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뒤에는 '새로운 미국' 설계자들이 있다

이병권 인문연구가 2026. 4. 10.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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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③]

2기 핵심 '빅테크 올리가르키' 신권위주의 기획

'낡고 비효율적인' 민주주의 내부로부터 허물어

국가 권력을 사적 충성 체계로 재편하려고 시도

정당성·신뢰 잃은 팍스 아메리카나는 내부 균열

국민 주권 외치는 '노 킹' 시위대가 남은 희망
도널드 트럼프의 이미지는 한 인물의 존재감을 보여줄 뿐, 그 뒤에 존재하는 권력 구조는 드러나지 않는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5년 6월 10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포트 브래그를 방문하여 미 육군 창설 기념일을 맞아 연설하기 위해 단상에 서 있다. 2025.6.10. 로이터 연합뉴스

많은 사람들은 오늘의 미국 정치를 여전히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1946~)라는 한 사람의 기행과 막말, 충동과 과장을 중심으로 이해하려 합니다. 물론 그것이 전혀 틀린 관찰은 아닙니다. 트럼프는 지금도 미국 정치의 가장 큰 소음이고, 가장 자극적인 정치적 얼굴이며, 가장 손쉽게 소비되는 권력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미국을 진짜 위험하게 만드는 곳은 그 얼굴의 기괴함에 있지 않습니다. 시선을 더 오래 붙들어야 할 곳은 그 뒤편에서 권력을 다시 설계하고 있는 구조입니다.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극우 포퓰리즘의 단순한 재등장이 아닙니다. 감정과 선동을 행정과 법률, 기술과 데이터, 군사와 감시의 체제로 번역하는 권력 재편의 과정입니다. 트럼프는 그 체제의 얼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체제를 굴리는 손과 머리는 훨씬 더 넓게 분포해 있습니다. 지금 더 주목해야 할 것은 그를 둘러싸고 결집한 새로운 지배 집단이며, 그 집단이 국가를 다루는 방식입니다. 오늘의 미국을 이해하려면 먼저 하나의 질문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지금 미국을 실제로 움직이고 있는 것은 누구인가.

■ 올리가르키는 언제나 시대의 지배 집단이었다

이 질문에 답하려면 하나의 오래된 개념을 다시 꺼내야 합니다. 올리가르키(oligarchy)입니다. 올리가르키는 단지 돈이 많은 상층 부유층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한 사회에서 막대한 자산과 권력, 정보와 제도 접근권을 집중적으로 장악하면서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소수 지배 집단을 뜻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기원전 384~322)는 이미 『정치학』에서 소수 부유층의 지배가 공공선을 훼손하는 정치 형태로 기울 수 있음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이 올리가르키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해 왔습니다. 고대 노예제 사회에서는 노예와 토지를 소유한 귀족 시민층이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중세 사회에서는 영주와 귀족, 봉건적 토지 지배층이 실질 권력을 움켜쥐었습니다. 산업자본주의 시대에는 공장과 생산수단을 장악한 산업자본가들이 새로운 올리가르키로 등장했습니다. 20세기 후반 금융자본주의가 세계를 지배하던 시기에는, 월가(Wall Street)를 중심으로 한 거대 금융자본가들이 사실상 세계 질서를 좌우하는 지배 집단으로 군림했습니다.

그런데 2010년대를 넘어서며 이 질서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애플(Apple), 구글(Google), 메타(Meta), 아마존(Amazon),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같은 빅테크 기업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부를 축적했고, 그 부는 시장 지배력이라는 익숙한 범주를 넘어섰습니다. 이들은 데이터와 알고리즘, 플랫폼과 클라우드, 인공지능과 위성통신을 장악하면서 전통적인 금융자본의 영향력마저 압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권력의 핵심은 이제 자산 규모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정보를 누가 장악하는가, 인간의 행동을 누가 예측하는가, 국가 기능을 누가 기술적으로 대체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로 옮겨갔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오늘의 미국은 빅테크 군산복합체형 올리가르키가 부상한 시대로 읽어야 합니다. 이들은 시장의 승자에 머물지 않습니다. 국가가 사람을 감시하고, 분류하고, 통제하고, 전쟁을 수행하는 방식 그 자체에 개입하는 새로운 지배 집단입니다.
실리콘밸리와 빅테크 기업, 그리고 데이터 인프라. 오늘날 권력은 더 이상 국회의사당이나 금융가에만 있지 않다. 데이터센터와 알고리즘, 플랫폼과 네트워크가 새로운 지배 구조를 형성한다.

