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 아냐?" 비참하게 죽은 천재…한국인 홀린 사연은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성수영 2026. 4. 10.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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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i·1852~1926)

쾅!

1926년 6월 7일 저녁,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길거리. 길을 건너던 추레한 행색의 노인이 노면전차(트램)에 치여 날아갔습니다. 갈비뼈는 부러져 숨을 잘 쉬지 못했고, 두개골도 골절된 것 같았습니다.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누군가가 노인의 신원을 파악하려고 낡은 옷을 뒤졌지만, 신분증은 없었습니다. “거지인가?” 그래도 사람들은 쓰러진 노인을 택시에 실어 병원으로 보내려 했습니다. 하지만 택시 기사들은 손을 저으며 떠나갔습니다. 택시비를 받지 못할 게 뻔했으니까요. 신고를 받고 뒤늦게 도착한 경찰이 그를 병원으로 실어 날랐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치료하는 빈민 병원이었습니다. 의사는 노인에게 응급 처치만 해줬습니다.

가우디가 평생을 바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2026년 예수 탑이 완성되면서 높이 172.5m,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교회가 됐다. ⓒgettyimages


그의 정체가 밝혀진 건 다음 날이었습니다. 병원에 방문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성가정성당)의 사제가 노인을 알아봤습니다. “가우디 선생님, 왜 여기에...!”

노인의 정체는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설계하고 바르셀로나의 풍경을 바꾼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1852~1926)였습니다. 급히 가우디를 다른 병원으로 옮겼지만, 이미 그를 치료하기엔 이미 너무 늦은 상황. 사흘 뒤 가우디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가는 왜 거지로 오해받아 세상을 떠났을까요. 그는 무엇을 남겼을까요. 지난해에만도 한국인 24만 명이 찾은,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해외 여행지 중 하나인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오늘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에서는 가우디의 삶과 그의 건축을 이야기합니다.

말년의 가우디 모습.

 보일러공의 아들

1850년대 스페인 카탈루냐의 작은 도시 레우스. 구리 세공 작업장에서 한 아이가 아버지의 일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평평한 구리판을 망치로 두드려 보일러 용기를 만들었습니다. 도면 같은 건 없었습니다. 손의 감각을 사용해 평면을 입체로 바꾸는 기술. 가우디는 그렇게 ‘공간’이 무엇인지 느끼는 법을 배웠습니다. 훗날 그는 말했습니다. "나에게는 공간을 느끼고 볼 수 있는 힘이 있다. 금속 용기를 만드는 사람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가우디의 형제자매들은 모두 몸이 약했습니다. 가우디의 다섯 명 형제자매 중 세 명이 어릴 때 죽었고, 살아남은 두 사람도 35세를 넘기지 못했습니다. 가우디도 허약한 아이였습니다. 류머티즘을 앓았던 그는 친구들이 뛰어놀 때 혼자 농가에 남았습니다. 그는 하염없이 자연을 바라보곤 했습니다. 나뭇가지가 갈라지는 각도, 조개껍데기의 나선, 뼈의 곡면 같은 것들. 이때 눈에 새겨진 이미지들은 30년 뒤 대성당을 이루게 됩니다.

스물한 살이 되던 해 가우디는 바르셀로나 건축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성적은 들쭉날쭉했습니다. 낙제 수준인 과목이 수두룩했지만 수학이나 설계에서는 압도적인 성적을 거뒀습니다. 그가 제출하는 과제는 다른 학생들의 것은 물론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과도 완전히 달랐습니다. 선생님들은 말했습니다. “재능이 있는 건 분명한데, 이런 설계로 건물을 지을 수는 있을까?” 5년 뒤 건축학교 졸업식에서 학장은 유명한 한 마디를 남겼습니다. “이 학위를 미치광이한테 준 건지, 천재한테 준 건지는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카사 비센스(1883~1888). 가우디의 첫 대표작. 이슬람 건축에서 영감을 받은 화려한 타일 장식이 특징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장갑 가게 쇼케이스 설계도. 다만 실물은 스페인 내전 때 파괴돼 현존하지 않는다.


시간은 빠르게 답을 내줬습니다. 학교를 졸업하던 바로 그해 가우디는 파리 만국박람회에 쇼케이스 하나를 출품했습니다. 장갑 제조업자들이 상품을 진열할 수 있는 진열장이었습니다. 지금 보면 특별한 것 없어 보이는 이 진열장에는 남다른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한쪽에서만 들여다볼 수 있는 평범한 상품과 달리, 이 진열장은 손님들이 주변을 걸어 다니며 360도 모든 방향에서 장갑을 볼 수 있는 구조였거든요. 이 진열장은 박람회에서 은메달을 받았습니다.

