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뿐인 ‘휴전’…이스라엘은 레바논 폭격, 이란은 걸프국 공격

천호성 기자 2026. 4. 10.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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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무차별 공습 이튿날인 9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의 폐허가 된 건물 앞에서 구조대의 중장비가 잔해를 치우고 있다. AFP 연합뉴스

이스라엘이 지난 8일(현지시각) 레바논 전역에 퍼부은 공습으로 인한 사망자가 300명을 넘어섰다. 영국, 독일, 스페인 등 각국 정상들은 이스라엘의 공격이 “용납할수 없는 행동”이라며 성토를 쏟아낸다.

전쟁 후 최대공습, 사상자 1400여명

르몽드에 따르면, 9일 저녁 레바논 보건부는 전날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303명이 사망하고 최소 1150명이 다쳤다고 발표했다. 전날 보건부 집계(182명 사망·890명 부상)보다 사상자가 더욱 늘어난 것이다. 보건부는 “여러 곳에서 잔해에 깔린 시신 수색이 계속 진행 중이며, 순교자(사망자)들의 신원 확인도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 공격은 이날도 계속됐다. 이스라엘군은 이날 엑스(X)에 아랍어 게시물을 올려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부 교외 주민들에게 긴급 경고한다”며 해당 지역을 폭격할테니 주민들은 떠나라고 요구했다. 이후 이스라엘군은 이날 저녁 레바논의 헤즈볼라 “사격 거점들”을 공격했다고 발표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이날 레바논과 직접 협상 방침을 발표했지만, 협상과 별도로 공격을 계속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 직후부터 북쪽 국경을 맞댄 레바논과 교전을 벌여왔다. 2024년 11월 휴전했지만 레바논 정부가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무장 해제 시키지 않는다며 이후에도 종종 레바논을 폭격했다. 특히 지난달 2일 미-이란 전쟁 이후엔 친이란 무장단체 헤즈볼라를 소탕한다는 빌미로 레바논 남부와 베이루트를 집중 공습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자국 북부의 안보가 회복될 때까지 헤즈볼라를 계속 때리겠다는 입장이다. 이스라엘 카츠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9일 타임스오브이스라엘 인터뷰에서 “헤즈볼라에 매우 강력한 타격을 가했다. 공격의 깊이와 규모에 그들이 혼란스러워 한다”며 “전날 200명 이상의 (헤즈볼라) 테러리스트가 제거돼 (이번 전쟁) 총 사살 인원이 1400명을 넘었다”고 주장했다. 민간인이 아니라 헤즈볼라를 겨냥해 폭격했다는 얘기다.

9일 레바논 베이루트의 라피크 하리리 대학병원에서 레바논 소녀 카디자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아버지의 장례식을 기다리고 있다. 그의 아버지인 엘셀룸은 전날 이스라엘군의 무차별 공습에 숨졌다. 카디자의 양뺨과 눈 주변에도 이날 입은 상처가 보인다. 로이터 연합뉴스

국제사회 “용납할 수 없어” “공격 중단해야”

반면 국제사회는 이스라엘 공습으로 민간인 피해가 걷잡을 수 없게 불어난다고 경고한다. 레바논 병원들은 입원실과 외상 치료용 키트 부족으로 기능이 마비될 위기다. 레바논 주재 세계보건기구(WHO) 대표인 압디나시르 아부바카르 박사는 이날 로이터 통신에 “일부 외상 처치 장비는 이미 재고가 바닥났고, 우리(병원)도 며칠 안에 완전히 소진될 수 있다”고 전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은 이스라엘을 향해 베이루트 남부 즈나흐 지역에 대한 대피 명령을 취소하라고 촉구했다. 거브러여수스 총장은 성명에서 “이 지역에는 라피크 하리리 대학병원과 자흐라 병원 등 두 개의 주요 거점 의료기관이 있다”며 “현재로선 다른 어떤 의료기관도 이 두 병원에 있는 중환자실 환자 40명 등 450여명의 환자를 수용할 수 없다. 이들의 대피가 불가능하다”고 호소했다. 이어 이곳 일대 병원들이 “현재 수용 능력을 가득 채운 상태로 운영되고 있으며, 특히 8일 공습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있다”고 알렸다. 라피크 하리리는 레바논 최대의 공공의료기관이다. 이스라엘은 지난 5일에도 이 병원 100m 거리에 폭탄을 날리는 등 즈나흐 지역을 폭격해, 최소 4명이 죽고 39명이 다친 바 있다.

무도한 공격을 멈추라는 세계 정상들의 규탄도 이어진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이날 영국 아이티브이(ITV)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의 계속된 레바논 공격에 대해 “용납할 수 없다”, “일어나서는 안 되고 중단돼야 한다”고 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레바논 남부 상황을 특히 우려하며 지켜보고 있다. 이스라엘이 그곳에서 벌이는 전쟁이 (미-이란 전쟁) 평화 논의 과정 전체를 실패하게 만들 수 있으며,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다른 여러 정상들처럼 자신도 “이스라엘 정부에 공격 격화를 중단하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앞서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8일 유럽연합(EU)에 이스라엘과 맺었던 협정을 파기하자고 요구했다. 그는 이스라엘이 국제법을 위반해 벌이는 “범죄 행위에 대한 면죄”를 끝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걸프국가들, 이란제 드론 공격받아…이란은 “공격 안해”

한편 걸프 국가들은 휴전 이틀째인 9일 이란제 드론·미사일 공격을 계속 받았다. 쿠웨이트군은 이날 엑스에 “영공을 침범해 여러 핵심 시설을 겨냥한 적대적 (이란) 드론 공격”이 있었다고 알렸다. 쿠웨이트 정부는 드론들이 군사시설 한 곳을 공격해 “중대한 피해를 초래했으나, 부상자는 없었다”고 했다.

다만 휴전 이후 드론이나 미사일을 쏘지 않고 있다는 게 이란군 공식 입장이다. 이란 반관영 타스님 통신은 이날 밤 이란 혁명수비대 성명을 인용해 “혁명수비대는 이란군이 휴전 동안 어떤 국가를 향해서도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이란이 걸프국을 공격했다는 언론 보도는 “의심의 여지 없이 적들, 즉 시오니스트 정권(이스라엘)이나 미국이 획책한 행동”이라며 가짜 뉴스라고 주장했다.

혁명수비대의 행동과 말이 다른 건 일선 부대들의 ‘독자 행동’ 때문일 수 있다. 혁명수비대는 지휘부가 공습 등에 붕괴돼도 작전 능력이 유지되도록 31개 지방 군단을 뒀다. 이들은 관할 구역 안에선 사령부 승인 없이도 군사 작전을 수행할 권한을 갖는다. 지휘부 방침과 무관하게 강경 노선의 부대가 미사일을 쏘거나 도발할 수 있는 것이다.

외교 전문매체 모던디플로머시는 “혁명수비대의 ‘모자이크식’ 방어 교리는 위기 상황에서 이란이 정치적 리더십을 더 잘 따르도록 설계된 게 아니다”라며 “이런 구조의 군은 대통령이 (휴전한다고) 연설한다고 해서 공격을 멈추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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