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와 경기 사이, 결론은 ‘금리 동결’…“중동 사태 전개, 내가 어찌 알겠나”

“(중동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제가 예상하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어떻게 알겠습니까 제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0일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회의를 마친 뒤 이어진 기자간담회에서 이처럼 말했다. 지난달부터 이어진 중동 사태로 인한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가능성을 묻는 말에 대한 답변이었다. “지금 이란사태가 종결되면 가능성이 작다. 그런데 2주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정말 예측 불가능하니까,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간다면 (가능성을) 부인하기 어렵겠다”고 한 뒤 덧붙인 말이다.
이날 금통위는 올해 세 번째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를 열어 기준금리를 현 수준인 연 2.50%로 유지하기로 만장일치 결정했다고 밝혔다. 고환율·고유가라는 이중고에 직면한 국내경제 상황에 일각에선 통화정책 긴축(금리 인상) 가능성도 제기됐으나, 결국 한은이 내놓은 답은 ‘일곱 차례 연속 기준금리 동결’이었다.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전황 앞에서 신중한 통화정책 운용으로 금융 안정성을 맨 앞에 놓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한은도 고환율·고유가에 따른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입장이었다. 이날 한은은 국내 물가를 진단하며 지난달 소비자물가가 1년 전보다 2.2% 오르고 이 중 석유류 가격이 10% 가까이 급등하며 전체 물가를 끌어올린 점을 지적했다. 이 총재는 “인플레이션 리스크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올해 물가상승률은 지난 2월 전망치 2.2%를 상당폭 상회할 것으로 예상했다. 반면 에너지 가격 상승과 공급 차질로 성장세는 둔화할 것으로 예상했다. 금통위는 반도체 업종이 뒷받침하고,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을 집행한다고 해도, 올해 성장률은 지난 2월 전망치 2.0%를 하회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럼에도 한은은 기준금리를 동결하며 현시점의 중동 사태는 일시적 충격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 총재는 모두발언에서 “공급충격에 따른 통화정책 운용의 기본 원칙은 명확하다. 충격이 일시적일 경우엔 금리 조정으로 대응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충격이 장기화할 경우엔 정책적 대응이 필요하단 것인데 “현시점에선 중동 상황이 어느 방향으로 전개될지 판단이 어렵다”고 유보했다.
이 총재의 취임 첫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졌을 땐 적극적으로 통화정책(금리 인상)을 펼쳤던 것과 대비되는데, 이에 대해선 “당시엔 팬데믹 기간 중 억눌렸던 수요가 확대되며 경기가 빠르게 회복되는 국면에 있었다”고 설명했다. 반면, 이번 사태의 경우 중동산 원유 수입 비중이 높은 아시아 지역이 타격을 더 크게 받고 있어 물가뿐만 아니라 경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 총재는 “물가와 경기 간의 상충이 심화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자니 경기가 침체할 우려가 있고, 경기를 살리자니 물가가 폭등할 것 같다는 ‘진퇴양난’의 상황을 표현한 것이다.
금통위는 금리 인상·인하 그 어떤 쪽에도 무게를 싣지 않으며 시장에 주는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모습도 보였다. 이 총재는 “(금통위원 사이) 3개월 금리 전망에 대해 큰 논의가 없었다. (중동) 사태를 지켜보기로 했다”고 전했다. 전쟁 지속 기간에 따른 한은의 단·중·장기 시나리오 관련해서도 “큰 변수는 중동 사태가 언제 끝나느냐다. 오늘 제가 말하기보단 5월에 전망 발표할 때 듣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증권가에선 금통위가 내수경제 여건과 정부의 추경 등 조처를 고려해 조심스러운 기조를 유지했다고 보고 있다. 다만 당장 중동 사태가 마무리되더라도 훼손된 에너지 인프라 시설과 공급망 회복엔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금리 인상은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박형중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가계부채 상황까지 고려하면 금리 인상에 따른 역풍이 커 한은도 고민이 많을 것”이라면서도 “역효과를 예상하더라도 국제유가가 충분히 안정되지 않으면 3·4분기엔 기준금리 인상 쪽으로 기울 것”이라고 말했다.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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