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스타트업열전] 이재용 옆 33세 스타트업 창업자…프랑스가 그리는 '미래'
[비즈한국] 지난 3일 청와대에서 열린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국빈 방한 환영식에서 유독 시선을 끈 장면이 있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옆자리에 앉은 젊은 외국인과 한참 대화를 나누던 모습이다.

물론 안 될 이유는 없다. 다만 통상 이런 비즈니스 외교 석상에서 기업인들의 자리는 분야, 그리고 ‘체급’으로 묶어 자리를 배정하는 게 관례다. 과거라면 이 회장의 옆자리는 토탈에너지, 에어버스처럼 수십 년 전통을 자랑하는 거대 기업의 관록 있는 회장들이 배석했을 거란 얘기다.
이날 멘슈 CEO의 배석은 양국의 의전 협의 과정에서 프랑스 측에서 요청했을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가 그리는 미래 산업의 무게추가 어디로 기울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결정적 장면이었다.
#유럽판 오픈AI, 3년 만에 중심에 서다
미스트랄은 2023년 구글 딥마인드 출신인 멘슈와 메타 출신 LLM(대형언어모델) 개발진 2명이 공동창업했다. 설립 첫해부터 GPT-4에 필적하는 LLM ‘미스트랄 라지(Large)’를 공개하며 ‘유럽판 오픈AI’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이로 인해 지난해 9월에는 반도체 장비 기업 ASML로부터 17억 유로(약 3조 원)를 유치해 창업 2년 만에 기업가치가 120억 유로(약 20조 원) 수준으로 올라섰다. 앞서 2024년에는 삼성과 엔비디아 등으로부터 6억 유로(약 1조 원) 규모의 투자를 받기도 했다.

멘슈 CEO는 이미 환영 오찬 전날인 2일 삼성전자 화성캠퍼스를 찾아 전영현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부회장)을 만나 AI 반도체 공급망 및 기술 협력 방안을 폭넓게 논의했다. 단순히 HBM(고대역폭메모리)의 안정적 공급 외에도 미스트랄이 자체 AI 칩 설계에 나설 경우 삼성의 파운드리가 핵심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또 유럽 시장에서 갤럭시 기기에 미스트랄 챗봇 모델을 기본 탑재하는 협력 시나리오도 거론된다.
#AI 주권의 마지막 조건
신선한 장면은 또 있었다. 멘슈 CEO가 먼저 한국 정부의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와의 면담을 요청한 것이다. 3일 오후 임문영 부위원장, 하정우 청와대 AI미래기획수석과 미스트랄 경영진이 만났다. 위원회는 ‘소버린 AI(Sovereign AI)’ 확보가 AI 시대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라는 것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밝혔다.
소버린 AI, 즉 AI 주권이라는 거창한 담론은 지극히 상식적이고도 생존적인 공포에서 시작된다. 현재 글로벌 AI 생태계는 사실상 미국과 중국 기반의 소수 기업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 이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각국은 데이터와 산업 경쟁력, 나아가 기술 주권까지 외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멘슈 CEO는 지난 2월 인도 AI 서밋에서 “AI 워크로드를 운영하는 모든 이는 켜고 끄는 버튼을 직접 쥐고 있어야 한다. 그 버튼을 끌 수 있는 외부 공급자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공급자가 자국의 이익이나 정치적 이유로 서비스를 중단했을 때, AI 주권을 확보하지 못한 국가는 산업 전체가 마비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AI 주권은 단순히 스스로 AI 생태계를 구축했다는 자부심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는 얘기다.
한국 정부 역시 ‘AI 3대 강국 도약’을 목표로 기업들을 선발해 ‘독자적 AI 파운데이션 모델’(독파모) 프로젝트를 가동하며 기술 자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가 차원의 인프라를 확보하겠다는 방향은 옳다. 다만 프랑스를 보자면 미스트랄 AI는 정부가 기획해서 태어난 조직이 아니다. 구글 딥마인드와 메타에서 실력을 쌓은 연구자들이 스스로 시장에 뛰어들었고, 그 기술력을 시장이 먼저 인정했다. 프랑스 정부는 그들이 증명한 가치 위에 ‘전략적 우산’을 씌웠을 뿐이다.
한국에도 빅테크 출신 연구자들이 나와 창업한 AI 스타트업이 있다. 씨앗 자체가 없는 건 아니다. 프랑스는 그 씨앗이 자랄 수 있도록 정부가 의도적으로 토양을 깔았다. 연구 생태계에 투자하고, 글로벌 빅테크의 AI 연구소를 파리에 유치하고, 그 안에서 실력을 쌓은 인재들이 창업으로 나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미스트랄은 그 토양에서 자란 기업이다.
한국은 그 토양이 충분한가. 그리고 그렇게 나온 기업을 마크롱처럼 국빈 외교의 전면에 세울 준비가 됐는가. 그 두 질문이 남는다.
필자 이정우는 17년간 언론사 기자로 자동차, 2차전지, 중공업 등 주요 산업을 비롯해 국방, 외교, 환경, 교육, 보건복지 등 다양한 분야를 두루 담당했다. 특히 모빌리티 및 에너지 전환과 지속가능성 중심의 산업 구조 변화를 현장에서 취재했다. 현재 독일 베를린에 거주하며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123팩토리'의 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다.
이정우 칼럼니스트(writer@bizhank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