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진 베트남 청년 뚜안의 생일, 동생은 그 공장에 국화를 놓았다
이천 중앙산업 찾은 뚜씨, 형 숨진 자리에 향 대신 담배
부모님과 영상통화, 화면으로 현장 보던 아버지는 오열
유품 모자·목걸이 챙겨… 故 김용균씨 어머니와 만남도
덮개 등 안전 시설 미비… 시민사회 “규명·처벌 촉구”
산재 사망자중 이주노동자 비율 9.7% → 14.6% 급등
“외국인이나 한국 사람 모두가 좋은 환경에서 일해야”

형이 숨진 지 꼭 한 달. 한 줌의 재가 돼 고향 베트남으로 돌아갔던 그 길을 동생은 반대로 건너왔다. 이날은 뚜안씨(4월3일자 5면 보도 등)의 생일이다. 스물셋,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이국땅을 찾았던 청년의 생일날 동생은 국화꽃을 들고 형이 숨진 공장 앞에 섰다. 그는 케이크 대신 하얀 꽃을 콘크리트 바닥에 내려놓았다.
지난 10일 오전 11시께 이천시 호법면의 중앙산업. 전날 베트남에서 온 응우옌 반 뚜(21)씨의 형 응우옌 반 뚜안씨가 지난달 10일 숨진 장소다. 뚜안씨는 점검 작업을 하기 위해 설비 공간에 혼자 들어갔다가 팔이 기계에 끼여 이국땅에서 생을 마감했다.
다음은 유족이 제공한 영상과 증언을 토대로 재구성한 상황이다.
동생 뚜씨는 곧장 사고 현장으로 향했다.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선 뚜씨는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국화 꽃다발을 내려놓고선 성호를 그었다. 잠시 후 그는 컨베이어 벨트 아래로 들어가 형이 숨진 자리에 쭈그려 앉았다. 두 손을 모으고 멍하니 바라보다가 향 대신 담배에 불을 붙여 자리에 피워뒀다. 기계를 샅샅이 살펴본 그는 이내 휴대전화를 꺼내 베트남에 있는 아버지와 영상통화를 했다. 아들이 숨진 현장을 화면으로 전해 받은 아버지는 오열했다.
추모를 마친 뒤 뚜씨는 공장 뒤편 숙소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2층에 있는 형의 방에서 뚜안씨가 생전에 착용하던 모자와 목걸이를 발견했다. 모자를 주머니에 소중히 챙겨 넣은 그는 침대 끝에 걸터앉아 상념에 잠겼다. 잠시 뒤 김미숙씨가 이곳을 찾았다. 지난 2018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숨진 故김용균씨의 어머니다. 그는 말없이 뚜씨를 꼭 안아줬다. 홀로 작업하다 기계에 끼여 목숨을 잃은 아들, 그 죽음의 구조는 뚜안씨 사고와 판박이였다.


뚜씨가 가족을 대표해 홀로 입국한 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건설현장에서 추락해 몸이 불편한 아버지, 만성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어머니는 올 수 없었다. 뚜씨 역시 충격에 빠진 가족을 돌보느라 한동안 입국을 미뤄왔다. 그러나 사태가 해결되지 않는 사이, 가족의 고통은 날로 커져갔다. 5남 1녀의 장남이자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온 뚜안씨의 죽음 앞에서 더 이상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뚜안씨의 죽음은 단순한 산업재해가 아니었다. 사고가 난 컨베이어 벨트 주변에는 덮개와 비상정지장치 등 안전 시설이 미비했던 것으로 파악됐으며, 뚜안씨는 기계가 멈추지 않은 상태에서 홀로 점검 작업에 나섰다가 참변을 당했다. 시민사회는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했다.
그의 죽음은 그간 한국 사회가 외면해온 이주노동자 산업재해의 단면이기도 하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전체 산재 사고 사망자 중 이주노동자 비율은 2022년 9.7%에서 2025년 1분기 14.6%까지 치솟았다. 전체 취업자 중 외국인 비중이 3%가량인 점을 감안하면 이는 결코 가벼운 숫자가 아니다. 화성 아리셀 참사에서도 숨진 23명 중 18명이 이주노동자였다.

현장 방문이 끝난 뒤 공장 앞에서 故 김용균씨 어머니와 함께 기자들의 질의를 받았다. 사고 현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뚜씨는 “기계가 너무 크고 안전장치도, 카메라도 없었다”고 천천히 이야기했다. 이어 한국 정부를 향해서는 “한국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이나 한국 사람 모두가 좋은 환경에서 일하고 이런 억울한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하늘에 있을 형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우리 형 생일이에요. 형이 편히 쉬었으면 합니다.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한국 땅에 있는 모든 노동자들을 (형이) 잘 보살펴줬으면 좋겠습니다.”
뚜씨의 이야기가 끝나자 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산재로 가족을 잃은 이의 마음이 어떤지 누구보다 잘 아는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뚜안씨 사고를 기사로 접했을 때부터 용균이 사고와 너무 흡사하다 싶었어요. 현장에 들어가는 게 솔직히 겁났습니다. 같은 사고로 또 한 분이 돌아가셨으니 유족들이 얼마나 무너질지, 저랑 똑같을 거잖아요. 결국 위험한 일이 이주노동자에게 떠넘겨지고 있는데, 돈벌이에만 급급할 뿐 안전한 환경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그랬던 것처럼 함께 목소리를 높여야만 현장이 실질적으로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혜연 기자 pi@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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