가우디의 진열장을 보고 감탄한 사람 중에서는 에우세비 구엘(1846~1918)이 있었습니다. 그는 당대 스페인에서 한 손에 꼽히는 부자였습니다. 법학·경제학·물리학을 두루 공부하고 피카소까지 후원했던 교양인이었지요. 구엘은 이 진열장을 보고 가우디의 재능을 느꼈습니다. 그냥 물건을 담는 상자가 아니라, 물건을 보는 사람의 동선과 시선까지 설계한 ‘공간적 사고’와 건축가로서 잠재력을 알아봤던 겁니다.

구엘은 가우디에게 작은 건축 의뢰를 맡겼습니다. 가우디는 멋지게 해냈습니다. 성공이 반복되자 구엘은 더 화끈하게 가우디를 밀어줬고, 결국 평생의 후원자가 됩니다. 구엘은 가우디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예산은 필요한 만큼 얼마든지 줄 테니 원하는 대로 하세요.” 그 결과물이 팔라우 구엘, 구엘 공원, 콜로니아 구엘 예배당입니다. 셋 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올라 있습니다. 후원자의 이름이 세계유산에 세 번 오른 사례는 인류 역사에서 유일합니다.

구엘 공원(1900~1914). 원래 60채 규모의 고급 주택단지로 기획됐으나 집이 두 채밖에 팔리지 않았다. 상업적으로는 실패했지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됐다. ⓒgettyimages


구엘 공원의 모자이크 벤치. 깨진 타일과 도자기 파편을 곡면에 붙이는 기법(트렌카디스)으로 만들었다. 요즘 말로 하면 '업사이클링'이다. ⓒgettyimages


이 시절의 가우디는 멋쟁이였습니다. 비싼 양복을 맞춰 입고, 마차를 타고 극장과 살롱을 드나들었습니다. 건축가로서 명성을 얻으며 잘나가기 시작한 겁니다.

 목발 없이 서는 건축

가우디는 왜 잘나갔을까요. 물론 그가 건축 천재였기 때문입니다. 딱 봐도 그의 구불구불한 건축에서는 독특한 아름다움과 천재성이 드러납니다. 하지만 정확히 이해하려면, 건축의 기본 원리를 하나 알아야 합니다.

돌은 인류가 가장 오랫동안 써온 건축 재료입니다. 돌은 누르는 힘에는 강하지만, 잡아당기는 힘에는 비교적 약합니다. 그래서 인류는 아치를 발명했습니다. 돌을 곡선으로 쌓으면 위에서 누르는 무게를 양옆으로 흘려보낼 수 있으니까요.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양옆으로 흘러간 힘을 어디선가 받쳐주지 않으면, 아치는 벌어지면서 무너집니다. 중세 고딕양식의 건축가들은 이 문제를 ‘플라잉 버트레스’라는 이름의 외부 받침대로 해결했습니다. 건물 바깥에 반원형 뼈대를 세워 아치가 벌어지지 않게 잡아주는 구조입니다. 노트르담 대성당이나 쾰른 대성당의 뼈대가 바깥으로 삐져나와 있는 이유입니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플라잉 버트레스. 아치가 벌어지지 않도록 건물 바깥에서 받쳐주는 외부 받침대다. 가우디는 이를 "목발을 짚고 서 있는 환자"라고 비판했다.


노트르담 대성당 플라잉 버트레스의 구조. 지붕과 벽에서 발생하는 수평 방향의 힘을 외부 기둥으로 전달해 건물이 벌어지는 것을 막는 원리다. 화살표는 힘이 작용하는 방향을 나타낸다.


하지만 건축가들은 이 거추장스러운 받침대를 싫어했습니다. 가우디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고딕 건축은 목발을 짚고 서 있는 딱한 환자다.”

가우디는 건물이 ‘목발’ 없이 설 수 있는 단순한 해법을 발견했습니다. 먼저 그는 줄을 천장에 매달고 끝에 모래주머니를 달았습니다. 중력이 줄을 아래로 당기면 자연스러운 곡선이 만들어집니다. 이 곡선을 뒤집으면 어떻게 될까요. 놀랍게도 외부 받침대가 필요 없이 압축력만으로 스스로 서 있는 아치가 됩니다. 중력이 자연스럽게 만든 곡선이니, 그 반대 방향으로 세우면 중력을 가장 효율적으로 버티는 형태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원리 자체는 17세기에 이미 알려져 있었습니다. 가우디는 이 원리를 3차원으로 확장해 수백 개의 줄을 천장에 매달고, 줄에 줄을 연결하고, 교차점마다 모래주머니를 달았습니다. 콜로니아 구엘 예배당을 설계하기 위해 만든 이 모형은 높이가 4미터에 달합니다. 건물 전체의 뼈대가 천장에서 거꾸로 매달려 있는 형태. 그 아래에 거울을 놓으면 뒤집힌 모습, 즉 실제로 지어질 건물이 비칩니다.

