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리더] 혁명은 끝났지만 권력은 남았다, 쿠바 카스트로 가문 | 트럼프 타깃 된 쿠바… 에너지 위기 속 재부상하는 카스트로家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월 27일(이하 현지시각)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행사에서 “다음은 쿠바(Cuba is next)”라고 언급하며 쿠바를 차기 압박 대상으로 지목했다. 1월 베네수엘라 마두로 정권 축출과 2월 이란 공습에 이어 나온 발언으로, 군사적 개입 가능성까지 시사한 것이다. 그는 “강력한 군대를 만들었고 때로는 이를 써야 할 때가 있다”라고 말하며 강경 대응 의지를 드러냈다. 미국은 이미 베네수엘라산 원유 공급 차단과 제삼국 제재를 통해 쿠바를 압박하고 있으며, 사실상 에너지 봉쇄에 가까운 조치가 이어지고 있다.
현재 쿠바는 미겔 디아스카넬 대통령이 이끄는 체제다. 그러나 쿠바의 권력 구조는 단순한 국가 체제와 다르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1959년 혁명을 주도한 피델 카스트로 이후 60여 년간 권력을 유지해 온 카스트로 가문이 여전히 국가 운영의 중심에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형식상 대통령이 있지만, 실제 권력은 군과 경제를 장악한 가문 네트워크에 있다는 것이다.
美 압박 속 경제 위기 고조
트럼프 정부의 압박은 곧바로 쿠바 경제를 직격했다. 미국은 베네수엘라에 쿠바로의 원유 수출 중단을 압박했고, 쿠바에 원유를 제공하는 국가에도 제재를 경고했다. 그 결과 쿠바는 외부 에너지 공급이 사실상 끊겼다.
그 여파로 쿠바는 국가 전력망이 붕괴되는 사태를 겪고 있다. 인구 약 1000만 명이 정전 피해를 보았고, 병원 수술이 중단되거나 공장 가동이 멈추는 등 경제활동 전반이 마비됐다. 뉴욕타임스(NYT)는 “쿠바 경제 위기는 단순한 경기 침체가 아니라 체제 안정성을 위협하는 수준”이라고 전했다.
쿠바 경제의 취약성은 구조적이다. 관광산업 의존도가 높은 데다 외화 수입 기반이 약하고, 국영 중심 경제 체제는 생산성과 효율성이 낮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관광 수입이 줄어든 상황에서 베네수엘라 원유 지원까지 끊기면서 충격 흡수 능력이 급격히 약화했다. 식량·연료 부족과 유통망 붕괴가 겹치며 민생 불안이 확대되고, 시위도 이어지고 있다.
‘대통령은 있지만 권력은 없다’… 카스트로 체제의 이중 구조
이 위기의 핵심은 결국 권력 구조다. 형식상 쿠바는 ‘탈(脫)카스트로’ 체제에 들어선 것처럼 보인다. 디아스카넬은 2018년 집권하며 쿠바 혁명 이후 처음으로 카스트로 가문이 아닌 지도자로 등장했다. 그러나 실상 그의 권력은 제한적이다. AP통신 등 외신은 그를 ‘형식적 후계자’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 같은 구조의 뿌리는 피델 카스트로가구축한 체제에 있다. 그는 1959년 혁명을 통해 공산당 일당 체제와 국가 통제경제를 확립하고, 군과 정보기관을 권력의 핵심 축으로 재편했다. 이후 권력은 동생 라울 카스트로에게 이어졌다. 라울 카스트로는 군을 기반으로 관광·물류·에너지 등 핵심 산업을 장악하며 정치권력과 경제 권력을 결합했다.
라울 카스트로는 2018년 국가 지도자 자리에서 물러났고, 2021년 공산당 총서기직에서도 퇴진했다. 그러나 군과 국영기업을 중심으로 한 네트워크를 통해 여전히 막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사실상 ‘은퇴한 최고 지도자’가 아니라 ‘현직 권력의 중심’이라는 의미다. 실제로 대미 협상 과정에서도 그의 의중이 반영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포스트(WP)는 “쿠바의 핵심 정책 결정은 여전히 카스트로 시대 인물이 좌우한다”고 전했고, NYT는 “라울 카스트로는 여전히 쿠바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라고 했다.

