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천사가 될수 있다" 교황청에 맞선 24살 청년
세계의 모든 사상 아우르며
서로 연결된 보편 진리 추구
"지식만으로 세속 초월 가능"
교황청과 충돌끝 비극적 최후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 남겨

살다가 한 번쯤은 스쳤을, 라파엘로의 회화 '아테네 학당'은 철학자 58인의 얼굴을 한 화면에 담아낸 명화다. 라파엘로는 검지를 뻗어 하늘을 찌르듯 가리키는 플라톤과 손바닥을 넓게 펴 땅을 헤아리는 아리스토텔레스를 화면 중앙부 좌우에 각각 위치시켰다. 굵직한 책에 뭔가를 쓰는 피타고라스는 하단 좌측에, 컴퍼스로 원을 그리는 유클리드는 하단 우측에 보인다.
가로 7m, 세로 5m짜리 저 역사적인 그림을 자세히 보면 유독 눈길을 사로잡는 인물이 보인다. 피타고라스 바로 옆에 서 있는, 흰옷을 입은 장발의 인물 말이다. 그는 마치 우리에게 아직 할 말이 남아 있다는 듯이 정면을 쳐다본다.
연구와 정설에 따라 해석이 엇갈리긴 해도, 그는 조반니 피코 델라미란돌라(1463~1494)로 추정된다. 인간이 무엇인지를 질문하면서 '철학과 신학의 화해'를 추구한 선구자란 점에서 피코가 '아테네 학당'의 한자리를 차지할 자격이 있다는 점을 부인할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유럽의 르네상스를 열어젖힌 피코의 삶과 죽음을 다룬 신간 '천사들의 문법'이 번역 출간됐다. 인공지능(AI)으로 인간 존재에 의문이 깃드는 시대, 분열된 세계가 어떻게 조화를 이뤄야 하는지 알지 못해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암시적인 답변을 우리에게 주는 책이다. 피코를 끝내 죽음에 이르게 만든 '900개 논제'에서 긴 이야기는 시작된다.

때는 1486년, 스물네 살의 청년 피코가 로마에 들어선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이탈리아 석학을 전율시킨 신동이었다. 위대한 학자들조차 '링 위에 선 권투선수를 소개하는 장내 아나운서'의 말투로 피코를 치켜세웠다. 피코는 자신이 만든 900개 논제를 배포하면서 당대 학자들과의 토론을 요청했다. "누구든 도전한다면 기꺼이 응수하겠다. 나의 900개 논제에 세상이 담겨 있다."
이전과 차별화된 피코의 사상은 이러했다. 당시 이탈리아에는 세계의 모든 지식이 유입되던 중이었다. 피코는 지식을 쓸어 담아 '보편'으로서의 완전한 지식을 도출하겠다는 포부를 품었다. 히브리어, 아랍어, 라틴어, 고대 셈어, 고대 카데아어, 에티오피아어 등을 섭렵한 피코는 플라톤주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 기독교 신학, 유대 신비주의(카발라), 아랍 사상까지 아우르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 결과 피코의 결론은 이러했다. "이 세상의 수많은 지식에는 보편적인 진리가 숨겨져 있다. 완전히 동떨어진 시대, 또 너무 멀어 보이는 장소에서도 우리와 똑같은 직관과 신념이 발견된다. 진리는 여러 전통과 유산 속에 흩어져 있어도 서로 연결된다."
피코는 여러 대륙에 혼재됐던 사상의 통합을 일군 르네상스 최초의 인물이었다. 심지어 그의 철학은 신학과의 통합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900개 논제'는 그러므로, 고작 스물네 살의 청년이 이룬 사상적 성취의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피코의 과감한, 일견 오만해 보이는 시도는 교황청의 반발을 샀다. 특히 그가 주장했던 '천사론'은 당대 신학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제였다.
특히 피코는 인간을 '천사'가 될 수 있는 존재로 봤다. 그가 말한 천사는 물론 우리가 이해하는 그 천사는 아니었다. 신의 계시를 전하는 날개 달린 유령이 아니라 지식을 흡수하고 학문에 깃든 신비를 간파해 인간이 세속을 넘어선 초월자로 자리 잡을 수 있음을 설명하기 위한 단어였다. 인간은 연약한 육체를 지닌 인간이지만 '천사'가 되면 영원을 경험하게 된다. 그건 '인간의 인간 됨'을 압축하는 말이었다.
그의 가장 유명한 논문은 '존재와 일자(一者)에 관하여'로 전해진다. 이 논문은 "원질료는 무한히 나눠지기에 무수히 많지만, 만물의 존재를 보장할 존재의 원리로서 하느님이나 일자가 필요하다. 수렁에서 다시 올라오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탈출용 사다리가 남겨져 있다"로 요약 가능할 것이다. 탈출용 사다리는 궤도에 갇힌 인간을 구출하는 다른 말이다.
하지만 피코의 주장은 교황청의 반발을 불러왔다. 인간이 인간의 조건을 넘어설 수 있다는 주장은 신의 피조물임을 부정하는 일과 같았다. 종교재판의 판관들은 "독실한 신자들이 듣기엔 불미스럽고 모욕적이며 거룩한 교회의 관례에 반한다"고 피코에게 쏘아붙였다. 피코는 지지 않고 청문회에 불참한 뒤 20일에나 걸쳐 '해명서'를 작성해 인쇄하면서 교황청에 맞섰다.
그러나 주장은 수용되지 못했고 피코는 결국 수수께끼 같은 죽음을 맞이한다. 그의 나이 서른한 살, 비소 독살이었다.
마지막 장에 이르면 이 책은 '인간은 스스로를 직접 정의할 수 있을까' 혹은 '나와 타인의 다른 세계관은 서로 화해할 수 없는가'란 질문을 건넨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지금 이 순간의 우리를 향한 우회적인 질문과 같다.
수련과 학습을 통해 더 높은 초월이 가능한 존재로 인간을 정의한다면 인간은 인간으로 머물지 않는다. 이를 위해 나의 세계와 타인의 세계가 일치화할 수 있다면 현재의 갈등과 균열도 봉합 가능하다. 인간은 완결된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를 형성해가는 존재이며, 타인을 배제한 채 나만 독점하는 진리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그것이 이 책의 궁극적인 답변이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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