콜로니아 구엘 예배당을 위해 가우디가 만든 역현수 모형. 천장에 줄과 모래주머니를 매달고, 그 아래 거울을 놓아 실제 건물의 형태를 확인했다. 컴퓨터가 없던 시대에 중력을 설계 도구로 쓴 것이다.


콜로니아 구엘 지하성당(1908~1915) 내부. 역현수 모형의 결과물이다. 기둥이 기울어져 있는 이유는 중력이 그 각도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줄의 길이를 바꾸면 아치 높이가 달라지고, 모래주머니 무게를 바꾸면 곡률이 달라집니다. 하나를 바꾸면 전체가 자동으로 재조정됩니다. 컴퓨터가 없던 시대에 가우디는 중력을 일종의 설계 프로그램으로 사용한 겁니다. 다른 건축가들처럼 도면을 그리는 게 아니라 물성과 중력으로 형태를 만드는 방법. 이는 어린 시절 구리판을 두드리던 아버지의 모습에서 배운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가우디는 자연을 건축에 담았습니다. 예쁜 모양을 베끼는 데서 그치지 않고 나무가 왜 그 모양으로 서 있는지, 뼈가 왜 그렇게 휘어 있는지를 역학적으로 분석해 건축으로 바꿨습니다. “빛이 숲에 들어온 느낌으로 쏟아진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 들어온 사람들은 이런 얘기를 많이 합니다. 비밀은 기둥에 있습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기둥은 나뭇가지처럼 위로 갈수록 갈라집니다. 가지가 갈라지면 하중이 여러 방향으로 분산되고, 덕분에 기둥을 가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기둥이 가늘어지면 벽이 얇아지고, 벽이 얇아지면 창을 크게 낼 수 있습니다. 자연의 법칙을 따라 한 덕분에 ‘목발’ 없이도 빛이 쏟아지는 성당을 만든 겁니다.

가우디의 선배 건축가들은 오랫동안 두 가지 문제 사이에서 갈등해왔습니다. 중력과 빛입니다. 돌로 높이 쌓으면 무게 때문에 무너지고, 무너지지 않게 벽을 두껍게 만들면 빛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높이 쌓으면서도 무너지지 않게, 튼튼하면서도 밝게. 건축가들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았습니다. 가우디는 이 오래된 문제를 돌과 벽돌, 타일과 석고라는 전통 재료만으로 푼 마지막 거장이었습니다.

그 이후의 건축가들은 철근 콘크리트와 대형 유리라는 새로운 재료를 손에 쥐게 됩니다. 철근 콘크리트는 누르는 힘에도 잡아당기는 힘에도 강하고, 대형 유리는 벽 전체를 창으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중력과 빛의 갈등이 재료의 힘으로 한꺼번에 풀려버린 겁니다. 르코르뷔지에, 발터 그로피우스 같은 모더니즘 건축가들이 장식을 걷어내고 기능에 집중하며 건축의 새 지평을 열 수 있었던 건 그 덕분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우디는 "미래를 열지는 못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재료의 힘이 아니라 인간의 손과 머리만으로 도달한 극한이기에, 가우디의 건축은 감동적입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내부의 스테인드글라스. 가지형 기둥 덕분에 벽을 얇게 만들 수 있었고, 그만큼 창을 크게 낼 수 있었다. 빛이 쏟아지는 성당의 비밀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내부.


한편 가우디는 현실적인 건축가였습니다. 가우디의 건축물에 많이 쓰인 쌍곡포물면이라는 곡면이 있습니다. 프링글스 감자 칩 모양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복잡한 모양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는 직선들의 조합으로 이뤄져 있어 벽돌공이 시공하기가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습니다. 머릿속의 아이디어가 아무리 훌륭해도 현장에서 지을 수 있어야 하는 법. 가우디는 짓는 사람의 손도 생각했습니다.