■ 트럼프 1기와 2기는 같은 시대가 아니다

이 역사적 배경을 놓치면 트럼프 2기의 본질도 놓치게 됩니다. 트럼프 1기와 2기는 같은 이름 아래 놓여 있지만, 그를 떠받치는 권력 구조는 이미 크게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트럼프 1기는 스티브 배넌(Steve Bannon, 1953~)을 비롯한 극우 전략가들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누적된 대중의 분노와 백인 노동자 계층의 불안을 정치적으로 조직한 시기였습니다. 제조업 붕괴와 실업 증가, 러스트벨트(Rust Belt)의 공동화, 글로벌화에 대한 반감, 백인 중산층의 상대적 박탈감은 "이민자가 일자리를 빼앗아 갔다"는 단순하고 강력한 정치적 프레임으로 수렴되었습니다. 기독교 근본주의, 백인우월주의, 티파티(Tea Party), 반엘리트주의가 결합한 이 시기의 핵심은 감정의 동원과 대중의 결집이었습니다. 그래서 트럼프 1기의 핵심 이슈는 비교적 분명했습니다. 작은 정부, 외부 전쟁 개입 최소화, 국경 통제, 미국 제조업 부흥, 그리고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였습니다. 그 시기의 MAGA는 무엇보다 "내부의 적"을 설정하고, 그것을 통해 대중의 분노를 정치화하는 체제였습니다.

그러나 트럼프 2기 위에는 전혀 다른 권력 블록이 올라타고 있습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분노의 정치 그 자체보다, 그 분노를 발판 삼아 국가 시스템 전체를 다시 설계하려는 세력입니다. 곧 빅테크 올리가르키와 그에 결합한 행정·법률 설계자들입니다. 이들은 선거 승리에만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국가 기능과 통치 인프라를 장악하는 데 시선을 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트럼프 2기는 즉흥적 포퓰리즘의 연장선으로 읽기보다, 준비된 권위주의의 진입으로 보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 MAGA 내부의 균열은 무엇을 보여주는가

이 변화는 최근 MAGA 내부의 균열에서도 분명히 드러납니다. 트럼프 1기의 핵심 인사였던 스티브 배넌(Steve Bannon, 1953~)은 최근 이란전과 관련한 트럼프의 행보에 대해 공개적인 불만과 우려를 드러냈습니다. 실제로 최근 미국 보수정치행동회의(CPAC)를 둘러싼 보도들에서는, 트럼프가 오랫동안 MAGA 대중에게 약속해 온 반개입주의·반전주의 노선에서 이탈하고 있다는 불만이 보수 진영 내부에서 공개적으로 분출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가디언, 2026.3.29; 워싱턴포스트, 2026.3.26; AP, 2026.3.25). 이 장면은 중요합니다. 오늘의 트럼프 정권이 하나의 단일한 권력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권력 블록이 공존하는 불안정한 연합체임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한쪽에는 트럼프 1기의 연장선에 있는 MAGA 대중동원 세력이 있습니다. 이들은 여전히 이민자, 진보 도시, 대학, 언론을 '내부의 적'으로 설정하고, 국경 통제와 강경 단속, 문화전쟁을 핵심 의제로 삼습니다. 이들의 정치적 기능은 국내 대중 동원에 있습니다.

