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63곳이 시총보다 투자부동산 많아…기업들 “유동성 위기 대비한 최후 보루” [시그널]
非업무용 부동산 108조
코스피 30곳·코스닥 33곳으로
부동산 > 시총…대부분 중견기업
BYC는 작년 R&D ‘매출 1%’ 이하
투자부동산은 시총 1.5배 가량돼
“M&A·혁신기술 투자해야” 지적 속
“업무·비업무 구분 쉽잖아” 신중론도
이 기사는 2026년 4월 10일 17:26 자본시장 나침반 '시그널(Signal)' 에 표출됐습니다.

국내 상장사들이 보유한 비업무용 부동산 가액이 2년 연속 100조 원을 넘어선 것에 대해 시장에서는 기업들이 영업과는 무관한 자산을 처분해 사업 확장이나 기업가치 제고(밸류업)를 위해 사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영업에 쓰이지 않는 부동산을 처분하면 연구개발(R&D)을 통한 사업 고도화나 인수합병(M&A)을 통한 신사업 진출에 나설 수 있음에도 이런 사례는 드물다는 것이다.
반면 기업이 보유한 부동산을 무조건적인 자본 효율성 저해 요소로만 보기는 어렵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부동산은 기업 경영 환경이 급변하거나 예기치 못한 업황 부진이 닥쳤을 때 이를 매각하거나 담보로 활용해 즉각적인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10일 서울경제신문이 트러스톤자산운용과 코스피·코스닥 상장법인 2554곳을 전수조사한 결과 63곳은 소유하고 있는 투자 부동산 가액이 시가총액보다 높았다. 코스피 시장에서는 813개의 주권상장법인 중 30개가, 코스닥 시장에서는 1745개 중 33개가 이런 사례에 해당했다. 투자 부동산 가액이 시총의 절반을 웃도는 경우도 159곳에 달했다. 이는 부동산투자회사(REITs·리츠)나 기업인수목적회사(스팩)를 제외해 지난해 사업보고서와 9일 종가 기준 시총을 바탕으로 집계한 결과다.
상장사가 보유한 투자 부동산 총액은 2024년 사업보고서상 109조 5884억 원으로 2년 연속 100조 원을 웃돌았다. 이는 단순 계산했을 때 SK그룹과 아마존웹서비스(AWS)가 7조 원을 들여 짓는 울산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15개를 짓고도 남는 수준이다.
투자 부동산은 영업 목적의 부동산인 유형자산과는 다른 개념으로 영업용 토지·건물·창고를 포함하지 않는다. 이재명 대통령은 9일 국민경제자문회의 1차 전체회의에서 기업들의 ‘비업무용 부동산’ 문제를 언급했는데 엄밀하게는 이와도 차이가 있다. 비업무용 부동산은 세법에서 규정된 개념으로 법인이 매입해 일정 기간 방치해두고 있는 토지를 뜻한다. 투자 부동산은 이보다 넓은 개념이지만 기업의 본업과는 무관한 자산이라는 점에서 개념이 유사하다.
금융 그룹을 제외하고 봤을 때 투자 부동산 가액이 가장 큰 상장사는 한화·KT·포스코홀딩스였다. 한화는 투자 부동산 장부 금액이 3조 6304억 원에 달했는데 이 중 일부는 미국에 소재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화는 미국에 한화 웨스트프로퍼티와 한화 프로퍼티유에스에이 유한회사(LLC) 등 현지법인을 두고 부동산에 투자하고 있다. KT와 포스코홀딩스는 투자 부동산 장부 금액이 각각 2조 8721억 원, 1조 6916억 원이었다.
소유 투자 부동산이 시총보다도 큰 기업들은 대부분 시총 1조 원 미만인 중견기업이었다. 코스피 상장사로 내복 제조가 주업인 BYC는 이날 종가 기준 시총이 2979억 원이지만 투자 부동산 가액은 4390억 원에 달했다. BYC는 서울 도심 요지 곳곳에 건물을 갖고 있다. BYC는 부동산을 장기간 보유하면서 R&D나 사업 확장에는 소극적이어서 일부 주주에게 비판을 받고 있다. BYC의 주가는 약 10년 동안 대부분 5만 원 이하 구간에 머물러 있는데 지난해 R&D를 위해 지출한 금액은 매출의 0.92%에 불과하다.
국내 상장사가 보유한 투자 부동산의 가치는 이번 집계 결과보다 클 것으로 전망된다. 대부분 기업은 현재 가치를 반영한 공정가치 모형이 아닌 취득 시 원가가 반영된 원가 모형에 따라 투자 부동산 가액을 추정하고 있어서다. 보유 투자 부동산이 시총의 5배에 달하는 이화산업은 자산 다수를 수십 년 전 매입했기 때문에 현재 가치를 기준으로 집계하면 배수가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BYC는 1983년 이후 공식적인 자산 재평가를 실시하지 않았다.
시장에서는 정부의 규제 강화에 앞서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부동산 자본을 생산적 분야로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증시에 상장하며 공모 자금을 받았고 다수의 주주를 둔 만큼 기업 본연의 생산적인 활동에 집중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윤상녕 트러스톤자산운용 인게이지먼트팀장(변호사)은 “일부 기업이 보유한 비영업용 투자 부동산은 자본시장 투자자들이 혁신 기술 등에 쓰라고 투자한 자본”이라며 “100조 원이 넘는 비영업용 부동산이 산업계 전반의 생산성을 저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에 반해 비영업용 부동산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고 세금 상향이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는 만큼 섣부른 규제는 지양해야 한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실제 과거 유동성 위기를 겪은 대기업들이 핵심 부동산 자산을 매각해 재무구조를 개선하거나 신규 투자 재원을 마련한 사례가 다수 존재한다. 결국 비영업용 자산의 처분을 압박하기보다는 기업 스스로가 자산 포트폴리오를 점검해 최적의 자본 배분 전략을 세울 수 있도록 유도하는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 일례로 KT&G는 최근 1~2년 새 보유하던 호텔 등의 부동산 자산을 차례로 매각하고 있으나 KT는 밸류에이션 차이를 좁히지 못해 유동화에 실패하기도 했다.
염명배 충남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기업의 부동산을 업무용과 비업무용으로 가르기가 쉽지 않고 유동성 위기가 닥쳤을 때 보유 부동산을 바탕으로 유동성을 확보하기도 하는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기업 소유 부동산에 고율의 세금을 물리는 정책은 단기 효과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덕연 기자 gravity@sedaily.com이충희 기자 midsu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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