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안 오른다…호르무즈 통행세, 산유국에 ‘연 20조 독박’”

최현정 기자 2026. 4. 10.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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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 항로 모습. 해당 해협은 전 세계 원유 수송의 핵심 경로로 꼽힌다. Getty Images
유가가 오르지 않는 대신 비용은 산유국이 떠안는 구조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호르무즈 해협 통행세가 도입되더라도 글로벌 유가 상승폭은 제한적인 반면, 실제 부담은 걸프 산유국에 집중될 것이라는 진단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9일(현지시간)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에 통행세를 부과할 경우, 그 비용의 80~95%를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쿠웨이트 등 걸프 산유국이 떠안을 것으로 보도했다.

● “유가는 크게 못 올린다”…글로벌 가격 구조의 한계

통행세가 부과되더라도 유가가 크게 오르지 않는 이유는 원유 가격이 특정 지역이 아닌 글로벌 시장에서 형성되기 때문이다.

경제학자들은 배럴당 1달러 수준의 통행세는 세계 경제나 유가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고 본다. 걸프 산유국들은 미국 등 통행세 부담이 없는 산유국과 경쟁하고 있어 비용을 가격에 전가하기 어렵다.

결국 통행세는 소비자가 아니라 생산자가 흡수하는 구조다.

벨기에 브뤼셀 자유대학교(Université Libre de Bruxelles) 경제학과 교수 군트람 볼프(Guntram Wolff)는 “이 같은 구조 때문에 통행세는 휴전 협상에서 현실적인 타협안이 될 수 있다”며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거대한 합의’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 “80~95% 산유국 부담”…연 최대 140억 달러

볼프 교수의 계산에 따르면 통행세가 배럴당 2달러 수준일 경우 전체 비용의 80~95%를 걸프 산유국이 부담하게 된다. 연간 기준으로는 최대 140억 달러(약 20조원)에 달한다.

영국 베렌버그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홀거 슈미딩(Holger Schmieding)도 “산유국이 약 80%의 비용을 떠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유가 상승폭은 제한적이다. 통행세가 배럴당 1~2달러 수준일 경우 국제 유가는 0.05~0.40달러 정도 상승하는 데 그칠 것으로 분석된다. 전쟁 이후 호르무즈 해협 봉쇄 여파로 약 35~40달러 급등한 것과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이 같은 구조는 이란의 선택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란이 해협을 완전히 봉쇄하지 않고 통행세를 택한 배경에도 이런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해협을 물리적으로 차단할 경우 군사 충돌로 확전될 가능성이 크지만, 통행세는 갈등 수위를 낮추면서도 안정적인 수입을 확보할 수 있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란이 해상 요충지를 활용해 수익을 창출하는 ‘지정학적 임대업자’로 전략을 전환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 “비용 내도 통행이 더 이익”…산유국도 수용 가능성

비용 부담에도 불구하고 산유국들이 통행세를 받아들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해협 봉쇄로 수출 자체가 막히는 상황보다, 비용을 내고서라도 물량을 이동시키는 편이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영국 캐피털이코노믹스 수석 이코노미스트 닐 시어링(Neil Shearing)은 “걸프 국가들의 원유 생산비는 배럴당 20달러 이하로 매우 낮은 수준”이라며 “통행세를 전적으로 생산자가 부담하더라도 생산 결정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통행세 구조는 예상 밖의 수혜자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걸프 산유국들이 비용을 자체 부담하는 사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지 않는 미국 셰일 오일·가스 업체들은 상대적으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행세가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서 미국 생산자들의 입지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해석이다.

● 위안화 결제까지…달러 질서 변수로

이란 측은 통행세 징수 과정에서 암호화폐를 활용하고, 위안화 결제 시 통과를 우대하는 방안도 언급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결제 방식 변화가 아니라 달러 중심의 석유 거래 구조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신호로 읽힌다. 통행세가 비용 문제를 넘어 결제 통화와 금융 질서까지 영향을 미칠 경우, 호르무즈 해협은 에너지뿐 아니라 통화 질서 변화의 시험대가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현정 기자 phoe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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