다른 한쪽에는 트럼프 2기에서 본격적으로 부상한 빅테크 올리가르키와 행정·법률 설계 세력이 있습니다. 이들은 군중의 흥분을 조직하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국가 시스템의 재설계와 기술 권력의 확대를 핵심 목표로 삼습니다. 이들의 정치적 기능은 국가 시스템 장악과 외부 확장에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최근 ICE와 국토안보부(DHS)를 앞세운 대규모 이민 단속과 강경 추방 정책은, 정책 그 자체의 층위를 넘어 트럼프 1기 MAGA 기반 세력에 대한 유화책이자 정치적 신호로 읽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최근 보도들은 트럼프 2기에서도 스티븐 밀러(Stephen Miller, 1985~)가 이민 단속 의제를 계속 주도하며, 강경 단속 노선을 실질적으로 설계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로이터, 2026.3.6; 로이터, 2026.3.25). 반면 베네수엘라, 이란 등 외부 갈등과 군사적 긴장은 다른 층위에서 읽어야 합니다. 그것은 외교정책이나 국익 수호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전쟁과 위기 관리의 과정에서 빅데이터, 감시 시스템, 인공지능 기반 전장 분석, 위성 통신, 무인 방어체계 같은 기술적 통치 수단을 확대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트럼프 체제는 내부적으로는 이민자와 시민사회를 겨냥한 배제와 통제를 강화하면서, 외부적으로는 전쟁과 안보 위기를 통해 빅테크 군산복합체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이중 권력 구조를 띠고 있습니다.
MAGA 집회와 보수 정치 행사 장면. 트럼프 1기의 대중동원 정치와 트럼프 2기의 기술·권력 재편은 동일하지 않다. 이 이미지는 내부에서 분열되고 있는 권력 블록의 긴장을 상징한다.

■ 왜 오늘의 빅테크는 과거의 기업과 다른가

이 대목에서는 오늘의 빅테크를 과거의 산업자본이나 금융자본과 같은 방식으로 이해하면 곤란합니다. 지금의 빅테크는 시장에서 성공한 기업이라는 익숙한 정체성 위에 머물지 않습니다. 통치 인프라와 전쟁 인프라를 공급하는 자본으로 변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팔란티어(Palantir Technologies), 안두릴(Anduril Industries), 스페이스X(SpaceX)는 그 대표적 사례입니다. 이들 기업은 데이터 통합, 감시, 위성 통신, 국경 감시, 무인 방어체계, AI 기반 분석과 표적화 기술을 통해 미국 국가안보 시스템과 점점 더 깊게 결합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팔란티어와 안두릴이 트럼프가 밀어붙이는 '골든 돔(Golden Dome)' 미사일 방어 구상 관련 소프트웨어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로이터, 2026.3.24).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이들 기업 다수가 실용주의 기업의 외피를 넘어 뚜렷한 우경화·극우화의 문화적 성향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트럼프 2기에 들어서며 실리콘밸리의 주요 투자자와 일부 빅테크 경영자들은 공개적으로 트럼프 진영과의 관계를 강화했고, 2024년 대선 국면에서도 샌프란시스코의 기술 투자자들이 트럼프를 위한 고액 모금 행사에 나섰습니다(로이터, 2024.6.7; 로이터, 2024.7.17; 파이낸셜타임스, 2024.5.24).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기술 엘리트주의와 서구 문명 우월주의, 그리고 "문명을 구원할 초인적 기술 엘리트"라는 자기 상상력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들 기업은 자신들의 프로젝트와 프로그램, 기업명에조차 이러한 상징 체계를 노골적으로 드러냅니다. 팔란티어(Palantir)는 톨킨(J. R. R. Tolkien, 1892~1973)의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모든 것을 보는 수정구슬"에서 이름을 따왔고, 안두릴(Anduril)은 같은 작품에서 아라고른(Aragorn)이 휘두르는 전설의 검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바이킹·게르만 신화, 중세 판타지, 마블식 초인 영웅 서사, "서구 문명 수호"의 상징을 기업 정체성과 프로젝트 명칭에 적극적으로 차용하는 문화는, 이들이 자신들을 문명적 구원자이자 전장의 선택된 엘리트로 상상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바이라인타임스, 2025.3.5; 와이어드, 2024.9.25). 이쯤 되면 오늘날 미국의 일부 빅테크 기업들이 극우 이념에 오염되었다는 지적은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이들은 민주주의의 느린 절차와 시민적 합의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기술적 효율, 엘리트 중심의 결단, 감시와 예측, 그리고 문명 충돌의 상상력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트럼프 2기의 진짜 위험이 선명해집니다. 위협의 핵심은 트럼프 개인의 기행이 아니라, 그 뒤에서 권위주의를 기술과 제도, 행정과 자본의 언어로 번역하는 사람들과 기업들입니다.

