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스피커의 反진보 인식[뉴스와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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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호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출간한 '민주당 1999-2024'에는 진보 진영의 해묵은 우월주의를 꼬집는 대목이 나온다.
그는 노무현 정부 시절 여당이 무리하게 개혁 입법을 밀어붙인 전례를 회고하며 '우리는 선(善), 상대편은 악(惡)'이라는 논리로 흘러가면 '오만 프레임'에 빠져 공격받기 십상이라고 적었다.
더불어민주당 안팎에 풍파를 일으킨 유시민 작가의 ABC론은 진보의 선민의식이 정적(政敵)을 넘어 동지들을 겨냥하기 시작한 징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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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호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출간한 ‘민주당 1999-2024’에는 진보 진영의 해묵은 우월주의를 꼬집는 대목이 나온다. 그는 노무현 정부 시절 여당이 무리하게 개혁 입법을 밀어붙인 전례를 회고하며 ‘우리는 선(善), 상대편은 악(惡)’이라는 논리로 흘러가면 ‘오만 프레임’에 빠져 공격받기 십상이라고 적었다. 개혁 성향의 정치인일수록 ‘선민의식’을 경계해야 한다는 조언도 건넸다.
더불어민주당 안팎에 풍파를 일으킨 유시민 작가의 ABC론은 진보의 선민의식이 정적(政敵)을 넘어 동지들을 겨냥하기 시작한 징표다. 여권 지지층·정치인·비평가를 A(가치 중심)·B(이익 중심)·C(혼합)의 세 그룹으로 분류한 것이 이 이론의 요체다.
유시민은 ‘현상에 대한 분석’이라고 주장하나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긴 어렵다. ABC론의 기저엔 이상적 가치를 우월한 것으로, 이익을 탐하는 본성을 열등한 것으로 규정짓는 시선이 작동하고 있다. 이 설명이 타당하다면 ABC론은 이익을 좇아 새로 편입된 ‘뉴 이재명’을 조준한 낙인과 배제의 논리라는 말도 옳다. 그는 일찍이 저서 ‘청춘의 독서’에서도 맹자를 언급하며 이익 대신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진정한 보수라고 역설한 바 있다.
친명계는 ABC론이 권력 투쟁을 부추긴다고 비판하지만, 초점이 틀렸다. 어떻게 권력 싸움을 빼놓고 정치를 논할 수 있겠나. 국민의 더 나은 삶을 도모하는 통로인 동시에 한정된 권력을 놓고 죽기 살기로 싸우는 것이 정치의 본질이다. ‘진보 스피커’ 유시민의 주장은 갈라치기로 권력 다툼을 조장해서가 아니라 반(反)진보적이라서 문제다. 진보가 마땅히 견지해야 할 태도는, 나와 다른 타자를 인정하고 포용하는 것 아닌가. 관점과 양태에 따른 수평적 스펙트럼을 우열의 수직 구도로 치환하는 것은 진보를 자처하는 지식인의 자세가 아니다. “B그룹은 대통령에게 위기가 닥치면 가장 먼저 돌을 던질 사람들”이라는 인식도 지나치게 단정적인 순혈주의다. 모르긴 해도 유 작가의 머릿속에 국민의힘 지지자는 D와 E에도 못 끼이는 F쯤에 놓여 있을 것이다.
천만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 소시민 엄흥도는 가족의 목숨이 위태로워질 앞날을 예감하면서도 옳다고 믿는 바를 지키기 위한 영웅적 결단을 한다. 그런데 영화보다 흥미로운 것은 엄흥도를 연기한 배우 유해진의 생각이다. 그는 한 방송에서 “본인이 같은 상황에 처했어도 그렇게 행동했겠나”라는 질문에 “잘 모르겠다”고 말을 흐렸다. 솔직한 대답이다. 유해진뿐이겠는가. 보통 사람 중에 엄흥도처럼 결행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가치에 헌신하는 영웅적 삶이 숭고하다고 해서 나와 사랑하는 이의 안위를 챙기는 평범한 일상을 비루하다고 할 수는 없다. 아니, 복잡다단한 삶을 이렇게 일도양단하는 게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이상만으로 충만하거나 과실밖에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잘 있던가. 군자(君子)도, 모리배(謀利輩)도 아닌 보통의 우리는 이익에 눈감지 못하면서도 아름다운 가치 또한 외면하지 못하는 다층적 존재들이다. 그러니 당신만의 잣대로 사람들을 범주화하지 말라. A가 B보다 고고한 듯, B가 A보다 부족한 듯 강변하지 말라.

나윤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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