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대 물가라는데 장바구니 왜 이러지…중동 전쟁이 ‘착시’ 더 키운다

황정일 2026. 4. 11.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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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감 물가와 물가 지수 괴리
물가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원화 가치 하락 등으로 슬금슬금 오르던 물가는 2월 말 중동 전쟁이 시작되면서 폭발했다. 휘발유를 시작으로 주요 생필품 가격이 줄줄이 오르고 있다. 이 같은 이유로 한국은행은 10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2.5%로 동결키로 했다. 11개월째 같은 수준으로, 금통위 기준으론 7연속 동결이다. 하지만 정부의 물가 통계는 여전히 2%대의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체감 물가와 지표 간 괴리가 커지면서 소비자의 혼란도 가중하고 있다.

한 시민이 서울의 대형마트 농산물 코너를 살펴보고 있다. [뉴스1]
슬금슬금 오르는 물가를 잡기 위해 정부는 지난해 하반기 다양한 정책 수단을 동원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설탕·밀가루·달걀 등 생활필수품 담합을 단속했고, 설탕 업계에는 4000억원대 과징금을 부과했다. 국세청도 물가 불안을 키운 기업 탈세를 적발하기도 했다. 그 결과 가공식품 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하반기 2.1%로 낮아졌고,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도 2%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래픽=정수경 기자
전문가 “내달 물가 상승률 3% 웃돌 수도”
이 같은 추세는 올해 들어서도 이어졌다. 중동 전쟁 영향으로 3월 CPI 상승률이 소폭 상승하긴 했지만 여전히 2%대 흐름을 보인다. 하지만 소비자가 느끼는 체감 물가는 전혀 다르다. 중동 전쟁 전인 지난해 하반기부터 외식물가나 장바구니 물가가 급등하면서 소비 위축을 불러왔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그동안 동결했던 대학 등록금, 대중교통 요금까지 줄줄이 올랐다. 실제 개인서비스 물가는 지난해 말 이미 2.9%로 전체 CPI 상승률을 크게 웃돌았다. 올해 3월 개인서비스 물가 상승률도 3.2%에 달한다.

소비자가 느끼는 체감 물가와 실제 지표의 틈새는 기본적으로 먹거리나 개인서비스와 같은 소비자가 가격 상승을 즉각 체감할 수 있는 품목의 가격이 많이 올랐기 때문이다. 지난해 장바구니와 직결된 생활물가지수 상승률은 CPI 상승률을 웃돌았다. 2022년 6%로 고점을 찍은 뒤 하향 추세지만 지난해 2.4%를 기록했다. 생활물가지수를 구성하는 144개 품목 중 교통·통신·교육 등 60개 품목을 제외한 식품의 물가상승률도 지난해 3.2%였다.

10년 치를 놓고 보면 이 차이가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7일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CPI는 2015년 94.9에서 2025년 116.6으로 약 23% 상승했다. 그런데 같은 기간 가공식품은 32% 올랐고, 농축수산물은 50.1% 상승해 전체 물가 상승률의 두 배를 웃돌았다. 과일·채소·축산물 등 필수 소비재 중심으로 가격이 오르면서 소비자의 체감 물가 부담이 커진 것이다. 데이터처가 생활물가지수와 채소·과일·생선 등을 대상으로 하는 신선식품지수 등 보조지표를 함께 발표하는 배경이다.

소비가 많은 품목의 가중치가 낮은 점도 체감 물가와 지표의 간극을 벌리는 요인이다. 지난해 소비가 많은 마늘(11.7%)·김치(11.5%)·커피(11.4%)·고등어(10.3%) 가격이 급등했는데, 마늘(1.3)·김치(1.3)·커피(2.6)·고등어(2)의 가중치는 작은 편이다. 가중치가 낮으면 가격 변동 폭이 크더라도 CPI 산정 때 미치는 영향이 적을 수밖에 없다. CPI에 전·월세 등 임차료만 포함돼 있고 ‘자가주거비’도 빠져있는 것도 한 원인이다. 최근 몇 년간 집값이 큰 폭으로 올랐는데도 지표상 물가는 비교적 조용한 이유다.

