 탓한 것이 절대, 절대 아니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정부의 추가경정예산에 대해선 “이번 추경은 부채가 아니라 초과 세수를 활용했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본다”면서도 “내역 중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4조8000억원이 지원되는데 이런 경직적인 교부금 지원이 바람직한지에 대해선 다시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쓴소리’를 했다. 그는 “과거 한국 교육이나 인재 양성을 위해선 교부금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저출산으로 학생 수가 주는 가운데 노인 빈곤 등 다른 문제가 많아진 상황”이라며 “세금 일부를 기계적으로 교육 예산에 배정하는 제도가 바람직한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편 이 총재는 후임인 신현송 총재 후보자의 보유 자산 중 절반 이상이 외화 자산으로 구성돼 외환 당국 책임자로서 이해 상충 소지가 있다는 일각의 논란에 대해 ‘과도한 우려’라고 했다. 그는 “국민 정서에 어긋나는 부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해외에 오래 산 인재를 모셔오는 과정에 너무 크게 우려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신 후보자의 애국심이 자산보다 크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했다. 신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오는 15일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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