가우디는 말했습니다. “직선은 인간의 것이고, 곡선은 신의 것이다.” 가우디에게 자연은 신이 써놓은 설계도였고, 건축은 그 설계도를 인간의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자연의 법칙에서 배우는 사람은 창조주와 협력하는 것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본당은 쌍곡면 형태의 돔 천장으로 이뤄져 있다. 기둥과 가지는 나무처럼 뻗어 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가우디에게도 한때 사랑이 있었습니다. 호세파 모레우. 그녀는 노동자 협동조합의 프랑스어 선생님이었습니다. 가우디는 4년간 매주 일요일마다 그녀의 집을 찾았습니다. 함께 식사하고 피아노 연주를 들었습니다. 그녀의 집 벽화에서 영감을 얻어 자신의 건축물(카사 비센스) 인테리어에 활용하기까지 했습니다. 가우디의 마음은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지만, 그는 차마 감정을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4년을 그렇게 보냈습니다.

4년 만에 가우디는 마침내 용기를 내 그녀에게 고백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늦었습니다. 그녀에게는 이미 약혼자가 있었거든요. 그럴 만도 했습니다. 매주 찾아오면서도 한 번도 마음을 내비치지 않았으니, 그녀로서는 친한 지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자연에 담긴 신의 뜻을 읽을 수 있었던 가우디는, 안타깝게도 사람의 마음을 읽는 데는 능숙하지 못했습니다. 가우디는 이후 평생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가우디의 곁을 떠난 사랑하는 사람은 그녀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가우디를 지탱하던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기 시작한 겁니다. 1906년, 93세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6년 뒤에는 함께 살던 조카가 36세의 나이로 죽었습니다. 일상을 나누던 마지막 가족이었습니다. 얼마 안 돼 27년간 곁을 지킨 핵심 조수 베렝게르가 급사했고, 정신적 스승이었던 토라스 이 바게스 주교가, 또 평생의 후원자 구엘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10여년 사이에 가족, 동료, 스승, 후원자가 모두 사라진 겁니다.

카사 바트요(1904~1906). 지중해의 파도를 연상시키는 곡면 파사드. 지붕은 용의 등뼈, 발코니는 해골의 턱뼈라는 해석도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카사 바트요 내부. 기둥을 제외하면 직선이 없다. "직선은 인간의 것이고, 곡선은 신의 것이다"라는 가우디의 말을 체감할 수 있는 공간이다.


카사 밀라(1906~1912). 별명은 '라 페드레라(채석장)'. 가우디의 마지막 민간 건축물이다. 시 규정을 초과해 철거 명령까지 받았으나 나중에 문화재로 지정됐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가우디와 이 세상을 잇는 끈은 갈수록 가늘어졌습니다. 카사 바트요(1904~1906)카사 밀라(1906~1912). 바르셀로나의 명품 거리인 파세이그 데 그라시아에 500미터 간격으로 세운 두 건물입니다. 카사 밀라 옥상에는 성모 마리아상을 세울 계획이었지만 건물주의 반대로 무산됐습니다. 이후 가우디는 개인 의뢰를 더 이상 받지 않았습니다. 비싼 양복을 입고 마차를 타던 멋쟁이 건축가는 어느덧 60대의 고집 센 거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마침내 가우디는 선언했습니다. “나의 좋은 친구들은 죽었다. 나에게는 가족도, 의뢰인도, 재산도, 아무것도 없다. 이제 나는 온전히 교회에 헌신할 수 있다.” 그는 절망하는 대신 헌신을 선택했습니다. 다른 모든 의뢰를 거절하는 대신 사그라다 파밀리아에만 집중하기로 한 겁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1882년 착공된 성당입니다. 오직 신자들의 헌금과 기부만으로 짓는 성당(속죄 성당)이기에 돈이 모이는 만큼만 지을 수 있었고, 그만큼 공사는 어려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우디는 이 프로젝트를 기꺼이 맡아 죽는 날까지 이 성당에 매달렸습니다. 성당 공방에 들어가 살았고, 식사는 토스트와 우유에 적신 상춧잎이 전부였습니다. 낡은 옷은 “깨끗하기만 하면 괜찮다”며 기워서 계속 입었습니다. 직접 동네를 돌며 건축비를 구걸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이 성당을 ‘빈자의 성당’이라고 불렀습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야경. 입장료 수입과 기부금만으로 공사비를 충당하는 '속죄 성당'이다. 정부 보조금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 ⓒgettyimages


예상 공사 기간은 수백 년. 중세 고딕 성당들이 수백 년에 걸쳐 지어지긴 했지만, 20세기에 이런 프로젝트는 상식 밖의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건축주의 요구도 세상의 시선도 신경 쓸 필요가 없어진 가우디는 인생을 통틀어 가장 급진적인 건축을 시도합니다. 자신의 인생에 완성을 볼 수 없을 성당, 완공될 수 있을지 여부도 알 수 없는 이 성당을 위해 가우디는 수없이 석고 모형을 만들며 포물선, 쌍곡면, 나선 면을 실험했습니다.