■ 혐오를 행정으로 바꾸는 사람들

이제부터 중요한 것은 "트럼프 주변에 누가 있는가"를 나열하는 일이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각각 어떤 기능을 맡고 있는가를 보는 일입니다. 트럼프 2기는 충성파의 단순 집합체라기보다, 서로 다른 영역의 설계자들이 모여 하나의 권위주의 체제를 분업적으로 구축하는 구조에 가깝습니다. 그 체제에서 누군가는 대중의 혐오를 행정 언어로 번역하고, 누군가는 기술을 통치 인프라로 바꾸며, 누군가는 법률과 제도를 통해 그것을 영속화하려 합니다.

그 출발점에 서 있는 인물이 스티븐 밀러(Stephen Miller, 1985~)입니다. 밀러는 흔히 트럼프의 강경 이민정책 참모 정도로 소개되지만, 그런 설명만으로는 그의 위험성을 다 포착하기 어렵습니다. 그는 보좌관의 자리에 머무는 인물이 아닙니다. 트럼프주의의 감정을 국가 행정의 언어로 번역하는 핵심 설계자입니다. 트럼프가 군중 앞에서 분노를 외치는 사람이라면, 밀러는 그 분노를 연방정부의 기능으로 바꾸는 사람입니다. 밀러의 세계관은 비교적 단순하지만, 바로 그 단순함 때문에 더 위험합니다. 그에게 이민자는 국경을 넘어온 사람이나 저임금 노동자에 그치지 않습니다. 미국 내부를 위협하는 존재, 곧 질서와 정체성, 국가적 통제력을 흔드는 "내부의 적"으로 자리 잡습니다. 이 관점에서 국가는 시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장치가 아니라, 위험을 선별하고 배제 대상을 추출하며 법적 언어를 통해 인간을 분류·추방·억류하는 행정기계로 바뀝니다.

그래서 밀러가 만드는 정책은 늘 같은 방향을 향합니다. 국경을 강화하고, 체류를 범죄화하고, 행정권을 확대하며, 지방정부와 시민사회의 자율성을 위축시키고, 연방 권력을 통해 사회를 위에서 통제하려는 방향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더 이상 노골적 독재의 언어로만 추진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늘의 권위주의는 예전처럼 헌법을 대놓고 부정하는 방식만으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법 조항의 해석을 바꾸고, 행정기관의 재량권을 넓히고, 판례의 틈을 이용하며, 국가 기능을 "정상적 집행"처럼 보이게 만드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이런 점에서 밀러는 극우 선동가에 머물지 않습니다. 행정국가의 기술을 이해하는 권위주의자입니다.

실제로 최근 미국 언론은 그가 ICE와 국토안보부(DHS)를 중심으로 한 강경 단속 노선을 사실상 계속 주도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로이터, 2026.3.6; 로이터, 2026.3.25). 이것은 정책 강경화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날 미국 국가가 누구를 시민으로 보호하고, 누구를 행정적으로 제거 가능한 존재로 분류하는가의 문제입니다. 이렇게 보면 스티븐 밀러(Stephen Miller, 1985~)는 트럼프 2기에서 MAGA 1기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핵심 장치이기도 합니다. 그는 1기적 기반 세력이 중요하게 여기는 국경, 질서, 추방, 문화전쟁의 상징을 국가 권력의 형태로 지속시키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그는 트럼프 1기와 2기를 이어주는 인물이면서, 그 연결을 통해 혐오를 제도화하는 사람입니다.