그래픽=정수경 기자
자가주거비는 소유주택을 주거 목적으로 사용해 얻는 서비스의 가치를 비용으로 환산한 것이다. 데이터처는 ‘자가주거비포함지수’를 보조지표로 발표하고 있지만, 이는 소유주택과 유사한 주택을 임차할 때 지불할 것으로 예상하는 비용을 측정해 산출한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19개국이 CPI에 자가주거비를 포함하고 있다. 데이터처는 올해 말께 자가주거비를 CPI에 포함할지를 놓고 의견수렴 등을 거칠 예정이다. 정형기 DS증권 연구원은 “자가주거비를 물가에 포함하지 않으면 지난해와 같은 시기에 물가가 과소평가 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체감 물가와 지표 사이의 간극은 중동 전쟁으로 더 벌어질 전망이다. 정부는 올해 물가가 2%대 초반에 머물 것으로 봤지만, 중동 전쟁 이후 유가·환율이 동시에 치솟으며 물가 전망의 전제가 무너졌다. 지난해 지표상 2%대 물가 상승률을 기록한 건 규제유가가 안정세를 보인 영향이었는데, 올해는 상황이 바뀐 것이다. 아세안+3 거시경제조사기구(AMRO)는 6일 2026년 지역경제전망 보고서에서 한국의 물가 상승률을 한 달 전(1.9%)보다 0.4%포인트 상향한 2.3%로 전망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바클리·씨티·골드만삭스 등 주요 글로벌 투자은행(IB) 8곳의 올해 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지난해 2월 말 평균 2.0%에서 지난달 말 2.4%로 0.4% 포인트 상승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중동발 에너지 충격이 아직 지표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며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5~9월 물가 상승률이 3%를 웃돌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소비자물가지수에 자가주거비 빠져있어
이미 생활 물가는 줄줄이 오르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특란 10구 전국 평균 소비자 가격은 2월 3934원에서 4월 3998원으로 1.6% 올랐다. 특란 30구 기준으로는 같은 기간 6561원에서 7017원으로 6.9% 뛰었다. 한우 안심 가격(100g당)은 1년 전보다 24.59% 올라 1만4336원을 기록했다. 서울 휘발유 가격은 7일 기준 L당 평균 2001.54원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기름값이 급등한 2022년 7월 25일(L당 2005.01원) 후 약 3년 8개월 만에 2000원을 돌파했다.

그래픽=정수경 기자
정부는 물가 잡기 총력전에 나서고 있다. 정부는 8일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주재로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장관 TF 회의를 개최하고 상반기 중 전기 등 중앙 공공요금 동결 원칙을 세웠다. 택시와 시내버스, 지하철 등 지방 공공요금 역시 마찬가지다. 지방 공공요금 동결을 위해선 지방정부에 협조를 구하고, 재정 인센티브 지원을 강화한다. 행정안전부는 지방정부에 공공요금을 동결해달라고 협조를 요청했다.

정부는 이와 함께 가공식품, 외식 분야에서는 식품원료 22종에 할당관세를 적용하고 외식업체 육성자금 300억원을 지원한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본부장은 “국제유가 상승으로 물가 상승, 기업 비용 증가 등으로 소비와 투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며 “장기화하면 내수 침체와 수출 둔화를 동시에 자극해 스태그플레이션(물가 상승 속 경기 침체)형 충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가중치=가구의 소비 지출액에 따라 품목별로 정해진다. 많은 돈을 써야 하는 품목은 가중치가 크고, 적게 지출하는 품목은 작다. 전세는 54.2(가중치 총합은 1000)로 가중치가 가장 크다. 지출액이 많은 휴대전화료(29.8)·휘발유(24.1)·공공주택관리비(21.8)·외래진료비(20.5)의 가중치가 큰 편이다. 가중치가 큰 품목의 가격 변동은 소비자물가에 민감하게 반영된다.

황정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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