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반도체 패권, 빅테크 '맞춤형 칩' 수주에 달렸다

황정수 2026. 4. 10.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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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 센트릭' 시대, 슈퍼호황 언제까지 가나
세계 HBM 시장 1000억弗로 커져
D램 수요 2027년말까지 지속 전망
삼전·하이닉스는 사이클 이후 대비
'커스텀 HBM'으로 패권 수성 나서
사진=로이터/SK하이닉스.


“메모리 반도체가 인공지능(AI)산업의 판을 흔들고 있다.”(키뱅크)

“30년 만에 한 번 오는 ‘초호황’ 국면에 진입했다.”(UBS)

최근 글로벌 투자은행(IB)에서 나온 평가다. 메모리의 위상이 ‘규격대로 찍어내 저가에 파는 구형 반도체’에서 ‘고객 맞춤형으로 만드는 AI 서버 핵심 부품’으로 변화한 영향이 크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메모리 기업이 AI산업에 미치는 파급력도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기업 TSMC 못지않다. 고대역폭메모리(HBM) 공급량 부족 여파로 엔비디아의 최신 AI 가속기 ‘베라루빈’ 출시 일정이 밀릴 정도다.

 메모리 시장, 파운드리의 2.5배


60년 넘는 세계 반도체 역사에서 주류로 평가받은 건 중앙처리장치(CPU),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프로세서다. 1980~2000년대 PC 시대를 거쳐 2010년대 후반 스마트폰 전성기에 이르기까지 사용자의 명령을 빠르게 연산하고, 이를 기기에 구현하는 ‘두뇌’ 역할을 하는 반도체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인텔, AMD 등 프로세서 업체와 공장이 없는 업체의 주문을 받아 칩을 생산하는 TSMC가 중심에 선 이유다.

AI 시대에 접어들면서 판이 바뀌었다. 고성능 D램인 HBM, 낸드플래시를 활용한 데이터저장장치인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가 중심에 섰다.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학습·저장하고 꺼내 쓰는 ‘데이터 컴퓨팅’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이때 쓰이는 고성능·저전력 메모리를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빅테크의 AI 서비스 질을 좌우하고 있다.

 TSMC 뺨치는 메모리 위상

산업계에선 이런 변화를 ‘메모리 센트릭(중심) 시대’로 표현한다. 수치로 증명된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2023년 메모리 시장 규모(899억달러)는 파운드리(1259억달러)의 71% 수준이었다. 2026년엔 메모리 시장(5516억달러)이 파운드리(2188억달러)의 2.5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배경엔 HBM이 있다. D램을 수직으로 쌓아 데이터 처리 용량을 극대화하고 처리 속도도 끌어올린 제품이다. 생산 기간과 개발 난도가 일반 D램의 두 배 수준이지만 그만큼 높은 가격을 받는다. 지난해 기준 350억달러(약 50조원) 규모 HBM 시장의 80%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장악했다.

메모리가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변모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곳간에 돈이 쌓이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4분기부터 수익성 측면에서 TSMC를 넘어섰다. 삼성전자는 올 1분기 영업이익 57조2000억원을 거뒀다. 한국 기업 기준 역대 최대치다. 세계적인 테크기업 마이크로소프트(약 57조원), 구글(약 54조원)의 직전 분기 영업이익과 맞먹는 수준이다.

한국 메모리의 위상도 업계 ‘슈퍼을’로 불리는 TSMC급으로 올라갔다. 고객사 구매 담당 임원이 삼성전자 반도체 본사가 있는 경기 화성과 SK하이닉스의 D램 기지 이천에 진을 치고 ‘칩 좀 많이 달라’고 읍소할 정도다.

 전력효율 높은 메모리 중요

한국 메모리의 높아진 위상은 상당 기간 유지될 것으로 분석된다. 글로벌 HBM 시장은 2028년 1000억달러(약 148조원)로 커질 전망이다. 범용 D램 공급 부족으로 촉발된 메모리 시장의 슈퍼호황은 2027년 말까지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승부처는 그다음에 온다. AI 경쟁에서 승패가 갈리고 빅테크의 인프라 투자가 주춤해지면, 메모리산업에도 찬 바람이 불 수밖에 없다. 이때를 대비해 마이크론과 중국 기업이 따라올 수 없는 ‘제2의 HBM’을 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맞춤형’ 메모리 바람도 기성품 생산에 익숙한 한국 기업이 놓쳐선 안 될 부분으로 꼽힌다. 엔비디아, 구글 등은 지난해부터 특화 기능을 넣은 ‘커스텀 HBM’을 요구하고 있다. 메모리 시장 판도를 흔들 수 있는 변곡점이 다시 오는 셈이다. 이를 잘 아는 삼성전자는 GPU의 연산 기능 일부를 HBM이 담당하는 ‘삼성 맞춤형 HBM’을 개발 중이다.

반도체업계에선 2년 정도 이어질 슈퍼호황기를 한국 반도체 기업의 골든타임으로 본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호황의 달콤함에 취하지 말고 경쟁사와 격차를 벌릴 기회로 삼아야 한다”며 “협력사 생태계 구축에 공들이고, 국가적인 인프라 지원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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