■ 민주주의보다 기술 엘리트를 더 신뢰하는 사람들

그러나 오늘의 미국 권위주의가 밀러 같은 인물만으로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배제의 행정만으로는 현대 권위주의가 충분히 작동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기술과 데이터, 감시와 예측, 그리고 민간 기술기업의 인프라가 결합해야 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피터 틸(Peter Thiel, 1967~)이라는 이름이 등장합니다. 피터 틸은 실리콘밸리의 억만장자라는 소개만으로는 설명이 끝나지 않는 인물입니다. 그는 오늘날 미국의 기술 엘리트주의를 상징하는 가장 선명한 사례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의 사상적 핵심은 비교적 분명합니다. 그는 대중 민주주의의 느리고 복잡한 합의 구조보다, 더 빠르고 더 효율적이며 더 집중된 의사결정 체계를 선호해 왔습니다. 다시 말해 민주적 통제보다 기술적 통제와 엘리트 주도 질서에 더 큰 신뢰를 두는 세계관을 오래도록 드러내 왔습니다.

이 세계관은 겉으로는 "혁신", "효율", "문제 해결"이라는 언어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풀어 보면, 그것은 시민을 주권적 판단의 주체로 보기보다 관리와 최적화의 대상으로, 곧 데이터로 환원 가능한 객체로 바라보는 시선과 맞닿아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사회는 토론과 갈등, 권리와 대표성의 공간이 아니라, 수집 가능한 정보와 예측 가능한 행동, 알고리즘적으로 관리 가능한 흐름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피터 틸의 영향력은 재벌의 후원이나 정치 헌금의 수준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는 미국 보수 권력과 기술기업, 국가안보 장치, 그리고 차세대 통치 인프라를 연결하는 결절점에 서 있습니다. 그의 이름이 특히 중요해지는 이유는, 그가 생각만 가진 인물이 아니라 그 생각을 실제 국가 시스템 안에 이식할 수 있는 기업과 인맥, 자본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트럼프 2기와 함께 부상한 인물들은 피터 틸 한 사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J. D. 밴스(J. D. Vance, 1984~)는 트럼프 진영 안에서 빅테크-우파 포퓰리즘의 정치적 연결 고리에 가까운 인물입니다. 그는 한때 러스트벨트의 몰락과 백인 노동계층의 상처를 대변하는 인물처럼 소비되었지만, 실제로는 피터 틸의 후원과 네트워크 속에서 성장한 정치인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트럼프 1기의 대중적 언어와 트럼프 2기의 기술 엘리트 자본이 어떤 방식으로 하나의 정치적 연합으로 묶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인물입니다.

또 다른 중요한 인물은 커티스 야빈(Curtis Yarvin, 1973~)입니다. 그는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정치인은 아니지만, 오늘날 미국의 테크 우파와 반민주주의적 권위주의 상상력에 사상적 자양분을 공급해 온 인물입니다. 그의 세계관은 대체로 일관됩니다. 민주주의는 비효율적이고 무능하며, 보다 집중된 권력과 기술 엘리트 중심의 질서가 사회를 더 잘 운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유는 오늘날 일부 실리콘밸리 투자자들과 테크-보수 엘리트 집단 안에서 결코 주변적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보면 트럼프 2기의 위험은 "우파 정치인들이 기술자본의 도움을 받는다"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민주주의 자체를 낡고 비효율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기술 엘리트주의가 국가 권력과 결합하고 있다는 사실이 훨씬 중요합니다.

■ 법률과 행정을 통해 권력을 영속화하려는 사람들

이 체제는 감정과 기술만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법률과 행정의 언어를 통해 제도화되어야 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러셀 보트(Russell Vought, 1976~) 같은 인물들이 중요해집니다. 러셀 보트는 트럼프 2기의 핵심 정책 설계와 연방정부 재구조화 구상에서 중심축 역할을 해온 인물입니다. 그가 중요한 까닭은 보수 싱크탱크 출신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대통령 권한의 극대화, 연방 관료제 장악, 행정기관의 충성화와 정치화를 체계적으로 설계해 온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연결되는 곳이 바로 Project 2025입니다. 이 문서는 보수 정책집이라는 통상적 범주를 넘어섭니다. 누가 요직을 차지할 것인가, 어떤 부처를 어떻게 재편할 것인가, 어떤 법률 해석과 행정명령을 통해 국가 기능을 재배치할 것인가를 사전에 준비해 둔 권위주의 운영 매뉴얼에 가깝습니다. 이쯤 되면 트럼프 2기는 우연한 혼란이나 즉흥적 충동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문서와 인사, 소송과 행정명령, 기술기업과 데이터 인프라까지 준비된 체계적 권위주의의 성격을 띱니다. 이런 점에서 러셀 보트는 참모의 자리에 머물지 않습니다. 트럼프 2기를 제도적으로 영속화하려는 사람입니다.

