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낙태죄’ 헌법불합치 7년, 여성 고통 외면하는 국회·정부의 직무유기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임신중지)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지 11일로 7년이 된다. 헌재가 권고한 입법 시한(2020년 말)에서 5년이나 지났는데도 국회는 여전히 ‘사회적 합의’를 핑계로 법안 처리에 뒷전이고, 정부는 입법 공백을 이유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입법부와 행정부의 방관 속에 여성들이 임신중지의 부담을 홀로 감내하다 건강과 생명을 위협받는 현실이 이어지고 있다.
국회의 입법 논의는 지지부진하기 이를 데 없다. 21대 국회(2020~2024년)에서 발의된 법안은 제대로 된 논의 없이 임기종료와 함께 폐기됐다. 22대 들어서도 임신중지가 가능한 임신 주수와 약물 허용 여부을 담은 모자보건법 등 개정안들이 상임위에 묶여 있는 상태다.
법적 진공상태가 의료현장의 혼란을 초래하면서 그 피해는 여성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다. 낙태죄는 폐지됐으나 합법적 의료행위의 기준이 없으니 병원들은 진료 자체를 기피한다. 임신중지 시술에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부르는 게 값인 고가의 수술비를 부담해야 한다. 비용 부담과 정보 부족으로 임신중지 시기를 놓친 뒤 검증되지 않은 약물을 음성적으로 구하는 여성들도 적지 않다. 임신 36주차에 낙태 수술을 받은 산모와 의료진이 실형 판결을 받은 사건도 따져 보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규정한 법이 만들어지지 않아 발생한 일이다.
입법 공백을 핑계 삼아 혼란을 방치하고 있는 정부의 직무유기는 더욱 심각하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임신중지를 보건의료 현안으로 다루기는커녕 “성평등가족부 소관”이라고 책임을 떠넘기거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변명만 되풀이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유산유도제(미프진) 도입 심사를 보류하고 있는 것은 노골적인 책임 방기다. 지난 30년간 안전하게 사용돼 왔고 세계보건기구가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한 약물을 종교계와 입법부 눈치를 보느라 심사조차 미루는 건 국가가 여성 건강권을 고의로 방치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당시 ‘유산유도제 도입 및 임신중지 의료체계 구축’을 국정과제로 삼았다. 그 약속을 지켜 임신중지를 국가가 책임지는 필수 의료서비스로 규정해야 한다. 복지부와 식약처는 임신중지 시술의 건강보험 적용과 안전한 유산유도제 도입을 즉각 추진하고, 국회는 대체 입법에 속도를 내야 한다. 안전한 임신중지 권리는 시민의 삶과 직결된 민생 의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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