‘카스트로 2·3세’ 부상… 세대교체 권력 재편
이번 위기에서 카스트로 가문은 세대교체를 통한 권력 재편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과거 막후에 머물던 가문 인사가 협상과 정책 전면에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주목받는 인물은 라울 카스트로의 손자인 라울 기예르모 로드리게스 카스트로다. ‘라울리토’로 불리는 그는 단순 후계자가 아니라, 외부와 연결되는 핵심 통로로 평가된다. 조부의 경호팀 출신인 그는 최근 미국 측과 접촉하며 사실상 비공식 협상 채널 역할을 맡고 있다. 이에 그는 쿠바 권력 핵심과 미국을 연결하는 ‘메신저’라는 평가를 받는다.
라울 카스트로의 외아들 알레한드로 카스트로 에스핀은 가문의 ‘전략가’로 꼽힌다. 쿠바 정보기관 핵심 인물인 그는 2014년 버락 오바마 정부와 관계 정상화 협상을 실질적으로 설계한 인물이다. 공개 석상에는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그림자 속의 왕자(prince in the shadows)’로 불리기도 하지만, 그간 쿠바의 핵심 외교·안보 의사 결정에 깊숙이 관여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오스카르 페레스 올리브 프라가 부총리는 가문 내 ‘경제 실무형 인물’로 부상하고 있다. 그는 피델·라울 카스트로 형제의 조카 손자로 ‘카스트로’라는 이름을 쓰지 않지만, 오히려 정치적 부담을 덜면서도 가문 권력에 접근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전략적 카드로 평가된다. 그는 부총리이자 대외무역·외국인투자부 장관으로 쿠바의 대외 경제정책을 총괄해 왔으며, 해외 쿠바인의 본국 투자 허용 정책 등으로 체제 생존 전략의 전면에 섰다. 기존 군·당 중심 권력과 달리 경제·투자 분야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며 급부상한 그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념보다 실용을 앞세운 협상 가능한 인물’이라고 분석했다.
쿠바 체제 생존 방식 ‘카스트로 중심 결속력’
쿠바 체제가 쉽게 붕괴되지 않는 이유는 이 같은 권력 구조의 특성에 있다. 군, 정보기관, 경제 자산이 하나의 네트워크로 결합돼 있고, 엘리트 집단 내부 결속이 강하다. 이 권력 네트워크의 중심에는 카스트로 가문이 자리 잡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서반구 담당 선임보좌관을 지낸 리카르도 수니가는 “쿠바에는 대체 가능한 정치 세력이 없다”고 분석했다. 이는 내부 분열로 붕괴된 베네수엘라와 대비되는 지점이다.
트럼프 정부가 디아스카넬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지만, 지도자가 교체된다고 해서 체제가 근본적으로 변할 가능성은 작다. NYT는 “미국은 쿠바에서 정권 교체보다 정권 순응(regime compliance)을 추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쿠바가 체제는 유지하되 경제를 부분적으로 개방하는 방식을 택할 가능성을 크게 보고 있다. 수니가는 “쿠바는 체제를 무너뜨리는 대신 권력 구조를 유지한 채 적응하는 방향을 택할 것”이라며 “혁명 국가가 아니라 통제된 과두 체제로 변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결국 쿠바는 정권 교체의 기로에 선 것이 아니다. 권력의 형태를 바꾸며 체제를 유지하려는 시험대에 서 있다. 혁명은 끝났지만, 권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Plus Point
허울뿐인 대통령,
‘체제 관리 지도자’ 디아스카넬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대통령은 1960년 쿠바 중부 비야클라라주에서 태어났다. 혁명 1세대가 아닌 ‘혁명 이후 세대’ 출신으로, 지방 당 조직과 행정 경험을 바탕으로 정치 경력을 쌓았다. 그는 공산당 청년 조직과 지방 당 서기를 거쳐 비야클라라주 당 책임자, 고등교육부 장관 등을 지냈다. 2013년 국가평의회 부의장으로 발탁되며 중앙 권력 핵심에 진입했고, 2018년 라울 카스트로의 지명을 받아 국가평의회 의장(현 대통령)에 올랐다.
디아스카넬의 등장은 ‘탈카스트로 시대’의 상징으로 평가됐지만, 실제 권력은 제한적이었다. 그는 제한적 민간경제 허용과 인터넷 확대 등 개혁을 시도했지만, 군과 공산당, 기존 권력 네트워크의 영향력 속에서 정책 주도권은 크지 않았다.
이에 디아스카넬은 개혁가라기보다 ‘관리형 지도자’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외교·안보·경제 핵심 정책에서 라울 카스트로의 영향력이 여전히 작용하고 있어서다. AP통신은 “디아스카넬은 독립적인 권력 기반이 없는, 체제를 관리하는 지도자에 가깝다” 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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