■ 오늘의 권위주의는 서버와 알고리즘의 형태로 작동한다
감시 카메라, 위성, AI, 드론 등 기술 통치 인프라. 오늘의 권위주의는 더 이상 제복과 탱크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것은 데이터, 알고리즘, 그리고 보이지 않는 감시 체계로 작동한다.

이제 남는 질문은 하나입니다. 이 모든 인물들과 기업, 정책과 문서는 어떻게 하나의 체제로 결합하는가. 답은 분명합니다. 오늘의 권위주의는 더 이상 제복과 구호만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서버와 데이터베이스, 감시 시스템과 알고리즘, 위성과 AI의 형태로 작동합니다. 앞 절에서 살펴본 빅테크 기업들이 중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은 단지 막대한 자본을 가진 기업이 아니라, 오늘의 국가가 사람을 식별하고 분류하고 감시하고 통제하는 기술적 조건을 공급하는 존재들입니다. 팔란티어(Palantir Technologies), 안두릴(Anduril Industries), 스페이스X(SpaceX)는 그 체제의 기술적 공급자들입니다. 이들은 국가를 대신해 정보를 수집하고, 대상을 분류하고, 위험을 예측하고, 국경을 감시하고, 전장을 데이터화하는 기능을 수행합니다. 과거의 군산복합체가 탱크와 전투기, 미사일을 팔았다면, 오늘의 빅테크 군산복합체는 감시와 예측, 표적화와 자동화된 통치기술을 팝니다. 그 순간 민주주의의 위기는 선거 절차의 문제만으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누가 데이터를 소유하고, 누가 분류 기준을 만들며, 누가 통치 인프라를 설계하는가의 문제가 더 깊은 층위에서 떠오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트럼프 2기의 진짜 위험이 다시 드러납니다. 위협의 본체는 트럼프 개인 한 사람보다, 그 뒤에서 혐오를 정책으로, 기술을 통치로, 법률을 영속적 권력으로 바꾸는 사람들과 기업들입니다.

■ 트럼프와 미국이 잃은 것들

이쯤에서 우리는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트럼프 2기의 핵심 인물들과 빅테크 올리가르키가 지금 미국 안팎에서 벌이고 있는 이 거대한 권력 재편은, 과연 무엇을 얻기 위한 것일까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미국은 무엇을 잃고 있을까요. 그들은 더 많은 권한, 더 넓은 시장, 더 깊은 국가 접근권을 원합니다. 트럼프는 더 강한 대통령 권한을 원합니다. Project 2025는 사실상 초법적 수준의 대통령 권한 강화, 연방 관료제의 충성화, 의회와 법원의 견제를 우회하는 행정권의 극대화를 지향합니다(브레넌센터, 2024.7.10; 헤리티지재단 관련 자료). 빅테크 올리가르키는 더 넓은 시장과 더 많은 데이터, 더 강한 감시 권한과 더 깊은 국가 접근권을 원합니다. 통치 인프라와 군사 인프라, 위성 통신과 인공지능, 국경 감시와 전장 자동화까지 자신들의 기술과 자본으로 장악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더 많은 것을 움켜쥘수록, 미국은 더 근본적인 것들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흔들리는 것은 국민주권(popular sovereignty)입니다. 민주공화국에서 주권은 원래 국민에게 있습니다. 대통령은 그 주권의 위임을 받은 공직자일 뿐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트럼프는 점점 더 스스로를 행정부 수반의 자리보다 높은 곳에 두려 합니다. 의회와 법원, 관료제와 국제규범 위에 군림하는 예외적 권력의 중심처럼 행동합니다. 그는 각종 행정명령을 통해 의회의 통제를 우회하고, 법원의 판결과 헌법적 견제를 정치적 방해물처럼 취급하며, 국가 권력을 사적 충성의 체계로 바꾸려 합니다. 이 움직임은 강한 지도자 정치라는 말로는 부족합니다. 민주공화국의 원리와 양립하기 어려운 권위주의적·준전제적 권력 구조에 대한 욕망이 훨씬 정확한 표현입니다. 실제로 트럼프 2기를 둘러싼 법률·행정 네트워크가 지향하는 바는 분명합니다. 대통령을 공화국의 헌정적 기관으로 두는 것이 아니라, 행정부 전체를 사실상 한 사람의 정치적 의지에 종속시키는 방향입니다. 칼 슈미트(Carl Schmitt, 1888~1985)가 말한 "예외상태에서 누가 결정하는가"라는 질문은 오늘의 미국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습니다(칼 슈미트, 『정치신학』). 그리고 트럼프 2기 권력 구조는 그 질문에 점점 더 위험한 방식으로 답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비어 가는 것은 민주주의의 내용물입니다. 민주주의는 선거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권력분립, 법치, 견제와 균형, 공론장, 제도적 신뢰, 시민의 실질적 통제 속에서만 살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미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은 민주주의의 외형을 남겨둔 채, 그 내부를 권위주의적 통치 논리로 바꾸어 가는 과정입니다. 선거는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의회도 형식상 존속할 수 있습니다. 법원도 겉으로는 기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 권한이 무한정 팽창하고, 행정기관이 충성 경쟁의 대상이 되며, 기술기업이 통치 인프라를 공급하고, 시민이 점점 더 데이터와 감시의 대상으로 재구성되는 순간, 민주주의는 빠른 속도로 내용을 잃어갑니다.

