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합니다”… 김포한강 등 수도권 3기 신도시 주민들 대통령에 상소문 올려

천용남 2026. 4. 10.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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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머금은 잿빛 하늘 아래, 10일 오전 청와대 사랑채 앞 광장은 무겁게 가라앉은 공기로 가득했다.

빗줄기는 잦아들 기미 없이 바닥을 적셨고, 그 위에 선 300여 명 주민의 표정에는 분노와 절박함이 동시에 배어 있었다.

주민들이 직접 제작한 한지 상소문은 정갈하게 접혀 옻칠을 입힌 케이스에 담겼고, 그 위를 감싼 도래매듭은 쉽게 풀리지 않는 염원을 상징하듯 단단히 묶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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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전 청와대 사람채 앞에서 각 지구를 대표하는 9명의 대책위원장이 무릎을 꿇고 상소문을 대통령께 올리고 있다. 천용남 기자

비를 머금은 잿빛 하늘 아래, 10일 오전 청와대 사랑채 앞 광장은 무겁게 가라앉은 공기로 가득했다.

빗줄기는 잦아들 기미 없이 바닥을 적셨고, 그 위에 선 300여 명 주민의 표정에는 분노와 절박함이 동시에 배어 있었다.

김포한강 2를 비롯해 평택지제, 의왕·군포·안산 등 수도권 3기 추가 신도시 9개 지구 연합대책위원회가 한자리에 모인 이날, 집회는 단순한 항의를 넘어 '상소'라는 형식으로 절박함을 쏟아내는 자리였다.

"억울하옵니다"

빗속을 가르는 외침과 함께 현장은 순식간에 조선 시대로 되돌아간 듯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유생복과 건을 갖춰 입은 김포한강 2 양촌 주민대책위 전수근 사무국장은 중앙에 서서 상소문을 펼쳤다. 떨리는 목소리로 이어지는 문장은 비에 젖어 더욱 처연하게 울려 퍼졌다.

그 순간, 각 지구를 대표하는 9명의 대책위원장이 일제히 앞으로 나섰다. 흰 두루마기를 입은 이들은 말없이 무릎을 꿇더니, 이내 차가운 빗물이 고인 바닥에 몸을 완전히 낮췄다.

'부복창소(俯伏唱疏)' 목숨을 걸고 임금에게 억울함을 호소하던 옛 의식이, 2026년 서울 한복판에서 재현된 순간이었다.

비에 젖은 옷자락은 금세 흙탕물로 물들었지만, 누구 하나 고개를 들지 않았다. 양촌 주민대책위 전수근 사무국장은 상소문에서 정부의 보상 정책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법령까지 바꾸며 강남 서리풀 지구에만 '지구지정 전 보상'이라는 특혜를 주는 것이 과연 공정한 행정이냐"는 문장이 울려 퍼질 때마다, 주변에서는 낮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한 주민은 "수년째 대출이자에 허덕이며 재산권 침해를 감내해왔는데, 왜 우리는 뒤로 밀려야 하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날 현장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단연 '상소함'이었다. 주민들이 직접 제작한 한지 상소문은 정갈하게 접혀 옻칠을 입힌 케이스에 담겼고, 그 위를 감싼 도래매듭은 쉽게 풀리지 않는 염원을 상징하듯 단단히 묶여 있었다.

비에 젖지 않도록 품에 안고 있던 한 관계자는 "이건 단순한 문서가 아니라 주민들의 삶 그 자체"라고 짧게 말했다.

상소문 낭독이 끝나자, 양촌 대책위 사무국장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두 손으로 상소함을 들어 올려 현장에 나온 청와대 공공갈등수석실 비서관에게 직접 전달했다.

순간 주변에서는 카메라 셔터 소리가 연이어 터졌고, 일부 주민들은 눈물을 훔쳤다. 짧은 전달식이었지만, 그 안에는 수년간 쌓여온 갈등과 기대가 응축돼 있었다.

집회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공식 행사를 마친 주민들은 다시 우산을 펼쳐 들고 광화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순신 장군 동상까지 이어진 우중 행진은 묵묵하면서도 단단했다.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전단을 건네며 "우리는 투기꾼이 아니라 삶의 터전을 지키려는 사람들"이라고 호소하는 목소리는 빗소리 속에서도 또렷이 들렸다.

행진이 마무리될 즈음, 빗줄기는 여전히 그치지 않았다. 그러나 주민들의 발걸음은 쉽게 흩어지지 않았다. 누군가는 끝까지 자리를 지켰고, 누군가는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돌아섰다.

이날 청와대 앞에서 펼쳐진 '부복창소'는 단순한 퍼포먼스를 넘어, 공정이라는 이름을 향한 주민들의 처절한 질문으로 남았다.

천용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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