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기획] 똑같은 현장, 엇갈린 판결…유죄가 된 카메라

황대훈 기자 2026. 4. 10.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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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뉴스12]

지존파 사건부터 고 설리 씨의 마지막 인터뷰까지, 우리 사회의 굵직한 사건들을 카메라에 담아온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 정윤석 씨. 

지난해 서울 서부지법 폭력 사태 현장을 촬영하다 체포된 데 이어, 최근 2심에서도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현장을 취재하던 감독이 왜 시위대와 똑같은 혐의로 처벌받아야 했는지, 판결 이후에도 논란이 거센데요. 

표현의 자유와 예술적 기록의 경계를 묻는 이번 사건의 쟁점을, 황대훈 기자가 심층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지난해 1월 19일 새벽.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된 직후 서부지방법원 일대에서 격렬한 충돌이 벌어졌습니다.

소식을 접한 다큐멘터리 감독 정윤석 씨는 곧바로 현장으로 향했습니다.

인터뷰: 정윤석 감독

"이 사람들이 그냥 확 들어가는 모습들이 실시간으로 다 보이니까 굉장히 놀랐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좀 계엄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순간인 것 같아요."

지금까지 한국 사회의 중요한 사건 현장에는 빠짐없이 달려갔던 만큼, 이번 사태 역시 기록에 남겨야 할 현장이라고 판단한 겁니다.

인터뷰: 정윤석 감독

"두 번째 탄핵이잖아요. 그러니까 이번 탄핵이 가져다주는 한국 사회 변화가 무엇일지는 그 당시에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고…."

정 감독이 도착했을 때 법원 안팎은 이미 통제 불능의 아수라장이었습니다.

그는 새벽 5시경, 현장의 실상을 담기 위해 법원 경내로 진입했습니다.

인터뷰: 정윤석 감독

"카메라가 그 시위대와 경찰 사이에 서 있으면 어느 정도 좀 중재 효과가 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그러니까 서로가 조심하는 거죠. 어떻게 보면 저는 그러니까 제가 해야 될 일을 하기 위해서 들어갔던 거예요."

정 감독은 시위대를 선동하거나 경찰과 충돌하지 않았고, 중립적인 위치에서 상황을 기록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실제로 이 영상은 이후 폭력 가담자들을 수사하는 데 증거 자료로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경찰 진압이 시작되자 상황은 반전됐습니다.

"여기 다 체포하세요"

"저 체포하면 안돼요"

"여기도 다 체포해 건조물 침입이야"

"아니 저를 체포하면"

신원과 취재 목적을 밝혔고, 퇴거 명령에도 따르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경찰은 캡사이신까지 뿌려가며 정 감독을 체포했습니다. 

"그냥 옆에 나와 있으라고 하면 되지"

"이런 경우 처음 봐요" 

체포했던 경찰관도 정 감독이 폭력 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사법당국은 1심과 2심 모두 벌금 200만 원을 선고 했습니다. 

영상을 찍기 위해 법원 경내로 들어간 행위 자체가 '정당한 출입'이 아니라는 논리입니다.

하지만 법조계와 예술계에서는 현장 기록자를 폭동 가담자와 동일한 잣대로 판단한 것은 무리라는 비판이 나옵니다.

인터뷰: 서채완 변호사 /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그렇게 따지자면 사실은 일반적으로 관공서를 방문하는 사람들이라든지 아니면 수많은 기자들도 지금 현재 주거 침입 상태에 놓이게 되는 거거든요. (오히려 법원이) 범죄자와 범죄자가 아닌 자를 명확하게 구분 지어서 판단을 내렸을 때 이 서부지법 폭력 사태에 대해서 정확한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실제로 당시 현장에는 법원 건물 안까지 들어가 취재한 언론사 기자도 있었지만, 법원은 죄를 묻지 않았습니다. 

똑같은 행위를 두고 '소속' 여부에 따라 법의 보호가 달라진 겁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는 저널리스트를 특정 소속이 아닌 '공익적 사안을 알리는 사람'으로 폭넓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누구나 현장을 기록하고 공유할 수 있는 시대.

보호의 잣대가 소속에 따라 달라진다면, 독립 예술가들의 표현의 자유는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인터뷰: 백재호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

"어떤 긴급한 일이 벌어졌을 때 허가를 받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그럼 우리는 우리의 기록 행위를 멈춰야 되는 것인가라는 게 이제 가장 큰 고민인 거죠. 나도 검거가 되고 법정에 이렇게 세워질 수가 있겠구나라는 걱정을 한다라면 주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거고…."

예술인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제정된 '예술인권리보장법'. 

공무원 등이 위력을 이용해 예술 활동을 방해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재판에서 특별법의 취지는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정윤석 감독

"언론의 자유랑 예술의 자유는 헌법의 같은 조항에 묶여 있는 굉장히 동등한 위치에 있는 자유가 아닙니까? 민주주의 사회에서 굉장히 중요한 가치인데 이것이 우리의 권리로 지켜지려면 그런 절차적 정당성을 지켜줘야 되는 거거든요."

지금까지 이 법을 통해 권리 침해를 구제받은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습니다. 

법 체계를 정비해 실효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인터뷰: 정윤희 블랙리스트 이후 총괄 디렉터

"표현의 자유 침해 사건들이 발생했을 때 이 (예술인권리보장법)이 하나도 작동을 하지 않아요. 예술인권리보장법이 미완결(되는 바람에) 특히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부분에 있어서 선언적인 의미 외에는 실제로 법제로 작동할 수 있도록 법안이 구성되지 못했고…."

정 감독은 최근 한국예술영화관협회 대상과 올해의 독립영화인상을 잇따라 수상하며 기록의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동시에, 재판소원을 비롯해 모든 절차를 밟아나가겠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면서 이 사건이 개인의 싸움을 넘어 한국 사회가 예술의 공익적 역할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대한 리트머스 시험지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인터뷰 :정윤석 감독

"(예술인권리보장법이) 상징적인 특별법이 아니라 정말 우리의 권리와 지위를 인정 받을 수 있는 실질적인 법으로 가기 위한 예술가의 싸움인 것이고 승패의 개념보다는 중요한 리트머스지로 작동하길 바랍니다."

EBS 뉴스 황대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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