그와 함께 미국이 세계에 제공해 왔던 정당성의 언어도 빠르게 소진되고 있습니다. 미국은 오랫동안 위선적이든 진심이든, 적어도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과 법치, 국제질서 수호를 자기 정체성의 일부로 주장해 왔습니다. 미국이 전후 세계질서를 유지해 온 힘은 군사력과 달러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스스로를 "예측 가능한 규칙과 제도를 지키는 국가"로 보이게 만들었다는 점이 훨씬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미국은 그 신뢰를 스스로 허물고 있습니다. 전후 80년 동안 어렵게 유지되어 온 국제연합(United Nations)과 국제인권선언(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의 기본 합의는 점점 더 공허한 문구처럼 취급되고 있습니다. 힘이 정의를 대체하고, 국제규범이 거래와 압박의 수단으로 전락하며, 동맹과 파트너십은 공동의 가치보다 단기적 복종과 이익에 따라 재편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외교 노선의 변화에 그치지 않습니다. 미국이 스스로 세계에 제공해 왔던 정당성의 언어를 해체하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침식되는 것은 패권의 장기적 기반입니다. 트럼프와 미국의 올리가르키는 더 큰 지배력과 더 지속적인 통제를 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들이 파괴하고 있는 것은 바로 미국 패권을 지탱해 온 가장 중요한 기반일 수 있습니다. 미국 패권은 항공모함과 핵무기, 달러 결제망만으로 유지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제도에 대한 신뢰, 법치에 대한 신뢰, 달러에 대한 신뢰, 동맹 네트워크, 그리고 미국이 최종적으로는 규칙을 지키는 나라일 것이라는 예측 가능성 위에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트럼프 2기와 빅테크 올리가르키는 바로 그 기반을 안에서부터 허물고 있습니다. 더 강한 힘을 원하면서도, 그 힘을 떠받쳐 온 신뢰와 정당성을 동시에 파괴하고 있는 셈입니다.

