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섬, 당내 지지 1위 굳혔지만…‘반트럼프’ 빼면 실적 없어

남윤호 2026. 4. 11.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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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호의 아메리칸 오딧세이] 미국 민주당 불안한 ‘캘리포니아 대망론’
지난 2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 출판기념회. 그는 민주당 차기 대권 1순위로 부상했다. [AFP=연합뉴스]
과거 한국 대선에선 지역 이름을 붙인 대망론이 나오곤 했다. 호남 대망론, 충청 대망론처럼 말이다. 지역의 권력 욕망이 담긴 말이다. 이런 게 미국에도 있다면, 지금은 캘리포니아 차례다.

2028년 대선을 앞두고 캘리포니아 집권당인 민주당과 그에 동조하는 언론이 앞장서고 있다. 1850년 31번째 주로 편입된 뒤 아직 캘리포니아 출신 민주당 대통령을 배출하지 못했다는 소외감이 묻어난다. 공화당 출신으론 허버트 후버(1928년 당선), 리처드 닉슨(1968, 72년), 로널드 레이건(1980, 84년)이 나왔다. 셋 중에 캘리포니아가 고향인 이는 닉슨뿐이다. 레이건은 일리노이, 후버는 아이오와 출신이면서 캘리포니아를 정치적 기반으로 뒀다.

지금은 캘리포니아가 블루 스테이트의 대표지만 1990년대 이전엔 달랐다. 백인 중산층이 두터운 공화당 텃밭이었다. 20세기 100년간 25회의 대선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의 전적은 14대 10이었다. 1912년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진보당 후보로 양당을 누르고 승리한 적도 있다.

공화당의 마지막 승리는 1988년 조지 H W 부시가 당선했을 때였다. 그 뒤 2024년까지 9번의 대선을 모두 민주당이 이겼다. 중남미 이민의 급증, 공화당 주지사(피트 윌슨)의 반이민 정책의 역풍, 보수층 백인의 이탈 등이 겹쳐 정치 성향이 변한 것이다. 아널드 슈워제네거 지사가 퇴임한 2012년부터 캘리포니아 민주당은 견제받지 않는 초다수파 권력으로 주의회와 주 정부를 장악했다.

1988년 이후 민주당이 9번 승리한 성지
카멀라 해리스 전 미국 부통령이 최근 펴낸 『107일』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현재 캘리포니아 민주당의 간판 주자는 개빈 뉴섬(58) 주지사와 카멀라 해리스(61) 전 부통령이다. 둘 다 아직 공식 선언을 하지 않았을 뿐, 누가 봐도 출마를 염두에 둔 행보를 하고 있다. 둘은 오랫동안 서로를 의식하며 경쟁해왔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해리스는 지방검사로, 뉴섬은 시장으로 일했다. 2015년 바바라박서 상원의원의 은퇴로 생긴 공석에 해리스는 도전해 상원에 입성했고, 뉴섬은 포기하고 2018년 지사 선거에 나갔다. 겉으로는 원만하다. 서로 지원유세도 해준다. 그렇다고 사적으로 깊은 신뢰관계라고 보긴 어렵다. 얼마 전 해리스와의 사이를 묻는 CNN의 질문에 뉴섬은 “그는 LA, 나는 샌프란시스코에 살아 거리가 좀 있다”고 에둘러 말했다.

당내에선 뉴섬 대세론이 점차 자리잡는 양상이다. 불과 1년 전 당내 지지율이 한 자릿 수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확실한 선두주자다. 3월 중순 버클리대 정부연구소(IGS) 조사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민주당원의 28%가 뉴섬을 차기 대선 후보 1위로 꼽았다. 해리스는 9%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하원의원, 피트 부티지지 전 교통부 장관에 이어 4위였다. 민주당 경선 승리 확률에 베팅하는 예측 사이트 프리딕트잇에서도 뉴섬이 28%로 1위를 달리고 있다. 해리스는 6일 기준 7%로 공동 5위다. 해리스에겐 홈그라운드의 저조한 지지율뿐 아니라 유권자들의 피로감도 큰 부담이다. 지난해 8월 IGS의 설문에선 해리스의 재출마에 반대한다는 주민이 63%나 됐다.

뉴섬의 최대 강점은 메시지 전달력이다. 그때그때 정치적으로나 정서적으로 가장 효과적인 메시지를, 듣고 싶어하는 청중의 귀에 꽂아주는 재능이 있다. 그가 ‘메시지 기계’로 통하는 이유다. 진보 진영의 반트럼프 정서를 의식해 1기 트럼프 정부 때부터 가시 돋친 비난을 쏟아냈다. 최근엔 SNS에 욕설도 섞는 등 더 공격적으로 나섰다. 반트럼프 진영의 총사령관을 자임하는 그는 민주당 지지층이 좋아할 말을 정확히 알고 있다.

그의 메시지가 진영 내부에 최적화돼 있다는 건 외연 확장에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이게 자기만족일 수는 있어도 승리의 전략이 되긴 어렵다. 캘리포니아에선 유효하지만, 전국적으로 나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반트럼프 말고 뭐가 있느냐는 물음엔 답이 궁해진다.

‘뉴섬표 정책’의 저조한 실적을 보면 그 한계가 드러난다. 최대 현안인 노숙자 대책에 그는 무려 300억 달러 넘게 퍼붓고도 ‘노숙자 천국’의 오명을 벗지 못했다. 그가 내세운 공공사업들은 세금 먹는 하마가 됐다. 남북을 잇는 101번 하이웨이에 야생동물 통로를 건설한다며 2022년부터 1억1400만 달러를 들였지만 시한(2025년)을 넘기고도 미완성 상태다. 또 지난 4년간 2억3600만 달러를 쓴 중증 정신질환자 치료 지원 사업은 겨우 22명을 치료해주는 데 머물고 있다.

