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도피가 결코 '안전판'이 될 수 없는 이유 [황우진의 글로벌 퍼스펙티브]
해외 도피, 시간 끌수록 불리
'처벌 회피 목적' 폭넓게 인정
국외 체류만으로도 시효 멈춰
귀국 전 변호인 조율·피해 변제
결국 해법은 '조기 대응'

세계 어디든 인력의 이동이 자유로운 글로벌 시대다. 하지만, 형사 처벌은 각국의 고유한 주권 행사 방법이므로, 글로벌하게 일치되지 않는다. 즉, A국에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B국으로 이동했다면 반드시 처벌된다는 보장은 없다. 그렇다고 한국에서 범죄를 저지른 후 해외로 도피하면 안전한 것은 당연히 아니다. 오히려 국경을 넘는 순간부터 문제는 더 길어지고 책임은 무거워진다.
해외도피 기간 동안 '공소시효 정지'
우선 사건은 기소중지(수사중지)되고 공소시효는 정지된다. 형사소송법 제253조 제3항은 "범인이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는 경우 그 기간 동안 공소시효는 정지된다"고 규정한다.
대법원은 범인이 해외에 있는 경우 공소시효를 어떻게 볼지에 대해 비교적 넓게 해석했다. 형사소송법은 '처벌을 피하려고 해외에 있는 경우'에는 그 기간 동안 공소시효가 멈춘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대법원은 이 처벌 회피 목적을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우선 범인이 국내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해외로 도망간 경우뿐 아니라, 애초에 해외에서 범죄를 저지른 뒤 계속 해외에 머무는 경우도 포함된다고 봤다.
또한 해외 체류의 목적이 반드시 '처벌 회피 하나만'일 필요도 없다고 판단했다. 예를 들어 사업, 가족, 생활 등 다른 이유가 함께 있더라도 그 중 하나라도 '처벌을 피하려는 의도'가 포함돼 있으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대법원은, 범인이 해외에 있는 것이 결과적으로 처벌을 피하는 수단이 됐다면 이를 처벌 회피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반대로, 처벌을 피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다는 점이 명확히 드러나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해외에 머무는 동안에는 그 목적이 계속 유지된다고 판단했다.
공소시효 정지와 관련해 실무에서도 비슷한 쟁점이 자주 발생한다. 필자가 서울중앙지검 국제범죄수사부에서 근무할 당시 수사했던 사건이 대표적이다. 해당 사건의 피의자는 출입국 기록상 약 10년 동안 해외에 머물다 현지에서 체포된 뒤 국내로 송환돼 구속됐다.
이 피의자는 재판 과정에서 "중간에 몰래 입국해 일정 기간 국내에 있었기 때문에 공소시효가 그때 다시 진행됐고, 이미 시효가 완성됐다"고 주장했다. 즉, 해외 체류 기간 전체가 아니라 일부 기간은 시효가 흘렀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수사 과정에서 압수수색 등으로 관련 자료를 확보한 결과, 이 같은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 확인됐고, 결국 법원은 공소시효가 정지된 상태로 유지됐다고 판단해 실형을 선고했다.
이 사건은 해외 체류를 이유로 공소시효 완성을 주장하더라도, 실제 체류 경위와 객관적 자료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여권 무력화, 구속 영장 발부까지 염두해야

해외 도피가 결코 안전한 선택이 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여권 제한'이다. 여권법에 따르면 외교부 장관은 중형이 예상되는 범죄로 기소된 사람이나, 체포영장·구속영장이 발부된 상태에서 해외에 있는 사람에 대해 여권 발급이나 재발급을 거부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대상자가 이미 여권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여권 반납을 명령할 수 있으며, 이를 따르지 않으면 해당 여권은 자동으로 효력을 잃는다.
결국 여권이 무효화되면 해외 체류와 이동이 크게 제한되기 때문에, 해외 도피는 장기적으로 유지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설명이다.
수사기관은 범죄의 중대성 등을 고려하여 해외 도피사범에 대해 외교부에 여권 반납 명령 및 발급 제한 요청을 하는데, 여권이 무효화 되면 당사자는 즉시 신분 증명이 곤란하거나, 비자 연장이 불가능해져 불법체류 상태로 되거나 현지에서 체포될 위험이 커지므로 큰 압박을 받는다.
특히, 최근 미국 정부가 불법 입국과 체류에 엄정한 대응을 강화하고 있어 미국으로 도피한 기소중지 피의자들에게 불법체류 리스크는 더 클 수 밖에 없다. 미국에서 여권이 무효화 되면, 설령 애초 합법적으로 입국했더라도 불법체류자로 강제추방되어 생활 터전을 잃고 재입국까지 거부될 위험이 커진 것이다.
또한 수사 개시 후 국외 도피한 사실 자체가 향후 구속 영장 발부의 결정적 사유(도망할 염려)가 된다. 이 경우 형사처벌이 가중되거나, 사안에 따라 입국 시 바로 체포 또는 출국금지 조치가 될 수도 있다. 결국 해결 방법은 도피가 아니라 사건의 원만한 처리다.
'무작정 도피'보다 '준비된 입국'이 더 안전해

해외에 있는 기소중지 피의자는 귀국 전부터 전략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우선 변호인을 선임해 체포영장 발부 여부나 출입국 제한 상태 등 현재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그다음으로는 자진 귀국을 전제로 수사기관과 출석 시기와 신병 처리 방향을 미리 조율해야 한다. 특히 체포영장이 발부된 경우에는 입국 사실이 즉시 수사기관에 통보되는 만큼, '어떻게 피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조건에서 입국하는 것이 가장 유리한가'를 고민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변호인을 통해 사전에 협의하면 공항에서 즉시 체포되거나 곧바로 구속영장이 청구되는 상황 등 리스크를 일정 부분 줄일 수 있다. 실제로 수사 실무에서도 해외 체류 피의자들이 입국 전에 변호인을 통해 의견서를 제출하며 협의를 시도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또한 사기·횡령 등 피해자가 있는 사건이라면 피해를 변제하거나, 최소한 현실성 있는 변제 계획을 제시하는 것이 수사 대응에 도움이 된다.
외국에서 여권이 무효가 되고, 비자도 위태로워 지며, 공소시효도 멈춘 상태라면 시간만 마냥 끄는 것은 해결이 아니라 리스크의 누적일 뿐이다. 글로벌 시대에 필요한 것은 국경을 넘는 도피가 아니라, 국경을 넘어 신속히 사건을 정리할 수 있는 결단이다.
김유진 기자 magiclam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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