■ 팍스 아메리카나의 자기잠식

결국 오늘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것은 트럼프라는 한 정치인의 일탈만으로 설명되기 어렵습니다. 미국이 스스로 자신이 구축해 온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의 기반을 균열내고 있는 과정으로 읽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역사상 모든 제국은 외부의 적 때문에만 몰락하지 않았습니다. 더 자주 제국을 무너뜨린 것은 내부에서 시작된 자기잠식이었습니다. 로마 제국은 군사력만으로 유지되지 않았습니다. 그 질서가 예측 가능하고, 일정한 규범과 제도를 제공한다고 주변 세계가 받아들였기에 오래 버틸 수 있었습니다. 몽골 제국도, 페르시아 제국도, 스페인의 제국도, 영국의 대영제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들 제국은 서로 달랐지만 하나의 공통점을 지녔습니다. 자기 통제력과 외부 세계의 신뢰를 동시에 잃어갈 때 지배력을 상실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그 점에서 오늘의 미국도 예외가 아닙니다. 미국은 오랫동안 압도적 군사력과 달러 패권만으로 세계를 움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도와 예측 가능성, 법치와 국제규범, 동맹과 신뢰라는 보이지 않는 기반 위에서 세계 질서를 유지해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트럼프 2기와 빅테크 올리가르키가 추구하는 권력 구조는 바로 그 기반을 안에서부터 허물고 있습니다.

국민주권은 약화되고, 민주주의는 비워지며, 국제적 신뢰는 무너지고, 전후 80년간 어렵게 구축된 국제질서의 합의는 휴지조각처럼 취급되고 있습니다. 미국은 더 큰 힘을 원하지만, 그 힘을 떠받쳐 온 정당성과 신뢰를 동시에 잃고 있습니다. 바로 이 점에서 오늘의 미국은 팍스 아메리카의 정점이 아니라, 자기균열의 순간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 아직 끝나지 않은 미국
"No Kings"를 외치는 미국 시민들의 거리 시위. 권력은 위로부터만 구성되지 않는다. 이 장면은 미국이 무엇을 잃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아직 완전히 잃지 않은 것을 상징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미국의 완전한 종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미국이 지금 무엇을 잃고 있는지는, 그 잃어버린 것을 되찾으려는 시민들의 외침 속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최근 미국 전역에서 수백만 명의 시민들이 "No Kings"를 외치며 거리로 나왔습니다(가디언, 2026.3.28; AP, 2026.3.29). 그 구호는 반트럼프 구호에 그치지 않습니다. 미국 시민들이 여전히, 이 나라가 왕의 나라가 아니라 공화국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어쩌면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을 지키려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주권은 대통령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시민에게 있다는 사실, 국가는 자본과 기술 엘리트의 사적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 민주주의는 효율보다 느릴 수 있지만 바로 그 느림 속에서만 인간의 자유와 존엄이 지켜질 수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결국 남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트럼프와 미국의 올리가르키는 더 강한 지배력과 더 지속적인 통제를 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이 진정으로 얻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들이 잃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지배력은, 미국이 잃어버린 신뢰와 정당성 없이 과연 오래 지속될 수 있겠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입니다. 오늘의 미국은 세계를 다시 지배할 방법보다, 먼저 자기 자신을 다시 다스릴 수 있는가를 시험받고 있습니다.

<참고 문헌>

1. 이론 및 개념

, 『정치학』.

Jeffrey A., Oligarchy.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1.

2. 제도·정책·권력구조 분석

Brennan Center for Justice, "A Dangerous Vision for the Presidency," 2024.07.10.

Brennan Center for Justice, "Project 2025's Plan for Criminal Justice Under Trump," 2025.01.29.

Brennan Center for Justice, "What's Next for Elections Under the Project 2025 Agenda," 2025.04.29.

3. 트럼프 2기와 빅테크·실리콘밸리 우경화

Reuters, "Trump courts Silicon Valley donors and tech elites" 계열 보도, 2024.06.07, 2024.07.17, 2026.03.24, 2026.03.25.

Financial Times, "Silicon Valley elite warms to Donald Trump," 2024.05.24.

Wired, 실리콘밸리·디펜스테크·기술우파 문화 관련 보도, 2024.09.25.

Byline Times, 팔란티어·안두릴·기술엘리트 문화 관련 보도, 2025.03.05.

4. MAGA 내부 균열·이란전·시민 저항

Reuters, 스티븐 밀러와 이민정책, 트럼프 2기 권력구조 관련 보도, 2026.03.06.

Washington Post, "As Trump skips CPAC, MAGA's rifts over Iran war are on display," 2026.03.26.

AP, "Dozens arrested after 'No Kings' rally in Los Angeles," 2026.03.29.

The Guardian, "Trump news at a glance: Generational divide over Iran war emerges at key conservative conference," 2026.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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