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혹성탈출'이 현실?…30년 추적 연구로 밝힌 침팬지 '집단 내전'

침팬지 집단이 내부 갈등 끝에 두 파벌로 갈라져 서로를 공격하는 '내전'을 벌인다는 사실이 30년간의 추적 연구로 밝혀졌다.
에런 샌델 미국 텍사스대 오스틴캠퍼스 교수·존 미타니 미시간대 교수 등 연구팀은 우간다 키발레 국립공원 침팬지 집단을 30년간 관찰한 결과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9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침팬지는 먹이·짝짓기·서열을 둘러싸고 격렬하게 싸우지만 한 집단이 둘로 갈라져 서로를 죽이는 '내전'은 극히 드물다.
1970년대 탄자니아 곰베 국립공원에서 고(故) 제인 구달이 연구하던 침팬지 집단이 분열한 뒤 한쪽이 다른 쪽 수컷 6마리와 암컷 1마리를 모두 죽인 사례가 보고된 바 있지만 당시 연구자들이 침팬지에게 바나나를 먹이로 줬다는 점에서 행동이 교란됐을 가능성이 제기돼 논란이 됐다. 유전자 분석에 따르면 침팬지 집단의 영구적 분열은 500년에 한 번꼴로 일어날 만큼 희귀한 사건이다.
연구팀은 1995년부터 우간다 키발레 국립공원 응고고(Ngogo) 지역에서 침팬지를 추적했다. 한때 200마리 이상이 모여 살던 침팬지 집단은 지금까지 연구대상이 됐던 침팬지 집단 중 가장 큰 규모다. 처음에는 '중앙군'과 '서부군'으로 나뉘어 있었지만 두 집단은 자유롭게 어울리고 집단 간 짝짓기도 활발히 이뤄졌다.
분열은 2015년 6월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두 집단이 영역 중간에서 만났을 때 중앙군이 서부군을 쫓아버렸고 이후 두 집단은 서로를 피하기 시작했다. 2017년에는 서부군이 중앙군 우두머리 수컷을 공격해 부상을 입혔고 2018년부터 2024년 사이에는 서부군 수컷들이 중앙군 성체 수컷 7마리와 새끼 17마리를 살해했다.
갈등의 원인은 먹이 부족이 아니었다. 숲에는 여전히 먹이가 풍부했다. 연구팀이 주목한 첫 번째 원인은 집단이 너무 커진 것이다. 집단이 200마리 이상으로 불어나면서 개체들 사이의 유대가 약해지고 하나의 집단으로 결속하기 어려운 상태가 됐다.
두 번째 원인은 집단 내 갈등을 중재하던 핵심 수컷들의 잇따른 죽음이다. 침팬지 집단에서 영향력 있는 성체 수컷들은 개체 간 다툼이 생겼을 때 개입해 싸움을 말리거나 긴장을 누그러뜨리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분열 직전인 2014년 이런 역할을 하던 성체 수컷 5마리가 약 한 달 사이에 잇따라 죽으면서 두 집단 사이의 갈등을 조율할 수 있는 개체들이 한꺼번에 사라졌다.
짝짓기 경쟁도 한몫 했다. 원래 두 집단은 자유롭게 어울리며 집단을 넘나드는 짝짓기가 활발했다. 분열 전 어느 시점부터 중앙군 수컷들이 서부군 암컷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되면서 중앙군 수컷들의 번식 기회가 줄어들었다. 연구팀은 줄어든 기회가 두 집단 간의 적대감에 불을 지폈을 것으로 분석했다.
이번 연구는 침팬지도 내전을 벌인다는 것을 처음으로 명확히 입증했다. 한 집단에서 수십 년을 함께 살던 개체들이 종교도 이념도 없이 오직 관계의 변화만으로 서로를 죽이는 적이 됐다. 수적으로 열세였던 서부군이 오히려 공격을 주도했다는 점도 주목된다. 머릿수보다 오랜 시간 함께 쌓은 결속이 더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연구팀은 이번 결과가 인간의 집단 갈등을 이해하는 데도 시사점을 준다고 밝혔다. 기존에는 인간의 내전이나 집단 폭력을 민족·종교·정치 같은 문화적 대립으로 설명하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이념이 전혀 없는 침팬지에서도 같은 과정이 일어난다면 인간의 많은 갈등도 이념이 아닌 개인적 요에서 시작됐을 수 있다는 해석이다.
연구팀은 침팬지와 인간의 전쟁을 완전히 연결하는 데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밝혔다. 연구팀은 "침팬지는 언어가 없어 복수를 계획하거나 갈등을 조직적으로 확대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인간의 전쟁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밝혔다.
<참고>
DOI: 10.1126/science.adz4944
[임정우 기자 jjw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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