비효율적인 사업에 예산을 뭉텅뭉텅 낭비해 왔으니 재정이 견뎌낼 리 없다. 전임자 제리 브라운이 넘겨준 흑자재정은 뉴섬 재임 중 적자로 변했다. 주의회 입법분석국(LAO)에 따르면 재정 개혁을 하지 않으면 향후 수년간 매년 200억~350억 달러의 적자가 예상된다.

뉴섬은 2022년 재정 추계에 결정적인 오류를 저질렀다. 코로나19 사태 직후 소득세 수입이 반짝 증가했을 때다. 그 해 3000억 달러 이상의 대형 예산을 편성하고 975억 달러의 흑자를 선언했다. “미국 역사상 어떤 주도 이만한 흑자를 낸 적이 없다”는 자랑도 했다. 실제 세수는 예상을 크게 밑돌았고, 결국 2028년까지 1650억 달러의 세수가 부족해진다는 LAO 전망이 나왔다. 과대 추정치를 기반으로 이미 갖가지 복지 지출을 늘려놓은 뒤였다. 주 정부는 적자를 메우려 긴급준비금을 헐어 썼다. 캘리포니아의 긴급준비금은 2022년 760억 달러로 전국 최대 규모였으나 지금은 약 200억 달러로 감소했다. 있지도 않은 흑자 자랑을 하다 비상금으로 버티게 됐는데도, 책임지는 모습이 없다.

재정 압박 탓에 정작 필요한 사업엔 손을 못 대고 있다. 산불이 연례행사처럼 일어나지만 27억 달러 규모의 물 저장시설 건설은 계속 미뤄지고 있다. 새크라멘토 강물을 남가주로 흘려보내는 터널 건설도 보류 중이다.

LA 코리아타운의 셸 주유소의 휘발유 가격표. 규제와 세금 탓에 캘리포니아의 기름값은 전국에서 가장 비싸고, LA가 최고가다. 김상진 기자
에너지 정책도 논란이다. 세금과 규제 때문에 비싸진 기름값은 악명 높다. 산유주인데도 유가는 전국 최고다. 요즘 LA의 주유소 휘발유 값이 대개 갤런 당 6달러 이상이니, 리터 당 2500원쯤이다. 뉴섬은 그 원인을 트럼프의 고관세와 이란 전쟁으로 돌리지만, 바이든 정부 시절에도 비싸긴 매한가지였다. 또 섣부른 탈원전으로 전력의 20~30%를 수입하고 있다. 주로 워싱턴주와 애리조나주에서 들여오는데, 그중 11%가 원전에서 나온다.

후임 주지사 선거에 나선 민주당 후보들도 지나친 진보 정책이 생활고를 악화시켰다고 비판한다. 뉴섬의 노선을 그대로 잇는다면 선거에 불리하다는 게 그들 판단이다. 진보 매체 애틀랜틱은 최근 “뉴섬의 실적은 통치능력에 심각한 의문을 던지며, 상대의 공격에 무한대의 취약점을 노출한다”고 했다.

‘망가진 캘리포니아’ 이미지가 큰 부담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숫자는 점점 더 버티기 어려워지고 있다. 리서치 업체 고뱅크레이트에 따르면 100달러의 구매력이 캘리포니아에선 87달러 남짓이다. 전국 최하위다. 기름값과 생활물가가 비싼 탓이다. 이사트럭 대여업체 유홀이 매년 인구 유입과 유출 비율을 계산한 결과 캘리포니아는 6년 연속 최하위였다. 뉴섬의 재임 기간과 일치한다. 지난해 순유출 인구는 21만6000명이었다. 삶의 질이 떨어진 게 가장 큰 이유다. US뉴스앤월드리포트의 2025년 삶의 질 지수에서 캘리포니아는 생활비 부문 50위, 경제성장 45위, 고용 46위, 재정 48위 등 고르게 낙제점을 받았다. 실리콘밸리나 비벌리힐스에 억만장자가 수두룩한데도 빈곤율(17.7%)은 루이지애나와 공동 1위, 실업률(5.5%)은 위싱턴DC에 이어 2위다.

캘리포니아는 한때 성장과 번영, 그리고 미국의 자신감을 상징하는 곳이었다. 대규모 항공 방산기업이 모여들었고, 양질의 일자리는 두터운 중산층을 배출했다.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이젠 감당하기 어려운 생활비, 무거운 세금과 숨막히는 규제, 허술한 치안, 낡은 인프라가 먼저 떠오른다. 3월 초 에머슨대의 주민 여론조사에선 ‘캘리포니아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응답이 52%에 달했다.

물론 이걸 죄다 뉴섬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다. 수십 년에 걸친 민주당 독주의 병폐가 차곡차곡 쌓인 결과다. 뉴섬은 그런 ‘캘리포니아 현상’으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 그에 앞서 도전했던 이들도 그랬다. 그래서 모처럼만의 민주당발 캘리포니아 대망론은 왠지 불안해 보인다. 이미 너무 많은 것이 어긋나 있다.

야구의 나라 미국에선 정치인을 야구선수에 곧잘 빗댄다. 거만한 부잣집 출신은 ‘3루에서 태어났으면서 스스로 3루타를 친 줄 아는 선수’로 불린다. 성실하지만 캐릭터가 약할 경우 ‘번트를 대라면 대는 선수’라 한다. 뉴섬에겐 어떤 비유가 나올까. ‘파울 플라이를 쳐놓고 홈런 세리머니를 하는 선수’ 아닐까.

◆ 트럼프 시대의 미국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남윤호 미주중앙일보 대표가 현지에서 전합니다.

남윤호 미주중앙일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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