누군가 물었습니다. “이 성당은 대체 언제 완성됩니까?” 가우디는 답했습니다. “내 고객은 서두르지 않습니다.” 신(神)을 가리킨 말이었습니다.

 144년, 그리고 내일

성당 건축에 삶을 바치던 가우디는 1926년 안타까운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거지로 오인당한 탓에 치료 시기를 놓쳤고, 7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가우디는 자신이 평생을 바친 사그라다 파밀리아 지하성당에 묻혔습니다. 장례식에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바르셀로나 시민 수천 명의 행렬이 늘어섰습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탄생 파사드. 가우디 생전에 완성된 유일한 파사드다. 예수 탄생 장면의 조각들은 실제 사람과 동물을 석고로 본떠 만들었다.


가우디가 떠났지만 성당 건설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제자가 뒤를 이어 공사를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936년 스페인 내전이 터진 겁니다. 그 과정에서 테러리스트들이 사그라다 파밀리아 공방에 침입해 도면과 사진, 석고 모형을 파괴하고 지하 성당에 불을 질렀습니다. 가우디의 무덤 뚜껑까지 부서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성당 관련자 열두 명이 살해됐습니다.

가우디는 도면 대신 모형으로 설계하는 건축가. 모형이 파괴된 순간 원본은 사실상 사라져 버렸습니다. 다른 건축가들처럼 도면을 중심으로 작업했다면 복사본이라도 남아 있었겠지만, 설계를 복원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제자가 잔해 속에서 석고 파편을 수습하고 이전 자료들을 간신히 모아 복원 작업을 하는 데만 16년이 걸렸습니다.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복원 탓에 논란도 일었습니다. 르 코르뷔지에, 호안 미로 같은 건축가와 예술가들은 “가우디 사후에 미완성 작품을 계속 짓는 것은 원작 왜곡”이라는 공개서한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반론도 있었습니다. 가우디는 원래 현장에서 끊임없이 수정을 거듭하는 건축가. 모형을 부수고 다시 만드는 건 늘 있는 일이었습니다. 가우디가 살아서 직접 짓고 있었다고 해도 그 모습은 원래 설계와 많이 달랐을 겁니다. 가우디의 뜻을 이어받은 제자들이 건축을 이어가고 있으니, 원작 왜곡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습니다. 마침내 올해 2월 20일. 예수 탑의 마지막 조각이 설치됐습니다. 높이 172.5미터.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교회가 됐습니다. 가우디 서거 100주년이 되는 올해, 명목상의 완공이 선언될 예정입니다. 마무리 공사는 2030년대까지 이어질 전망입니다.

2026년 2월 완성된 예수 탑 상단. 가우디 서거 100주년에 맞춰 설치됐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지하에 마련된 가우디의 묘소.


가우디는 이 성당의 완성을 보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가우디는 사고 당일 오후, 공방을 나서기 직전에 조수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일 일찍 와라, 아름다운 것들을 만들 테니.”

끝을 볼 수 없는 내일에 자신의 유한한 삶을 거는 인간의 의지. 파괴와 논란을 겪으면서도 144년째 지어지고 있는 이 미완성 성당이 연간 480만 명의 사람들을 끌어모으며 감동을 주는 이유는, 어쩌면 거기에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번 기사는 Gaudí: A Biography(Gijs van Hensbergen 지음), Antonio Gaudí: Master Architect(Joan Bassegoda i Nonell 지음), The Sagrada Familia: Gaudí's Heaven on Earth(Gijs van Hensbergen 지음), Antoni Gaudí(Michael Eaude 지음), Antoni Gaudí, 1852–1926: From Nature to Architecture(Rainer Zerbst 지음) 등을 참조해 작성했습니다.
 

<그때 그 사람들>은 미술·문화재 담당 기자가 미술사의 거장들과 고고학, 역사 등을 심도 있게 조명하는 국내 문화 분야 구독자 1위 연재물입니다. 매주 토요일 새로운 이야기로 찾아옵니다. 네이버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시면 미술 소식과 지금 열리는 전시에 대한 심층 분석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 구독 중인 8만명 독자와 함께 아름다운 작품과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세 권의 책으로 곁에 두실 수도 있습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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